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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공매도 전면 금지

“우린 접근조차 어려운데 순기능?”… 尹정부 공매도 금지 배경엔 개미들 ‘불공정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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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거 다 떠나서, 개미는 접근 자체가 힘듭니다.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신용도를 갖춘 투자자라면 평소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쉽게 사고팔듯 공매도(空賣渡·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남의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되갚아 차익을 남기는 투자 기법) 거래도 간편하게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20년 넘게 개인 투자자로 활동해온 A씨는 “공매도 제도를 영원히 없애자는 개인은 없다. 금지 기간에 불공정한 부분을 바로잡아주길 바랄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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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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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1400만 개미의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아온 공매도를 6일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전면 금지했다. 공매도 금지는 이번이 4번째다. 본래 공매도는 시장 과열을 완화하고 지나치게 오른 주가를 조정하는 순기능을 지녔다. 같은 맥락에서 앞선 3번의 금지 조치는 대형 금융 위기에 맞서 시장을 안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이번 금지 결정은 배경이 다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5일) 브리핑에서 “외국인·기관이 불법 무차입 공매도 행위를 반복한 탓에 국내 주식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시장 신뢰도 저하됐다”고 했다. 공매도의 순기능이 작동하기에는 운동장이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다는 의미다. 불공정 거래와 전쟁을 선포한 윤석열 정부가 금융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공매도 금지 카드를 꺼내든 배경이다.

공매도는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팔고, 나중에 주가가 떨어지면 싸게 사서 되갚는 투자 기법이다. 기본적으로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인데, 국내 증시에서는 막대한 자금력과 정보력을 갖춘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가 공매도 시장을 98% 이상 장악하고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올해 90일 이상 공매도 목적으로 주식을 빌린 곳이 전체 기관 투자자(85곳)의 85%(72곳)에 달했다. 대차 종목은 공매도가 허용된 350개 전(全) 종목이었다. 개인은 공매도 상환 기간이 90일로 제한되지만, 외국인·기관은 사실상 기간 제한이 없다.

정리하면, 외국인과 기관은 주가가 내려가야 돈을 벌 수 있는 독점 시장에서 상환 부담도 없이 거래하고 있다는 말이다. 무기한 공매도는 의도적인 주가 하락과 불법 공매도, 시세 조종 등에 악용될 수 있다. 게다가 외국인·기관은 공매도 담보 비율도 105%로 개미(120%)보다 유리하다. 이런 여건이다 보니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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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1월 5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금융위원회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금융당국은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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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외국인·기관과 개인 간 신용도 차이가 다른데 상환 기간, 담보 비율을 똑같이 해달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최근 금융감독원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인 BNP파리바와 HSBC의 관행적인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처음으로 적발해 충격을 안겼다. 높은 신용도를 앞세워 개미보다 유리한 거래 환경을 인정받은 뒤 조직적으로 부당 이득을 취해온 것이다.

주식을 ‘선(先)매도, 후(後)대여’하는 무차입 공매도는 ‘선대여, 후매도’하는 차입 공매도의 반대 개념이다. 주식시장 안정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다. 전날 브리핑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20명 규모의 ‘공매도 특별 조사단’을 출범해 공매도 거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10여개 글로벌 IB를 전수조사하겠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납득하기 힘든 거래 방식도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 제도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로 언급된다. 공매도 거래는 전화 통화나 메신저 채팅으로 차입 계약이 성사되면 대여 기관이 수치를 수기로 입력하고 매도 주문을 넣는 식으로 진행된다. 전산화 시스템에 자동으로 입력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의미다.

과거 기관의 무차입 공매도 행위를 적발할 때마다 금융당국이 솜방망이 과징금 처벌에 그쳤던 것도 “수기 과정에서 단순 실수”라는 기관 측 해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BNP파리바·HSBC의 관행적 무차입 공매도 적발을 계기로 ‘단순 실수’는 믿지 못할 설명으로 전락했다. 한 개인 투자자는 “우주여행을 꿈꾸는 시대에 공매도만 수기 방식을 고집한다.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의심이 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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