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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월 270만원’ 약속, 현실은 최저임금…“국가 주도 취업사기”[국감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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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임금 약속하고 조선업 이주노동자 확대

막상 한국 오면 ‘최저임금’ 이중계약 만연

“국가 주도 취업사기…노동부가 관리해야”

경향신문

지난 6월28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선박들이 건조되고 있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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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조선업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최소 1인당 국민총소득(GNI) 70%’ 임금을 약속하고 데려온 숙련공 이주노동자들이 실제로는 최저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가 ‘국가 주도 취업사기’를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과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실시한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를 보면, 최근 조선업 쿼터 확대로 국내 조선소에 취업한 이주노동자 상당수는 정부가 약속한 임금최저선보다 낮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었다.

정부는 조선업 인력난 해소 대책으로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를 대폭 확대해줬다. 2022년 4월에는 조선소 용접공·도장공의 E-7 비자 할당 인원수(쿼터)를 폐지하고 내국인의 20%(현재 30%)까지 고용을 허용했다. 2020년 약 2000명이던 E-7 비자 인력 쿼터도 지난 6월 3만명까지 늘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적어도 쿼터가 부족해서 외국인이 못 들어온다는 얘기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숙련공인 E-7 이주노동자들을 유입하기 위해 내건 약속은 ‘GNI 70%~80%’ 수준의 임금이었다. E-7 비자는 원래 GNI의 80%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2023년부터 조선업과 중소·벤처기업, 비수도권 중견기업 등은 이 기준을 ‘GNI 70%’로 하향했다. 예를 들어 2022년 E-7 비자로 한국 조선소에 취업한 이주노동자는 월 269만8800원(시급 1만2913원), 2023년 취업한 이주노동자는 월 246만1840원(시급 1만1779원)을 받아야 한다. 법무부는 사증 자격 안내 매뉴얼에서 “원칙적으로 기본급을 기준으로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예외적으로 통상임금을 인정”한다며 “급여가 심사기준 이하인 경우 원칙적으로 발급을 제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약속과 달리 E-7 조선소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최저임금을 받고 있었다. 고국에서 체결한 근로계약과 별도로 한국에서 근로계약을 다시 체결하기 때문이다. E-7 이주노동자 사증 발급 주체는 법무부·외무부지만, 구인·구직 실무는 현지 송출업체와 국내 송출업체 등 민간이 담당한다.

이 의원실과 금속노조는 이주노동자들의 피해 유형을 3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고국에서 ‘통상임금’만으로 GNI 기준을 맞춘 근로계약을 맺고, 한국에서는 최저임금 기본급에 월 고정연장수당과 연차수당을 더해 GNI 기준을 맞춘 계약서를 새로 쓰는 경우다. 월 고정연장수당과 연차수당은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없는데 이를 포함한 것이다. 고정연장수당은 ‘공짜 연장노동’을, 연차수당 사전 지급은 ‘휴식권 침해’를 부를 수 있다.

경향신문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과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확인한 조선소 이주노동자(E-7)들의 한국 근로계약서. E-7 비자 조선소 이주노동자에게 줘야 하는 ‘GNI 70%(월 246만1840원·시급 1만1779원)’은커녕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이 책정돼 있다. 금속노조 제공


두 번째 사례는 고국에서 ‘기본급+숙박비+식비’ 명목으로 월 임금을 계약하고, 한국에서는 숙박비와 식비를 대폭 삭감·공제해버리는 경우다. 금속노조가 공개한 한 이주노동자의 계약서를 보면 고국 계약서에는 월 통상임금이 269만8800원(기본급 191만4400원+숙박비 28만7000원+식비 49만7360원)이지만, 한국에서 쓴 계약서에는 ‘숙박시설 제공 시 매월 10만원 공제’ ‘식사 제공 시 매월 20만원 공제’ 등 조항이 있었다. 금속노조는 “고정수당은 30만원으로 삭감됐고, 이로 인해 통상임금은 231만580원이 됐다”며 “완화된 기준인 GNI 70%(246만1840원)도 준수하지 못했다”고 했다.

세 번째 사례는 고국에서 쓴 계약서부터가 잘못된 경우다. 한 이주노동자는 고국에서 월 통상임금 270만원 계약을 맺었는데, 최저임금 기본급에 약 79만원의 월 고정연장수당을 더해 통상임금을 산출했다. 금속노조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고정연장수당을 통상임금이라며 근로계약을 맺었지만, 법무부는 매뉴얼대로 발급제한을 하지 않고 사증을 발급했다”고 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이주노동자들의 몫이다. 금속노조는 “조선소 업무의 육체적 강도를 고려하면 이런 저임금은 800만~1200만원의 수수료를 송출입업체에 내고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이탈하케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은주 의원은 “애초 약정했던 임금과 다른 임금을 받는 것은 쉽게 표현하면 취업사기, 특히 본 건은 국제적 취업사기에 속한다”며 “취업사기를 방치하면 정부가 자랑하는 이주노동자 인력 충원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이어 “취업사기로 조선업 임금의 하방압력이 생기면 결국 조선소를 떠난 국내 노동자들이 돌아올 이유도 없어 인력은 계속 부족하고 숙련도는 낮아져 조선업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며 “법무부가 사실상 통상임금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차라리 E-9 비자처럼 고용노동부가 E-7 비자 관리를 맡는 게 나을 것”이라고 했다.



▼ 더 알아보려면

조선소 이주노동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경향신문은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1년을 맞아 조선소 이주노동자들(E-7)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국에서 ‘용접 베테랑’이었던 한 이주노동자는 인터뷰 중 기자에게 “제가 오히려 궁금한 게 있다”고 물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아래 기사에서 확인해보세요.


☞ “한국 조선소 도와달래서 1200만원 내고 왔는데…이게 뭡니까?”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7121525001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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