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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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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전쟁 2주 뒤에야… 아세안, 민간인 공격 ‘늑장 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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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9개국 정상 "휴전 촉구" 성명
이-팔 두고 각국 이해관계 엇갈린 탓
한국일보

19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현지 주민들이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숨진 희생자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라파=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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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 2만 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에 대해 처음으로 규탄 성명을 냈다. 이달 7일(현지시간)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일어난 지 2주 만에 나온 늑장 대응이다.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회원국들 간 종교와 이해관계가 엇갈린 탓이다. 가까스로 ‘한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각국 내에서는 여전히 이스라엘 또는 팔레스타인을 비판하는 시위가 이어지며 갈등도 좀처럼 봉합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속가능한 휴전 촉구" 성명 발표


21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얀마를 제외한 아세안 9개 회원국 정상은 전날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걸프협력회의(GCC) 정상들과 만나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상황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민간인에 대한 모든 공격을 규탄하고 지속 가능한 휴전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담긴 공동성명도 발표했다.

동남아시아는 이번 전쟁과 관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외에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지역이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인근 키부츠(집단 농장)에서 일하던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태국의 경우 지금까지 3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도네시아인, 말레이시아인 다수도 현지에 발이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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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서 판나바 찬드라라마야(오른쪽 세 번째) 주이스라엘 태국대사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숨진 태국인 노동자들의 시신 운구를 준비하고 있다. 태국 외무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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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국제 분쟁으로 자국민이 희생할 경우, 각 국가가 선제적으로 비판에 나서는 점을 감안하면 공식 대응이 2주나 늦어진 셈이다. 하마스의 공격, 뒤이은 이스라엘의 보복 직후부터 친(親)이스라엘 진영과 친팔레스타인 진영은 물론, 제3 세계까지 양측의 잔혹행위를 성토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가까스로 한목소리 냈지만… 갈등 지속


이는 각국 이해관계가 상충돼 있는 측면이 큰 탓이다. 그간 아세안 10개국은 국제문제에서 똘똘 뭉쳐 외부 도전에 대응해 왔다. 역내 단결을 통해 강대국에 맞서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좀 다르다.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는 하마스가 전쟁 단초를 제공했음에도 종교적 이유 때문에 이들을 지지한다. 반면 이스라엘제 무기를 수입하는 국가(싱가포르·베트남 등)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보복 행위에 눈감을 수밖에 없다. 공동 대응을 하기 힘든 이유다.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가 늘어나고 중동 정세가 시계제로에 처하면서 뒤늦게 규탄 대열에 합류하긴 했지만, 전쟁 범죄 책임 등을 두고는 의견을 통일하지 못했다. 결국 이번 성명도 △국제법에 기초한 평화적 해결 촉구 △가자지구에 대한 연료·식량·의약품의 원활한 전달 △민간인 인질 보호 및 석방 등 인도주의적 위기에 초점을 맞추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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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미국 대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자카르타=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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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의견 통일’도 요원하다. 각국 내에선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정상들이 가까스로 공동 대응에 나선 날,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각각 1,000명 이상 시민들이 모여 이스라엘 규탄 시위를 벌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시위대는 미국 대사관 앞까지 몰려가 미국을 ‘사탄’이라고 부르거나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웠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형제국인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지하며, 이를 가로막는 이스라엘과는 외교관계도 맺지 않을 만큼 사이가 나쁘다.

싱가포르에서도 시민들이 각각 이스라엘 또는 팔레스타인의 민간인 학살을 비판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 조사를 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공공 안전'을 이유로 이번 사태에 대한 시위나 집회를 허용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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