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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분쟁 지도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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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뉴스] 데이터로 보는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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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부뉴스 네 줄 요약

· 유대인들은 1900년 초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오기 시작합니다. 건국 선언 이후인 49년엔 한 해에 24만 명 규모로 이주해 오고, 소련이 해체한 90년대 초에도 20만 가까운 유대인들이 들어옵니다.

· 유대인이 들어오면서 기존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이 되어 떠나게 됩니다. 1950년엔 91만 4,221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난민이 되었고, 2020년엔 그 규모가 570만 명으로 늘어납니다.

· 오슬로 협정 등을 통한 평화적 시도는 극우 세력에 의해 저지당하고, 온건파의 자리는 강경파로 메꿔졌습니다. 분노를 먹고 자란 폭력은 테러로 이어졌고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는 100건이 넘습니다.

· 2023년 UN 보고서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지방에 인도주의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210만 명으로 전체 팔레스타인 인구의 절반에 육박합니다. 가자 지구에 있는 119만 명은 식량 위기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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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새 12일이 지났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희생자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안타까운 마음만 늘어갑니다. 너무나도 복잡한 외교적, 정치적, 종교적 상황 속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 건 그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이겠죠. 국가 간의 결정, 정치인들의 선택으로 굴러가는 역사에서 영향을 받는 건 독자 여러분을 비롯해 우리 일반 사람들일 테니까요. 오늘 마부뉴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그런 ‘사람들’에 집중해서 풀어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견디고 겪어왔는지 데이터를 준비해 봤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해 볼게요.

PART 1. 이스라엘은 건국한 유대인 '사람들'



우선 왜 하나의 땅을 두고 이스라엘, 즉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이 갈등을 빚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할게요. 모든 일이 발생한 곳은 바로 지중해의 동부 연안 지역입니다. 이 지역을 일컬어 팔레스타인이라고 하죠. 물론 유대인들은 이 지역을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걸 좋아하진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가나안 지방이라고 부르죠. 아래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팔레스타인 지방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고, 또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여러모로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인지라 오래전부터 많은 제국들이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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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이곳엔 이스라엘 왕국이 있었습니다. 초대 사울왕부터 시작해서 다윗왕, 솔로몬왕 같은 걸출한 왕들이 다스려왔죠. 하지만 이스라엘 왕국이 로마에 정복당하면서 왕국에 살던 유대인들은 중동과 유럽 곳곳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이를 일컬어 디아스포라라고 해요. 디아스포라는 원래 살던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을 뜻합니다. 중앙아시아에 사는 고려인들 역시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원래 살던 터전을 떠나 유럽 곳곳에서 살던 유대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시선은 좋지 않았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의 악덕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시선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반유대주의적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던 유대인들은 1880년대부터 유대인들만의 독립국가 재건을 목표로 삼았어요. 성경에 나오는 약속의 땅, 예루살렘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자는 이른바 ‘시온주의’가 커지기 시작한 겁니다.

1900년 초부터 유대인들은 조금씩 팔레스타인 지역들로 돌아오기 시작하죠. 하지만 이미 그곳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삶의 터전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아랍국들도 종교가 다른 유대인들이 자신들 주변에 오는 걸 반기지 않았어요. 당시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 왔는지 알 수 있는 데이터를 준비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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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래프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의 규모를 나타낸 자료입니다. 1920년부터 1946년까지 자료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BJPA(버만 유대인 정책 아카이브) 자료이고, 1948년 이후부터는 이스라엘 통계청 자료를 활용했어요. 1920년에서 1946년까지 유럽에서 넘어온 유대인들은 모두 37만 6,415명 규모입니다. 가장 많을 때엔 한 해에 6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넘어왔죠.

이렇게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넘어오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바로 1917년에 영국이 유대인들의 땅을 되찾아 주겠다는 ‘벨푸어 선언’을 했기 때문이죠. 당시 영국의 외무대신 아서 벨푸어는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국가 수립을 약속했어요. 영국은 1920년 이 지역에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세웠고 영국의 약속을 믿고 유대인 사람들은 속속들이 이 지역으로 모이기 시작한 겁니다. 수 천년 간 고향을 잃고 떠돌아다니던 유대인 사람들 입장에선 영국이 고향을 만들어주겠다는 데 안 올 이유가 없었던 거죠.

그리고 1947년, 유대인들이 유대인들만의 나라 이스라엘을 건국합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건국 이후 1949년에만 한 해에 24만 명 가까운 유대인들이 이민을 오면서 유대인 사람들의 규모는 급격히 커집니다. 물론 이때 말고도 1990년대 초에 이민이 확 늘어나는 때가 있는데 요건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할게요.

그런데 이스라엘의 건국을 주변 아랍국들이 가만두진 않았겠죠. 일단 그 지역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있고 말이죠. 건국 선언과 동시에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웬걸요? 당연히 열세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이 아랍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성공적인 건국을 이뤄냅니다. 영국이 만든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78%를 이스라엘이 점령하게 되죠. 그렇다면 원래 그 지역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Q. 모든 문제의 원흉은 따로 있다?

영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영국은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1917년 ‘벨푸어 선언’을 했고, 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맥마흔 선언’이라는 또 다른 약속을 1915년에 했거든. 벨푸어 선언에선 유대인들에게 독립 국가 건설을 약속했던 영국이, 맥마흔 선언에선 아랍 지역에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워주는 걸 약속했던 거지.

근데 또 영국이 실제로는 ‘맥마흔 선언’을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게, 제3의 협정이 있었다는 사실! 영국은 당시 아랍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면 프랑스, 러시아 제국과 함께 3국이 어떻게 이 땅을 나눠 먹을지에 대한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1916년에 맺었어. 앞에서는 아랍 사람들을 위한 척했지만, 실제는 자신들의 배를 불릴 생각만 한 거지. 사실상 삼중 플레이를 한 영국이 지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불씨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어.


PART 2. 삶의 터전이 사라진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스라엘이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78%를 점령하게 되면서 원래 그 지역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순간에 삶의 터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는지 데이터로 살펴볼게요. 아래 지도에서 빨간 점으로 표시된 곳은 기존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던 마을 중에 이스라엘 건국 전쟁으로 인구가 줄어든 곳을 찍은 겁니다. 400개 가까운 마을이 파괴되었고, 원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마을은 유대인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대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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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다 다른 지역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겠죠. 이번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디아스포라인 겁니다. 이스라엘 건국 전쟁 이후 1950년에 집계된 팔레스타인 난민은 UN 데이터 기준으로 무려 91만 4,221명입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영토인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가 당시엔 각각 요르단 왕국과 이집트 왕국이 점령하고 있었던 때거든요. 이 지역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주변 시리아, 레바논 등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때를 일컬어 대재앙을 뜻하는 안나크바(an-Nakbah)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 간의 갈등은 계속 이어졌어요. 1956년의 2차 중동 전쟁, 1967년의 3차 중동 전쟁, 그리고 1973년의 4차 중동 전쟁까지. 수십 년간 이어져온 갈등을 수습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1994년 12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사이에 드디어 처음으로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거든요.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의 미국이 중재를 섰고, 팔레스타인의 자치와 선거를 인정하고, 이스라엘 군의 재배치와 철수 내용이 담긴 오슬로 협정이 탄생했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협정의 주역이었던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 PLO의 야세르 아라피트 등은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분명 폭력이 아닌 평화적 협상이라는 점에서 진일보 한 건 맞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 측 모두 불만이 있던 협정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선 가장 큰 문제인 유대인 정착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거든요. 아까 PART 1에서 본 이스라엘로 이주해 온 유대인 그래프 기억나죠? 1990년대 초에 또 한 번 급증하는 시점이 있는데, 소련이 붕괴하면서 소련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이스라엘로 이주해 오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새로 들어온 유대인들의 정착지를 팔레스타인 땅에 지었고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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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민 기자 hyemin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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