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근무 인력 대부분 부서 옮겨
핼러윈 안전대책 공지엔 심장 덜컥
적절한 치료 못받고 트라우마 호소
"그날로 돌아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10·29 이태원 참사 당일, 참혹했던 현장을 가장 먼저 목격한 이들이 있다. 이태원 파출소에서 근무하던 경찰관들이다. 약 1년 전 이태원 파출소 소속 A씨는 파이낸셜뉴스에 "사건 발생 이후 파출소의 모든 직원이 현장에 뛰쳐나와 1시간 넘게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등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구조에 나섰다"고 말한 바 있다.
■참사 이후 냉소적으로 변해
A씨는 참사 이후 냉소적으로 변했다. 억울하다는 마음도 안고 살았다. 한동안은 언성을 높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경찰 조직 내에서도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는 동료가 은연중에 현장 경찰을 탓하는 취지의 말을 쉽게 내뱉는 일들을 겪었기 때문이다.
A씨는 "심지어 같은 경찰관마저도 현장에 없었던 이들은 참사를 그냥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며 '그때 거기 있던 경찰들 왜 그랬대' 등 말을 한다"며 "현장에서 죽은 희생자들을 처리하고 조사를 받는 사람이 그들이 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A씨를 비롯해 당시 이태원 파출소에 근무하던 인원 대부분이 부서를 옮겼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의 상처는 여전하다고 한다. 특히 참사 1주기가 다가올수록 가슴이 뛰고, '핼러윈 안전대책'과 관련한 공지를 받을 때면 심장이 덜컹했다는 것이 A씨의 최근 심정이다.
A씨는 "일상을 계속하려면 나쁜 기억을 잊고 살아야 하는데, 잊고 산다는 자체가 죄책감이 든다"며 "'나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경찰들
당시 긴급심리지원 등 기회가 있었지만 경찰관 다수가 전문적인 트라우마 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초동대처에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아 '죄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가 컸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고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A씨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시민들을 구하지 못한 마음의 짐은 현장에 있던 누구라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A씨는 그날로 돌아가더라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낀다고 한다.
A씨는 "'압사'라는 개념은 당시 아무도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며 "지구대 전 인원이 동시에 수십건씩 밀려드는 신고 처리에 여념이 없었고, 현장 경찰들이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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