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도체 제재 앞에 무력한 줄 알았던 중국이 반격에 나섰다. 미국이 자국 기업들은 물론 한국, 대만과 같은 동맹국까지 동원해 압박했지만, 중국이 이를 뚫어내고 자체 제작한 첨단 반도체를 들고나왔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던 '중국의 반도체 자립'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중국의 대표적인 전자기기 제조회사 화웨이가 공개한 새 플래그십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 때문에 전 세계 테크 업계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 스마트폰에 화웨이가 자체 설계한 7나노미터급 칩 '기린 9000S'가 탑재됐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전문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했고, 중국의 파운드리 기업 SMIC가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 산업을 이끄는 삼성전자와 TSMC가 3나노미터 양산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7나노미터급 칩이 왜 화제가 될까. 중국이 7나노미터급 반도체를 자체 생산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충격을 주고 있다. 2019년부터 이어진 미국의 대중제재 이후 첨단 반도체 제조 능력을 상실했다고 알려졌던 중국이 예상치 못한 한 방을 날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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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꿈을 꺾었던 미국의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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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는 크게 두 부분에서 진행됐다. 중국으로의 반도체 완제품이 수출 차단이 하나, 반도체 제조 기술의 유입 차단이 다른 하나이다.
중국의 완제품 확보를 막는 것은 이를 활용한 중국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서는 GPU를 비롯한 첨단 반도체가 필수인데, 이를 막아 중국의 인공지능 개발도 억제하겠다는 게 미국의 계획이다.
반도체 제조 기술의 유입을 막는 것은 반도체 공정 기술 발전 자체를 늦추려는 의도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의 반도체 제조 기술 발전의 속도를 늦춰 미국과 동맹국의 기술 우위를 가져가겠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화웨이는 2020년 미국의 제재로 5G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게 되면서 5G 스마트폰 생산을 멈추게 된다. 독자적인 5G 칩 개발에 나서지만, 이 역시 이를 생산해주던 대만의 TSMC가 미국의 대중제재에 동조하면서 수포가 된다. 5G 칩은 최소 7나노미터급의 공정이 필요한데, 전 세계에서 이를 소화할 수 있는 파운드리 회사는 미국에 우호적인 TSMC나 삼성전자뿐이었다.
화웨이의 주문을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회사인 중국 파운드리 회사 SMIC는 앞선 두 회사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20나노미터 공정이 주력이었다. 결국 화웨이는 자체 칩 개발을 중단해야 했고, 5G 스마트폰 독자 생산의 꿈도 접게 된다. 하지만 몇 년 뒤 갑자기 화웨이가 SMIC와 손을 잡고 7나노미터 칩으로 돌아온 것이다. 10년이 넘는 기술격차를 단숨에 뛰어넘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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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어떻게 7나노 칩을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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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중국은, 정확히 SMIC는 어떻게 7나노미터 공정 기술을 확보했을까?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우선 SMIC가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정말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 과정에서 7나노미터 이하 공정에 필수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미국 몰래 중국으로 반입했을 거란 예측이다.
EUV는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ASML 역시 미국의 대중 제재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루트로는 중국이 이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혹여나 중국이 장비를 확보했다고 해도 이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낮다. EUV는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ASML 기술자들이 현장에 상주하면서 이를 미세 조정하는 작업이 필수이다. 그러니 중국이 이 장비를 어떻게 입수했다고 한들 ASML의 기술 지원 없이는 이를 활용해 7나노 반도체를 만들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7나노 반도체 제작에 무조건 EUV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한 단계 아래 기술인 심자외선, 즉 DUV 장비로 여러 차례 가공을 하는 방식으로도 제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SMIC가 이 방식으로 이번 기린9000s 칩을 만들었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EUV 장비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7나노 칩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이게 유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경우 수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7나노 공정의 경우 DUV를 활용하면 EUV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절반 이하의 수율이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같은 비용과 재료를 들인다고 해도 건져낼 수 있는 멀쩡한 칩이 절반이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심지어는 SMIC의 DUV를 이용한 7나노 공정 수율이 15%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니까 중국이 7나노 칩 생산에 '성공'한 것뿐이지, 이를 양산하고 있다거나, 상용화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성능이나 상용화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번 7나노미터 기반의 기린 9000S 칩의 등장은 점차 높아지는 중국의 기술 자립도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의견도 있다. 그간 재료와 부품을 수입해 싼값에 조립해 판매하던 중국 기업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직접 부품을 만들며 자립도를 높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화웨이의 새 스마트폰은 기린 9000S 칩만이 아니라 제품의 90% 이상이 중국 내에서 수급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게 사실일 경우 소재, 장비, 제조까지 대부분 중국이 자급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 화웨이와 중국의 기술 자립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면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티타임즈TV'에 오시면 더 많은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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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기자 jaygoo@mt.co.kr 박의정 디자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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