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지난달 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 및 소관기관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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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농협중앙회장이 연임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 개정안’이 정기국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여야가 다투는 다른 쟁점 법안과 달리, 이 법을 둘러싸고는 같은 민주당 의원들끼리 거센 설전을 벌이는 상황이다.
문제의 농협법 개정안은 국민의힘 이만희, 더불어민주당 윤재갑·김승남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다. 4년 단임제인 농협중앙회장 임기제를 1회 연임제로 바꾸도록 한 게 골자다. 현재의 단임제는 2009년부터 도입됐다. 민선 1기 한호선(제14~15대) 전 회장을 필두로 원철희(제16~17대)·정대근(제18~20대) 회장까지 전부 업무상 횡령·뇌물수수·배임 등 부패 범죄에 연루돼 실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돌리자는 게 이번 개정안이다.
야당 내부 갈등은 지난해 12월 8일 국회 농해수위 소위원회에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시 소위원장인 김승남 민주당 의원이 이 법안 통과를 의결하자, 같은 당 윤준병 의원이 항의하는 과정서 “소위 ‘부장연합’이라고 하는 데서 제기된 공문을 보셨냐, 내가 읽어드리겠다”며 로비 의혹을 폭로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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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의원은 당시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은 농협법 ‘셀프 연임’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 국회 전문위원, 농식품부 등에 조직의 인력 및 비용을 들여 로비를 하고 있다. 중앙회 기획실을 통해서 비자금을 조성해 때로는 회장 자신이 직접 국회의원을 비밀스럽게 만나서 비자금을 직접 전달하고 있고, 이러한 로비 대상 의원 명단은 중앙회 기획실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문서 내용을 읽었다. 또한 “일부 국회의원은 연임 법안 통과를 대가로 농협회장에게 인사청탁을 하고 있다”는 내용도 그대로 읊었다.
그러자 회의를 진행하던 김 의원이 “출처 없는 개인의 전달된 문자를 여기서 읽으시면 안 된다”고 제지했다. 윤 의원이 “제가 경험한 것이다. 양심선언이라도 해야 될 거 같다”고 반박하자, 김 의원이 “그게 문제가 있으면 법적 고발조치하면 되지 않냐”고 맞받았다. 두 사람은 “창피한 줄 알라”(윤준병), “사과하시라”(김승남)는 고성도 주고받았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듯했던 ‘로비 의혹’은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 또 불거졌다. 지난 9월 21일 회의서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초선이고 힘 없는 저도 거의 융단 폭격이다 싶은 제안, 이번 법을 통과시켜주면 제가 다음 총선에 나갈 때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제안도 받았다”며 “그래서 윤 의원의 폭로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낀다”고 말한 것이다. 법사위 회의에선 “법안은 통과시키고, 현 회장님이 출마하지 않겠다고 얘기해 주시면 모든 논란과 의심은 다 사라진다”(박용진 의원·8월 23일)는 말도 나왔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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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중앙일보는 최근 로비 정황이 담긴 농협 내부 투서를 입수했다. 한 농협 간부가 민주당 관계자에게 전달한 이 투서에서 작성자는 “(이성희 회장이) 농협법 개정을 통해 연임하려고 A·B·C·D·E 등 민주당 의원들의 인사청탁을 노골적으로 받아주고”라며 호남 지역 민주당 의원 5명의 실명을 거명했다. 그러면서 “E의원의 인사청탁인 P를 △△위원장으로 보임하기 위해 임기 중인 K 위원장을 내쫓아 버리니 참으로 대단하다”라거나 “중앙회 간부를 철저히 정치화시켜 민주당 의원 포섭 성과에 따라 인사에 반영했다”라고 주장했다. 해당 투서는 일부 민주당 의원실에도 전달됐다.
지목된 민주당 의원들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A의원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한다”며 “로비 의혹은 (나와)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B의원은 “요새 국회의원이 얼마나 칼날 위를 걷고 있는데 로비 받아서 법안을 처리하겠나”라고 말했다. C의원은 “농협중앙회장을 본 일도 없고, 그분의 연임이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D의원은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E의원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농협중앙회도 이를 부인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윤준병 의원 건에 대해선 사실무근이라고 국회에 여러차례 설명드렸고, 투서에 나온 P위원장 인사 건도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전방위 입법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법안 통과를 위해 고유의 대관 업무를 통해 국회의원을 상대로 이해를 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불법적 제안을 한 적은 일절 없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측은 2009년 단임제가 도입될 당시부터 ‘연임 제한’은 과도한 자율권 침해였다는 입장이다. 이미 여러 개혁 조치를 통해 자정 노력을 해 온 만큼 조합원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보다 안정적으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회장이 연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국회에서 같은 입장을 내비쳤다.
다만 내년 1월 열리는 차기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목전에 두고 개정안을 심사하고 있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민주당 법사위원인 박주민 의원은 법안 통과 전망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밝혔지만, 한 법사위 관계자는 “오는 9일 열릴 법사위 때 농협법을 끼워 넣어서 처리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논란이 이처럼 증폭된 상황에서 법이 통과되면 자칫 국회가 또 검찰에 휘둘리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오현석·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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