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서 24일 한 관광객이 골목 벽면에 붙은 추모 메시지를 읽고 있다. 이영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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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9일 159명의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참사 현장에 희생자를 기리는 기억 공간이 공식 조성되는 것으로 24일 파악됐다. 공간 명칭은 ‘기억과 안전의 길’로 가닥이 잡혔다. 현재 참사 현장엔 골목 벽면에 포스트잇을 붙일 수 있는 임시 추모 공간만 마련돼 있다.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시민대책회의) 등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현장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억과 안전의 길’을 만들기로 용산구청과 지난 13일 합의했다. 향후 시설물 관리와 주변 정비는 용산구청이, 게시물 관리는 시민대책위가 맡기로 했다. 10월 26일까지 조성을 마칠 계획이다.
기억과 안전의 길은 ‘유가족·생존자·상인·시민이 참여하는 과정이 녹아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참사 현장 인근 해밀톤호텔 앞엔 LED 조명등이 내장된 직사각형 모양의 안내판(빌보드) 3개가 설치될 예정이다.
첫 번째 안내판엔 ‘기억과 안전의 길’이 만들어진 배경과, 안내판 설치가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으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일 수밖에 없는 이유 등이 적힌다. 두 번째 안내판엔 시민들이 붙인 포스트잇 등에서 간추린 메시지가 게시된다. 세 번째 안내판엔 사진작가, 시각예술가, 그래픽 디자이너 등이 참여한 예술작품이 ‘윈도우 갤러리’ 형태로 전시된다. 빌보드 내용은 두 달에 한 번씩 교체된다. 또 참사가 발생한 골목 밑자락엔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남아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바닥 표지석이 보도블럭과 같은 높이로 설치된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 설치된 임시 추모 공간에 애도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포스트잇은 그간 시민단체가 수거·관리해왔다. 이영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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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현장은 공식 관리주체가 없어 지금껏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정비해왔다. 부산에서 추모를 위해 현장을 찾은 직장인 이종석(50)씨는 “정부가 대처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기억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최소한의 도리”라고 말했다.
이태원 ‘기억과 안전의 길’은 참사 현장에 기억 공간이 비교적 빠르게 조성된다는 점이 다른 참사의 사례와 비교된다. 통상 대형 참사가 발생한 직후 유족 등이 추모 공간 조성을 요구하지만, 집값·땅값 하락, 상권 침체 등 경제적 이유로 번번이 좌절을 겪어왔다.
1995년 502명의 희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위령탑은 참사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4㎞ 이상 떨어진 매헌시민의숲(양재시민의숲)에 있다. 건립연도도 참사 발생 3년이 흐른 1998년이었다. 1994년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 희생자 위령비도 성수대교 북단에 3년 뒤 설치됐다. 하지만 제대로 된 보행로가 없어 차도 갓길을 걸어야 접근할 수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
이태원 참사도 유사한 전철을 밟을 뻔했다. 유족과 상인 등은 지난해 12월부터 추모 공간 조성을 요구해왔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유족과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8일 용산구청이 중간 정비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후 구청 측이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 입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대화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면서 합의에 이르렀다.
여기엔 상권 침체 우려에도 뜻을 모은 상인들의 의지도 큰 힘이 됐다. 유태혁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회장은 “참사 발생 직후 국화꽃과 분향소를 치우는 것부터 문제였지만, 유족과 고충을 협의하면 바로 조치를 해주셔서 갈등으로 치닫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모두가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고 서로 배려하고 대화한 과정이 중요했다”고 덧붙였다.
조종수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그간 한국 사회엔 삶과 죽음을 명확히 경계 긋는 인식이 있어 추모 공간 조성이 쉽지 않았다”며 “이태원 기억과 안전의 길은 유족, 생존자, 지역 주민, 지방자치단체가 협의체를 상설화해 일상의 추모가 가능한 공간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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