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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과학을읽다]전기요금↑·예산 삭감에 대형연구시설 줄줄이 '문 닫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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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온가속기, 핵융합실험로, 하나로, 방사광가속기 등

"돈 없어 운영에 큰 차질"

"차라리 문 닫아라, 기초 R&D 삭감에 치명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가속기, 원자로, 핵융합로 등 국가 주요 대형 연구시설을 운영 중인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의 하소연이다. 지난해부터 현실화된 급격한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부담에 이어 최근 정부가 '카르텔'을 이유로 운영 예산을 삭감하면서 주요 연구시설들의 정상적인 임무 수행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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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온가속기(RAON). 사진출처=I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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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조5000억원이 투입된 중이온가속기(RAON)가 문제다. 1단계 저속 구간(빛의 10분의1 속도ㆍ약 초속 3만km)이 지난해 말 완공됐지만 올해 1차례 빔 시범 인출을 제외하고는 운영비가 부족해 거의 운영되지 못했다. 한인식 기초과학연구원(IBS) 희귀핵연구단장은 14일 오전 서울역에서 개최한 과학기자협회 세미나에서 이같은 사실을 털어놨다. 한 단장에 따르면 중이온가속기는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시범 운영을 거쳐 1차례 빔 시범 인출에 성공했지만 이후 전기요금 부족ㆍ부속 장비 수리 등의 이유로 가동되지 못했다.

특히 내년이 더 문제다. 정부가 내년 국가연구개발(R&D) 예산을 대거(16.6%) 삭감하면서 본격적인 운영을 앞둔 중이온가속기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한 단장은 "내년에 당초 연구자들에게 3개월 동안 빔 인출을 이용한 실험을 허용할 계획이었지만 예산 삭감으로 1개월도 보장이 안 될 것이라고 들었다"면서 "10년 넘게 건설과 준비 과정을 거쳐 이제 고지가 보이는데, 중요한 시기에 예산이 휘청대면서 어느 연구소보다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한 단장은 그러면서 정부의 기초과학 R&D 예산 삭감 방침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기초과학 연구 예산을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깎는 선진국은 없다"면서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을 중요시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철학 자체가 과학자들에게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젊은 과학자들을 연구 현장에서 떠나게 만들어 한국 기초과학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것이라고 봤다. 한 단장은 "연구비가 줄어 1~2년간 사람을 뽑지 못하면 젊은 과학자들이 다른 데로 떠나서 안 돌아온다"면서 "이런 갭이 생기면 정말 치명적이며 회복가능한 (삭감) 숫자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포스닥(박사후과정생)들을 만나면 내년 일자리부터 걱정한다"면서 "연구비 집행에 일부 문제가 있지만 그걸 명분으로 카르텔로 규정해 전체 연구비를 다 줄이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 단장은 이와 함께 정부가 국제 연구 교류 협력을 갑자기 대폭 늘린 것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예전에도 외국학자들을 데려오라는 사업이 있어서 막 지원을 해줬는데, 외국학자들만 돈을 벌었다"면서 "그런 사업이야말로 천천히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중이온가속기의 2단계 사업으로 현재 선행 R&D 중인 고속 구간(빛의 50% 속도ㆍ약 초속 15만km)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했다. 한 단장은 "현재의 저에너지 구간으로도 창의적인 세계적 연구 성과를 내올 수 있긴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이미 20년 전부터 만들어 각종 연구를 진행해왔던 설비"라며 "노벨상을 받으려면 완전히 새롭거나 기존 연구의 영역을 획기적으로 넓혀야 하는데, 1단계 구간만으로는 그런 성과를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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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식 IBS 희귀핵연구단장이 14일 오전 서울역에서 개최된 과학기자협회 세미나에서 연구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출처=과학기자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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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초대형 연구 시설인 한국형 핵융합실험로 K-STAR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과학계에 따르면 K-STAR를 운영하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최근 전력 요금 급상승(산업용 10%, 가정용 40%)과 헬륨 가스 가격 급등 등에 따라 운영 예산이 부족해지면서 일부 R&D 일정을 축소하는 등 연구에 차질을 빚었다. 특히 정부가 내년 운영 예산을 20% 이상 삭감하기로 하면서 K-STAR 운용을 통한 R&D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한 관계자는 "보통 70~80억원의 운영비가 들어가는 데 올해는 사정이 어려워서 연구를 축소하고 심지어 다른 연구 분야도 줄여서 예산을 충당했다"면서 "내년에는 사실상 운전을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안 되면 아예 그만두던가 해야 할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운영하는 실험용 원자로 '하나로'와 포항공대의 방사광 가속기 등 전력 소모가 큰 다른 국가 주요 연구 시설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과학기술계 한 관계자는 "올해 들어 이들 대형 국가 R&D 시설들이 모두 전기요금 인상과 예산 삭감으로 연구 일정에 차질을 빚었으며, 내년도 예산의 대폭 삭감이 현실화되면서 예정된 R&D 수행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라고 전했다.

한편 국가 슈퍼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도 지난달 말 전기 요금 부족에 따라 국가데이터센터 장비 50%의 운영을 일시 중단했다가 논란이 되자 재가동한 바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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