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간) BBC 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WSJ), 시사주간지 타임 등은 캐머런의 복귀에 대해 ‘충격적(stunning, shock)’이라고 표현했다. 타임은 “그의 복귀는 특히 노련한 정치 분석가들에게 놀라운 일”이라며 “하원의원도 아닌 데다, 전직 총리가 내각 고위직을 맡은 일은 극히 드물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캐머런의 복귀는 영국 정치 역사상 가장 주목할만한 재기”라고 평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신임 영국 외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 들어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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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 만에 전임 총리의 외무장관 발탁
영국에서 선출된 하원의원이 아닌 외무장관이 발탁된 건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정부의 일원이었던 피터 캐링턴 상원의원이 마지막이다. 전직 총리가 외무장관으로 복귀한 사례는 1964년 총리직을 사임한 알렉산더 더글러스 흄이 1970년 외무장관에 발탁된 뒤 53년 만이다.
통상 영국 정부는 양원(상원·하원)의 의원 중에 장관을 발탁해왔다. 연구 관련 분석 매체인 더컨버세이션은 “영국이 양원 의원 중에 장관을 기용하는 것은 규칙이 아니라 헌법상 관례일 뿐이지만, 매우 강력하게 준수돼온 협약”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하원의원이 아닌 캐머런 전 총리를 내각에 합류시키기 위해 왕실에 급히 요청해 그를 귀족(경·Lord)으로 임명한 뒤 상원의원으로 앉혔다. 영국은 상원의 경우 귀족만 맡을 수 있고, 국왕이 임명하거나 귀족끼리 선거를 거친다.
데이비드 캐머런(왼쪽) 전 총리가 13일(현지시간)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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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에 무너진 지도자의 부활"
이 같은 이례적인 복귀에 대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결정으로 무너진 지도자의 부활”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는 2010년 보수당 집권 시대를 열고 6년간 정부를 이끌었지만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가결되자 이에 책임지고 2016년 7월 사임했다. 당시 그는 영국의 EU 잔류를 주장했다. 반면 현 총리인 수낵은 브렉시트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NYT는 캐머런의 복귀는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영국이 세계 무대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노련한 외교 전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캐머런은 총리 시절 외교 정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2015년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초대해 영국과 중국의 ‘황금시대’를 예고했다. 2011년 미국이 주도하는 리비아 군사 개입에 동참해 독재자 무하마드 엘카다피를 전복시켰다.
또 미국 백악관을 모델로 영국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창설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비서실장을 지낸 조너선 파월은 “수낵은 외교 정책에 큰 관심 없고, 내년 총선 때까지 외교 분야를 아예 맡길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수낵 총리 대변인은 “현재 대(對) 중국·중동 외교 정책이 캐머런 장관 하에서도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BBC는 “캐머런의 경력, 즉 정부 수장으로서 6년과 보수당 대표로서 11년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의 외교 위기로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수낵 총리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영국 국빈 방문 중에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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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둔 수낵의 중도층 포섭 전략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는 수낵 총리가 캐머런 전 총리를 인선해 중도층을 포섭하려는 의중을 드러냈다는 해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WSJ은 “지난 13년간 집권했지만 야당인 노동당에 큰 격차로 뒤지고 있는 보수당이 내년 선거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시도”라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 7년간 보수당이 영국의 우파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보였지만, 수낵 총리는 캐머런 전 총리를 끌어안음으로써 중도층에 호소하는 시그널을 보냈다고 전했다. 이달 초 영국 설문조사기관 유고브의 여론조사 결과, 노동당이 보수당에 21%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캐머런 전 총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동맹을 지원하고 파트너를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외무장관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일각에선 캐머런 전 총리의 기용이 가뜩이나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는 보수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는 퇴임 후 2018년부터 현재 파산한 회사인 그린실 캐피털 고문으로 일한 바 있다. 2021년엔 영국 재무부 등 요직 인사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전방위로 로비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정부 조사를 받았다. 당시 캐머런 전 총리가 해당 회사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주식 옵션으로 7000만 달러(약 930억 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캐머런의 정치적 관에 박힌 마지막 못”으로 불렸다.
그린실의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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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인 노동당의 팻 맥파든 선대위원장은 “이번 인사는 보수당의 실패한 13년에 변화를 주겠다던 수낵 총리의 우스꽝스러운 주장마저 뒤엎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내각 장관은 “보수당에 새로운 인물, 새로운 아이디어가 전혀 없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외무장관을 찾으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는 점은 현 정부에 인사 자원이 없음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한편 유고브는 여론조사를 통해 캐머런 복귀에 관해 38%가 ‘잘못된 결정’이라고 응답했다고 발표했다. ‘잘한 일’이라는 응답은 24%였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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