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는 기관·외국인 투자자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서 공매도 거래를 한다며 현재의 공매도 제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주장한다.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이유다. 국회와 정부도 이들의 주장을 일부 수용해 공매도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원활한 증권 거래를 위해 둔 예외적인 제도까지 없애자는 개인투자자의 주장에 시장은 우려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자칫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적인 제도 변경이 오히려 개인투자자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매도를 둘러싼 개인투자자와 시장 전문가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가운데 양측의 주장에 대한 팩트체크에 나섰다. 현재 공매도 제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과 함께 ‘평평한 운동장’이 되면 개인투자자에게 유리할지 따져봤다.
정근영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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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담보비율, 기관도 헤어컷 적용시 실제론 140% 넘어
먼저 개인투자자 단체가 꼽는 첫 번째 ‘기울어진 운동장’은 공매도 담보유지비율이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주식을 투자자가 증권사 등에서 빌려 판 뒤, 나중에 주가가 내려가면 헐값에 주식을 사서 갚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투자 기법이다.
가령 현재 시가 1만원짜리 주식 한 주를 빌려 팔아 1만원을 확보한 뒤 주가가 8000원으로 떨어지면 8000원짜리 주식으로 갚아 2000원의 차액을 버는 식이다.
이때 증권사는 돈을 빌려줄 때처럼 주식을 빌려줄 때도 위험 관리 차원에서 일정한 담보를 요구한다. 개인투자자는 빌린 주식 금액 대비 보유해야 할 담보 총액(현금인 증거금과 빌린 주식 금액)의 비율을 최소 12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100만원 어치 주식을 빌리려면 최소 20만원의 담보를 가지고 오라는 의미다. 해당 비율을 적용하면 개인은 증거금 2000만원을 갖고 최대 1억원의 주식을 빌려 공매도 거래를 할 수 있다.
반면 최소 담보유지비율 105%를 적용받는 기관·외국인의 경우 100만원어치 주식을 빌리려면 최소 5만원의 담보가 필요한 셈이다. 이 경우 500만원어치의 담보물(현금이나 주식)을 갖고도 최대 1억원의 주식을 빌려 공매도 거래를 할 수 있다.
일부 개인투자자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주식을 빌릴 수 있도록 설계된 기관·외국인의 담보 비율을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개인과 기관·외국인 간 담보 비율의 차이는 거래 방식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개인은 장내에서 소액의 주식을 증권사로부터 빌리는 대주거래 방식을 이용한다. 이때는 일정한 증거금(주식 약정 대금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리 예탁해야 하는 보증금)만 있어도 주식을 빌릴 수 있다. 담보물이 현금인 셈이다.
반면 기관·외국인은 장외에서 주식을 담보로 차입하고자 하는 주식을 빌리는 대차거래 방식을 활용한다. 이때는 담보물이 주식이기 때문에 담보 주식이 하한가로 떨어질 가능성 등을 고려해 헤어컷(유가증권 등의 가격 할인)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기관은 헤어컷으로 담보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실제 담보 비율은 140%를 넘어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 전면 금지 및 전향적인 공매도 제도개선 추진을 밝혔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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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담보 비율, 기관 수준 낮추면 반대매매 손실도 커져
주가가 오를 때는 개인에게 적용되는 담보 비율을 기관·외국인 수준으로 낮추는 게 반드시 유리하지도 않다. 빌린 주식의 가격이 오르면 산식에 따라 담보 비율((빌린 주식 금액+증거금)/빌린 주식 금액)이 더 낮아져 담보 부족 상태가 발생해 증권사가 고객 주식을 임의로 처분하는 반대매매에 따라 손실을 볼 가능성이 더 커진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주가가 올라 최저 담보 비율을 벗어나면 증권사는 곧바로 반대매매에 들어가기 때문에 개인에 적용하는 담보 비율을 낮추는 게 반드시 개인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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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상환기간, 기관이 더 길지만 요청 시 바로 갚는 ‘리콜’ 의무도
개인투자자가 꼽는 두 번째 ‘기울어진 운동장’은 차입한 주식의 상환 기간이다. 통상 개인은 90일(상황에 따라 연장 가능)까지 주식을 빌릴 수 있지만, 증권사와 장외 계약으로 이뤄지는 기관·외국인의 경우 지정된 상환 기간은 없다. 이 때문에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는 개인과 기관·외국인에 적용하는 주식 상환 기간을 똑같이 맞추라는 요구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기관·외국인에 적용하는 기준이 반드시 유리하다고 볼 순 없다. 기관·외국인처럼 대차거래를 할 때는 주식 대여자가 중도 상환(리콜)을 요구하면 요청 후 2영업일 안에 주식을 되갚아야 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관·외국인은 빌린 지 하루가 지난 다음이라도 리콜 요청이 오면 이에 응해야 한다”며 “이는 개인이 이용하는 대주거래에선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 유리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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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수수료, 기관이 무조건 낮지 않아. 종목에 따라 30% 적용도
세 번째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거론되는 것은 주식을 빌릴 때 적용되는 일종의 대출이자인 수수료율이다. 개인투자자는 기관·외국인에겐 연 1%대에서 적용하는 수수료율이 개인에겐 연 2~4%로 더 높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또한 빌리는 주식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는 게 증권업계의 설명이다. 개인에겐 2~4%대의 일정한 수수료율이 적용되지만, 기관·외국인은 차입 수요가 많은 주식은 20~30%, 수요가 적은 주식은 1%대로 종목마다 각기 다른 수수료율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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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조성자 공매도 제한 시, 파생 투자하는 개인 피해”
일부 강성 개인투자자는 증권시장 내 원활한 거래를 돕기 위한 시장조성자·유동성 공급자의 공매도까지 제한하라고 요구했다.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의 공매도는 시장 안정을 훼손할 우려가 없기 때문에 지난 7일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에서 예외를 적용했는데, 이마저도 제한하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이런 요구가 관철될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개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시장조성자·유동성 공급자 등은 거래가 부진한 종목이나 상장지수펀드(ETF), 주식선물·옵션 등에 의무적으로 매수·매도 호가를 제시해 거래가 이뤄지게 하는 일종의 ‘촉매’ 역할을 한다.
투자자가 매수 주문을 낼 때 시장조성자의 보유 물량이 부족하면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형태의 거래는 가격 안정화가 목적이기 때문에 주가의 급격한 변동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작다. 이 때문에 공매도 금지 조치의 예외로 적용받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특히 주식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의 경우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의 공매도 거래를 제한하면, 거래를 활성화할 수 없고 이 때문에 만기 도래한 상품을 팔지 못한 개인들의 손실만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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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실익 불분명한데, 일부 주장 여과 없이 정책에 반영해선 안돼”
문제는 ‘누워서 침 뱉기’식의 개인투자자 주장이 여과 없이 법과 제도에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과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각각 개인과 기관·외국인 상관없이 공매도 상환 기간과 담보유지비율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도 이 같은 정치권 움직임에 부응해 ‘상환 기간·담보비율 등이 여전히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송민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같은 개인이라도 공매도 규제 강화는 현재 주식을 보유한 개인에겐 유리할 수도 있지만, 가격이 내려간 뒤 주식을 사려는 개인에겐 불리할 수 있다”며 “제도 변화로 인한 부의 재분배 과정에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볼지 따져보고 신중히 정책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매도 제한은 주식 시장 변동성을 키워 거래를 오히려 위축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며 “향후 정책은 불공정 거래 처벌을 강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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