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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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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냄새' 두리안에 빠진 중국인들…"영토분쟁에도 수입 포기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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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분쟁 중인 필리핀과 상하이 무역박람회서 대규모 두리안 공급계약

머니투데이

한 중국 도매상점에서 상인이 두리안을 진열하고 있다./사진=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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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에 대해 사실상 무역 제재를 가하는 가운데서도 두리안 수입만은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지독한 냄새 만큼이나 중독성 강한 두리안의 단맛에 대한 중국인들의 유별난 사랑 앞에 국제 정세도 무용지물이다.

7일 중국 현지언론에 따르면 글로벌 농업기업 돌(Dole)은 지난 5일 상하이에서 개막한 중국 국제 수입박람회 현장에서 주중 필리핀 대사관과 대규모 두리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돌은 세계 최대 농산품 유통 기업이면서, 중국 내 최대 두리안 공급자 중 하나다. 돌과 필리핀 측은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현지서는 이번 계약에 엄청난 양의 필리핀산 두리안과 파파야를 중국으로 수입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두리안은 흔히 천국의 맛과 지옥의 냄새를 가졌다고 표현된다. 과일 자체가 풍기는 냄새는 지독하지만 부드러운 과육의 식감과 당도는 탁월하다. 칼륨과 비타민, 식이섬유도 풍부하다. 똑같아 보이는 두리안도 품종에 따라 맛이 다른데 지난해 기준 말레이시아 농업부에 총 204종의 두리안이 등록될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돌 측은 중국 내 두리안 판매량이 2019년 이후 매년 평균 20% 이상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중국 세관 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 이후 금액 기준 중국이 가장 많이 수입하는 과일도 두리안이다. 중국에서 특정 과일 소비가 매년 20% 이상 늘어난건 두리안이 처음이다.

HSBC는 지난 9월 중국인들의 두리안 사랑에 대해 보고서까지 냈는데, 이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년간 무려 60억달러(약 8조원)어치 두리안을 수입했다. 세계 두리안 생산량의 91%를 중국이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인들이 두리안을 먹기 시작하면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의 두리안 수확량은 7년 전에 비해 60%나 늘어났다.

중국인들이 두리안에 빠지게 된건 두리안의 희소성과 더불어 독특한 생김새, 비싼 가격이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중국 내에선 오랜 기간 체리가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가격표를 보지 않고 체리를 살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 '체리 자유'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제는 '두리안 자유'라는 말이 대신 쓰인다.

국내 수요가 늘어나자 중국은 남부인 하이난도(해남도)에 대규모 두리안 농장을 조성하고 올해 첫 수확을 실시했다. 그러나 수입산에 비해 맛과 향이 신통찮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재배가 늘어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당분간 수입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두리안 시장 팽창에 가장 먼저 이득을 본건 중국의 전통적 우호국인 태국이다. 중국으로 향하는 수입 두리안의 99%를 한때 태국이 공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도 수출 전선에 가세하고 있다. 두리안 앞에 우방국과 적국이 따로 없다. 베트남에선 너도나도 중국 향 두리안 재배에 나서면서 쌀 생산량이 줄어들까봐 정부가 단속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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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안 먹는 법을 설명하는 중국 네티즌들의 온라인 영상./사진=영상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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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과 중국의 이번 두리안 계약이 눈길을 끄는건 양국이 심각한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며 중국의 대양 진출을 막는 보루다. 남중국해에서 물리적 충돌을 수반한 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그런 필리핀에 대해 이미 사실상 무역규제를 하고 있다. 중국 세관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중국과 필리핀 간 무역은 전년 동기 대비 16% 줄어든 541억달러였다. 특히 중국의 대 필리핀 수입은 이 기간 19%나 줄어든 143억6000만달러에 그쳤다. 세계 최대 수입시장인 중국의 문이 닫히자 필리핀은 농산품 판매 채널을 늘리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이 돌을 중개상 삼아 필리핀과 대규모 두리안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내에서도 "두리안은 포기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삼엄한 무역규제를 벌이고 있지만 두리안 시장에서만큼은 중국이 백기를 든 셈이다.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중국이 자의적으로 그은 해상경계인 이른바 '소 혓바닥 라인'에 필리핀과 함께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나라다. 물리적 충돌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지만 두리안 시장에선 중국의 최우방국 중 하나다.

기약없이 늦은 일처리로 유명한 중국 세관도 두리안에 대해서는 대우가 다르다. 말레이시아 농업 및 식량안보부 찬풍힌 차관은 지난달 페이스북을 통해 "중국 대표단을 만나 두리안을 포함한 6개 품목에 대해 서명했다"며 "말레이시아산 두리안에 대한 검역을 신속하게 진행하는데 동의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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