먼저 조선업종의 분위기를 뒷바침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수부터 소개한다. 신조선가지수다. 말 그대로 새로 짓는 배의 가격을 지수화한 지표다. 7월 28일 기준 신조선가지수는 172.4포인트다. 연초 대비 6.5%나 상승했다. 3년 전인 2020년 7월과 비교하면 36%나 뛰었다. 세계 조선업계가 사상 최대 호황을 구가하던 2008년의 신조선가지수는 191.5(2008년 8월 기준)였다.
선가 상승세가 특정 선종에 국한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특히 국내 조선사의 주력 선종인 LNG선의 신조선가 상승세가 가파르다. LNG선에 대한 발주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카타르 국영 석유 기업인 카타르에너지는 올해 안으로 총 40척 규모의 LNG선을 추가 발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40척의 가격은 어림잡아 12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추산이다.
카타르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건조공간 예약 계약 합의각서 체결식에서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화오션이 23조6000억원 규모의 LNG 운반선 계약을 맺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당연히 이 물량은 기술력을 가진 한국 조선 빅3(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가 해당 물량을 나눠 가질 것이 유력하다. 아프리카 모잠비크 광구의 LNG 운반선 수주전도 있다. 총 15~20척 규모로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계약 물량 확정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수주 잔고도 넘쳐난다. 특히 LNG선을 필요로 하는 고객들은 이미 2028년 인도 가능한 LNG선 슬롯을 문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24년에는 2028년 인도 목적의 LNG선 발주가 계속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다만 신조선가 관련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조선가지수가 2008년 대비 아직도 낮은 것은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할 때 여전히 너무 낮은 가격이라는 이야기다. 조선사들의 매출액을 구성하는 가격과 수량을 봤을 때 수량은 증가할 수 있어도 가격 측면은 여전히 과거 최대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비해 미진한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높아진 철강가격도 부담이다. 가격은 충분히 높아지지 않았는데, 원재료비가 오른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직 신조선가 낮은 편
국내 5개 조선사의 7월까지 합산 신규수주금액은 243억달러로 올해 목표치(346억달러)의 70%를 이미 달성했다.
그러나 정 연구원은 “탱커가격을 봐도 현대삼호중공업이 1척당 8530만달러, 삼성중공업이 1척당 8610만달러에 선박을 수주함으로써 수에즈막스(Suezmax) 기준 15년 만에 최고가를 경신했다”면서 “한국 조선소가 전반적으로 가격 인상을 주도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파악했다. 가격을 올리고 있음에도 수주가 잘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국내 5개 조선사(HD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의 7월까지 합산 신규 수주금액은 243억달러로 올해 목표치(346억달러)의 70%를 이미 달성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기업별로 보면 한국조선해양 산하 3사의 수주가 가장 양호하다. HD현대중공업이 75억달러, 현대삼호중공업이 58억달러, 현대미포조선이 33억달러를 수주했다. 3사 합계 기준 특수선(군함)을 제외한 조선, 해양 부문 수주금액이 128억달러로 연내 수주 목표의 99%를 이미 달성했다. 삼성중공업은 63억달러로 목표치의 3분의 2를 채웠고 하반기 추가 해양플랜트, 카타르 LNG선 추가 수주를 통해 2023년 수주목표를 초과 달성할 수 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화오션은 13억3000만달러 수주에 그쳐 상대적으로 수주 목표 달성률이 낮으나 방사청의 호위함 5, 6번함 수주를 확정했고, 하반기 카타르 LNG선 추가 수주가 이어진다면 목표 달성에는 큰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조선사 수주잔고 증가세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잔고 증가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인도량은 2022년 780만CGT(Compensated Gross Tonnage·표준선환산톤수로, 선종 및 선형의 종류에 따라 건조 시의 공사량을 동일 지표로 평가하기 위한 방법으로 표준화물선으로 환산한 수정총톤수에 환산계수를 곱해 산출된 톤수)를 기점으로 2023년 970만CGT, 2024년 1180만CGT로, 2024년 기준 예상 인도량은 2022년 대비 51%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개별 조선사들의 선박 인도 스케줄을 감안하면 인도량 증가 사이클은 최소한 2025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며, 현재 수주가 진행 중인 2026년 인도 목적의 비LNG선 수주 상황에 따라 2026년에도 인도량 증가가 가능하다.
환경규제도 국내 조선사들의 업황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향후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을 덜 내뿜는, 그러면서도 애너지효율이 좋은 배가 더 많아지도록 국제해사기구의 환경규제가 강화된다. 실제 유엔(UN) 산하 국제해사기구는 7월 초 국제 해운의 중장기 탄소배출 감축 목표 관련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당초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2008년 대비 50%까지 줄이기로 했던 것을 100%로 높이겠다는 내용이다.
한국형 LNG 화물창을 적용한 전기 추진 하이브리드 선박 ‘블루웨일호’ <사진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친환경 선박을 만드는 기술에서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대형사 위주로 구성된 한국 조선업계가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 지난 2020년 황산화물 배출 규제가 좋은 사례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황산화물 배출 규제는 조선 산업의 기술적 진입장벽을 높이면서 기존 대형사들의 점유율을 공고하게 했고, 친환경 선박 발주 증가로 대형 조선사들의 실질 수주단가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했다.
장경석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선박 시장에서 친환경 선박은 이미 대세로 자리잡았으며, 2023년 1분기 발주된 선박 중 절반이 넘는 61%가 대체 연료를 이용하는 엔진을 탑재한 것으로 확인된다”면서 “국내 빅3 조선사들은 세계 최고의 친환경 선박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HD현대중공업의 경우 별도의 엔진사업부를 보유해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려나가고 있고, 한화오션도 올3분기까지 선박 엔진 제조사 HSD엔진 인수를 마무리해 엔진 제작 부문을 수직계열화함으로써 친환경 선박 기술력이 더욱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반면 우리와 수주경쟁을 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친환경 선박 엔진을 자체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해 한국 업체에서 엔진을 납품받아 선박을 건조하는 경우가 다수인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중국 양지장조선이 최근 수주한 메탄올 추진선에 사용되는 엔진도 한국에서 수입할 것으로 예상돼 결과적으로 한국 조선 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제 수주량을 봐도 현실을 알 수 있다. 조선·해운 시황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7월 말까지 전세계에 발주된 친환경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총 117척) 중 한국 업체 수주량은 절반을 넘는 61척에 이른다. 이어 중국 48척, 일본 8척 순이다. HD한국조선해양이 43척, 삼성중공업이 16척을 각각 수주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영수 연구원은 “2020년과 비교해 현재 규제를 집행하는 당국의 집행 의지가 당시보다 더 강력하고 조선사들의 협상력이 수주 잔고 증가로 과거에 비해 강화됐으며, 규제 충족에 소요되는 친환경선 건조비용이 크게 상승했다는 점에서,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긍정적 효과는 더욱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자의 관점에서도 한국의 빅3 조선사는 매력적인 투자 대안이다. 조선업종의 호황 사이클이 예상되는 가운데 고른 기술력을 갖춘 조선사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영수 연구원의 말을 들어보자. 한 연구원은 “향후 환경규제 충족을 위한 해결책은 결국 선박의 추진 에너지를 교체하는 방법인데, 이와 관련해 시장은 이제 LNG추진선 이후의 대안 연료들(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을 논의 중”이라며 “아직까지 이들 중 ‘하나의 확실한 대안’이 등장한 상황은 아니고, 현실적으로 당분간은 다양한 추진 연료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데, 투자자들 입장에선 다양한 에너지원에서 고른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의 대형사들을 안전한 투자 대안으로 여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증권사 목표주가 상향
당연하게도 증권사들의 목표주가 상향도 이어지고 있다. NH투자증권은 HD현대중공업의 목표주가를 기존 15만3000원에서 8월 초 18만원으로 상향했다. 수요가 꾸준한 LNG선 및 LPG선은 하반기에도 수주 호조가 예상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하이투자증권은 한화오션의 목표주가를 최근 3만4000원에서 3만7000원으로 3000원 높였다. 아직은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번 분기를 마지막으로 대우조선해양 시절의 잔재를 털어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삼성중공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증권은 지난 7월 삼성중공업의 목표주가를 기존 6700원에서 1만300원으로 크게 올렸다. 수주와 실적 개선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전히 밸류에이션이 경쟁사들 대비 낮은 상태라는 게 이유다. 삼성중공업은 이 같은 목표주가 상향 이후 곧바로 4조원 규모의 역대 최대 수주 소식을 알렸다. 대만 선사인 에버그린(Evergreen)으로부터 16척의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을 수주한 것이다. 국내 단일 계약 선박 수주로는 최대 규모다.
다만 최근 급격히 주가가 오른 점은 부담이다. 특히 한화오션에 대해서는 현재의 밸류에이션이 부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영수 연구원은 “시장에 알려진 호재 대부분을 반영했음에도, 현 주가에서 투자자들이 경쟁사보다 한화오션 주식을 선택할 유인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구체적으로 “현재 한화오션은 시가총액이 이미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HD현대중공업의 80%에 이르고 북밸류 대비로도 상장사 중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화오션은 올 들어 8월 16일 종가까지 주가가 114.5%나 상승했다. 삼성중공업도 장기 전망과는 별개로 올해 주가가 많이 오른 편이다. 올 들어 8월 16일까지 주가는 66.54%가 올랐다. 주식 시장이 전체적으로 좋았던 기간에 조선업 호황 사이클이라는 호재가 겹친 탓도 있지만 여전히 상승 속도에 대한 부담은 남는다.
최희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