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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이슈 연금과 보험

[단독]국민연금 개혁안 자문위 회의서도 “C학점 이상 못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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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계산위 회의록 들여다보니

소득대체율 의견 엇갈려 18개案

정부측 “다양한 안 원해”… 24개로

복지부 ‘맹탕 개혁’ 해명 자료도 거짓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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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C(학점) 이상 받기 힘들 보고서입니다.” ―8월 18일, 권문일 국민연금연구원장

“국민들이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8월 11일,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재계위) 회의록에 기록된 발언들이다. 국민연금의 ‘내는 돈’(보험료율)과 ‘받는 돈’(소득대체율) 등을 조합해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것을 두고 개편안 보고서를 낸 재계위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이어진 것. 단일안을 유도해야 할 정부위원이 오히려 “소득대체율 인상안도 넣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시나리오가 늘어난 사실도 확인됐다.

● 정부 측이 “‘더 받는 안’ 넣어달라” 요청

29일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에 게재된 재계위 회의록에 따르면, 8월 말 공청회를 앞두고 위원 사이에서 격론이 일었다. 공청회에서 공개할 보고서에 현행 40%인 소득대체율을 45∼50%로 올리는 방안을 포함할지를 두고 찬반이 갈린 것.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정부위원 2명과 민간위원 13명 등 총 15명으로 재계위를 출범시키며 “재계위 논의 결과 등을 토대로 개혁안을 도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5월 말부턴 ‘논의가 민감하다’는 이유로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이를 게재했다.

당시 재정 안정을 중시한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습니다’ 식의 보고서를 내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라며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포함하는 데 반대했고, 대다수 위원이 이에 동의했다. 그 결과 공청회에선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제외하고 △보험료율 인상(12∼18%) △수급 개시 나이 상향(66∼68세) △기금 투자수익률 제고(0.5∼1%포인트) 등을 조합한 18개의 시나리오가 공개됐다.

하지만 이달 13일 마지막 회의에서 정부 측은 “소득대체율 인상안도 최종보고서에 포함시켜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이스란 복지부 연금정책관은 “정부 입장에서는 다양한 안이 왔으면 좋겠다”라며 “(소득대체율) 45%는 포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결국 재계위가 19일 복지부에 제출한 최종보고서에는 소득대체율을 45∼50%로 올릴 경우의 재정 전망까지 추가해 총 24개의 방안이 담겼다.

● ‘지난 정부도 방향만 제시’ 주장, 사실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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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가 27일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는 2055년으로 예측된 재정 고갈을 막기 위한 보험료율 수치도 담기지 않았다. 재계위 최종보고서보다 후퇴한 방안을 발표한 것.

그 대신 복지부는 국민연금 지급을 법으로 보장하고 저소득층에 보험료 지원을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재계위 회의록을 보면 이마저도 정부 내에서 조율되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난다. 강기룡 기획재정부 경제구조개혁국장은 6월 9일 재계위 회의에서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에 대해 “이견이 있다는 점을 (회의록에) 남겨 달라”고 요청했다. 8월 11일엔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확대에 대해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라며 반대했다.

복지부는 ‘맹탕’ 개혁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28일 설명자료를 내고 “지난 정부들의 종합운영계획 4건 중 2건은 개혁 방향만 제시했다”라며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숫자를 포함했을 땐 오히려 찬반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돼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보험료 인상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이는 한 해 전인 2007년 7월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인하하고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는 제도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는다”라며 보험료 동결을 명시했고, 2014년 2월 공무원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개혁해 수백조 원의 재정을 아꼈다.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이번 정부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30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연금 개편안을 의결한 뒤 31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국회에 정부안을 낼 때 재정계산위원회 등의 최종보고서와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결과, 대국민 설문조사 등을 함께 제출해 논의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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