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8 (목)

이슈 교권 추락

짓밟힌 교권… “아이들에게 다시 희망을 가르치고 싶다”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수업 중 폭행당한 교사의 호소

자녀 학폭 회부 통보에 학부모 난동

재판 중에도 “전남편이 조폭” 협박

사건 후 2년 가까이 병가 내고 휴직

일상생활 불가능할 정도로 큰 고통

23일 1심 선고… 교사단체 엄벌 탄원서

“교권 침해 아닌 교사의 삶 살해한 범죄”

‘아이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가르치는 교실로 돌아가고 싶다.’

학교로 찾아온 학부모에게 폭행당한 교사는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에서 이처럼 말했다. 현재 교단에 서지 못하고 있는 자신과 평생 겪지 않아도 될 일의 기억을 갖게 된 제자들의 미래를 생각해달라고 그는 재판부에 호소했다.

수업 중이던 이 초등학교 교사를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학부모의 1심 선고는 오는 23일 인천지법에서 열린다. 피고인 학부모가 공탁금을 내건 가운데 교사 단체가 법원에 제출한 엄벌 탄원서에는 전국의 선생님 1만여명 이름이 올랐다. 피해자의 법률 대리인은 ‘교권 침해’가 아닌 ‘교사의 삶이 살해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일보

인천교사노동조합과 초등교사노조 소속 교사들이 지난 7일 인천지법 앞에서 ‘수업 중 교사 폭행 학부모 엄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인천교사노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업 중인 교사 폭행… 징역 2년 구형

학부모 A씨는 앞서 2021년 11월 인천 서구의 한 초등학교 복도에서 피해자인 교사 B씨를 폭행했다. 아들의 학교폭력 심의위원회 회부 통보를 받고 학교로 찾아가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 당시 A씨는 교실에 있던 초등생 10여명에게 ‘우리 애를 신고한 게 누구냐’고 소리 질러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도 받는다. B씨는 같은 해 10월 옆반에 다니는 A씨 자녀의 학폭을 목격하고 지도했었다.

검찰은 지난달 24일 인천지법 형사9단독 정희영 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었다.

B씨는 사건 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무혐의로 결론은 났지만, A씨가 ‘아동학대’와 ‘쌍방폭행’을 주장하는 바람에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심리적 고통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사건 후 2년 가까이 병가를 내고 휴직 중이다.

◆“아이들 앞에서 고개 숙이고 싶지 않았다”

B씨는 A씨의 선고를 앞두고 지난 7일 총 3700자에 달하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는데, ‘용서할 수 없다’는 분노를 담았다. A씨 비위를 맞췄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없었겠지만, 제자들이 또 다른 학폭 앞에 고개 숙일까 우려해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재판을 통해 A씨는 전남편이 조직폭력배였다는 등 협박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시 그날로 가도 같은 선택을 하겠다던 B씨는 ‘선생님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아이가 자신의 학폭 신고를 탓했다’던 학부모 탄원서에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모두 9차례에 걸친 A씨 재판에서 B씨 제자들은 자기들의 증언이 선생님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A씨는 법정에서 자신도 힘들었다고 주장하면서 개인 사정 등을 고려해달라는 입장을 재판부에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사과의 의미가 아닌 형량을 낮추려는 의도라며 A씨 공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B씨의 법률 대리인은 인천교사노동조합이 대신 전한 회견문에서 “교권 침해로 불러서는 안 되는 심각한 범죄”라며 “피고의 범행을 순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교사의 삶을 살해한 심각한 범죄”라며, 학교와 아이들의 안전 그리고 교사 보호 수단은 엄벌뿐이라고 밝혔다.

인천교사노조 등은 앞으로 재판부 판결이 우리나라 교사의 현주소를 증명할 거라며 “교사는 악성 민원을 감당해야 하고 그 가해자 처벌은 미미하다면 누가 대한민국의 교육을 책임진다고 나서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나아가 “교사들에게 희망을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며 법원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했다.

◆폭행도 교육활동 침해… 국회 ‘교권보호 4법’ 통과

국회는 지난 9월 ‘교권보호 4법’으로 불리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으로 교직 사회가 정부와 국회에 교권보호 대책을 촉구한 지 약 2개월 만이다.

교원지위법 개정안은 아동학대로 교원을 신고해도 정당한 사유 없이 직위 해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고, 더불어 형법이 규정하는 상해와 폭행·협박 등의 행위도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규정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가해자와 피해 교원의 즉시 분리와 교원 보호를 위한 공제사업의 실시 근거 마련 등 지원 강화 방안도 담았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복지법 17조가 금지하는 신체·정서적 학대로 보지 않는다면서 보호자의 교직원 인권침해 행위를 금지하고 학교 민원은 교장의 책임으로 규정했다. 교원의 유아 생활지도권을 명시한 유아교육법 개정안 역시 교육과정에서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들 법안 공포에 “교육부와 관계부처는 하위법령 개정 등 후속 조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현장 정상화에 더욱 힘써달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한 바 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