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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1호' 최종길 교수 50주기…"과거청산은 인권·정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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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최광준 경희대 법전원 교수 인터뷰…"국가폭력 범죄 공소시효 없애야"

연합뉴스

최광준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고(故)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의 장남인 최광준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유스호스텔(옛 중앙정보부 본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10.16 away777@yna.co.kr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여기가 그 유명한 남산 중앙정보부 본관이었던 곳입니다. 많은 분이 이곳으로 끌려와 고문받았는데 특히 '의문사 1호'라 불리는 최종길 교수 사건은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유스호스텔에서 한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서울 다크투어'를 지켜보던 최광준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0년이 지났지만 아버지가 완전히 잊힌 건 아닌 거 같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최 교수는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 의문사한 고(故)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의 장남이다.

최종길 교수의 50주기(19일)를 앞두고 최 교수를 옛 중앙정보부 터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최종길이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것은 최 교수가 열 살이던 1973년 10월19일. 유럽 간첩단 사건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중앙정보부에 자진 출두한 지 사흘 만이었다.

그 해 10월25일 중앙정보부는 "최종길이 간첩임을 자백하고 여죄를 조사받던 중 용변을 보겠다며 7층 화장실에 가 창문으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최종길이 숨지기 2주 전인 10월4일 서울대 법대 학생들이 유신 반대 시위를 하다가 무더기로 연행됐다.

최종길은 교수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장을 보내 항의하고 사과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교수는 아버지에 대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한 스승이었다"고 평가했다.

"아버지는 6·25전쟁 참전 경험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며 반공 교육을 해주던 분이셨어요. 그런 아버지께서 간첩으로 몰려 돌아가시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장례식 때 관을 뜯어 열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최 교수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사진 앨범을 들춰봤다. 1970년대 초 가족과 함께 미국과 독일에 초빙교수로 간 최종길이 자녀들을 찍은 사진을 모아 만든 앨범이었다.

최 교수는 "다정다감하고 자상한 아버지셨다"며 "저희와 헤어질 걸 꼭 아셨던 것처럼 추억거리를 만들어주고 가셨다"고 회상했다.

'간첩의 자식'으로 낙인찍힌 최 교수는 초등학교도 네 차례나 전학 다녀야 했다. 아버지의 한 지인은 "그러니까 진작 자수했어야 했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연합뉴스

고(故)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왼쪽)와 최광준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광준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84년 최 교수는 아버지가 박사 학위를 받은 독일 쾰른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의 지도교수인 게르하르트 케겔 교수의 가르침을 받아 아버지처럼 민법을 전공했다.

최 교수는 "학교 곳곳에 아버지의 체취가 녹아있는 것 같았다"며 "아버지의 학위 논문이 꽂힌 법학도서관에서 학생 조교로 일하며 그리움을 달랬다"고 말했다.

1993년 귀국한 최 교수는 국가폭력 피해자의 유족이면서 인권법 전문가로 의문사 진상규명 운동에 참여했다. 최 교수를 비롯한 유족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2000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할 수 있었다.

2002년 의문사위는 최종길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상 살인죄 공소시효(15년)가 지나 의문사위는 고발과 수사 의뢰를 하지 않았다. 최종길이 정확히 어떻게 숨졌는지도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최 교수는 "국가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배제돼야 한다"고 말한다. 의문사위 발표 직후 관련 법안이 처음으로 국회에 제출됐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무산됐다.

최 교수는 "국가폭력 범죄는 조작·은폐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 모르고 지나치는 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며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아직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국가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비상임위원으로도 활동했던 최 교수는 국가폭력 희생자를 기억할 '진실화해재단'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도 과거 청산의 중요한 요소"라며 "희생자의 삶과 유족의 목소리, 사건 자료 등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과거의 인물과 현대의 인물이 호흡할 수 있는 '기억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 교수에게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매달렸던 '법'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법이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정의입니다. 그리고 그 정의의 개념 안에는 과거 청산도 모두 포함된 거예요. 불행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away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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