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편, '플레이어'들에게 직접 듣는다 ① - 민주당 이탄희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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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본격 총선 모드로 돌입하면서 경기 규칙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제 개편 논의가 다시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 졸속적인 선거제 개편은 위성정당 난립을 낳아 정치 불신을 한층 더 심화시켰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총선 4개월 여를 앞두고서야 선거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정치가 그다지 나아진 게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SBS는 연초부터 선거제 개편 논의를 촉발하기 위해 기획 기사들을 다뤄왔습니다. 논의 테이블에 올랐던 많은 제도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지역구 의원을 현행 소선거구제 방식으로 뽑자는 것에 대해서는 여야가 사실상 합의한 상태입니다. 현실적으로 남은 건 비례대표 의원을 어떻게 뽑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 '선거제 논의' 자세한 설명 보기 : 내년 총선 바뀌나…선거제 개혁 동의, 지역구 개편은?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역구 의원과는 상관없이 비례대표 의석을 따로 배분하는 '병립형' 제도로 돌아가자는 입장입니다. 당초 21대 총선 이전 제도로 회귀하자는 입장이었으나, '병립형'을 유지하되 전국을 세 권역으로 나눠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뽑자는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이 모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민주당은 아직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국, 추미애 전 장관과 송영길 전 대표 등이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노린 정당 창당에 나설 수 있단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지도부는 어떤 제도가 당에 도움이 될지 복잡한 계산식을 펼쳐놓고 있습니다. 당내에서는 '위성정당 방지법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소수 정당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분출하고 있습니다.
▶ '병립형'과 '연동형' 자세한 설명 보기 : [스프] 선수들이 스스로 '경기 룰'을 바꿀 수 있을까?
선거제 개편을 논의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이번 주 다시 협상을 시작합니다. 지난 총선, 선거제 논의는 국회 내 폐쇄적인 회의장에서 소수 의원들이 진행했습니다. 국민들은 선거 날 처음 보는 어리둥절한 투표 용지를 받아 들어야만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토양이자 기반인 선거 제도 개편 논의가 또다시 그렇게 흘러가지 않도록, SBS는 다시 선거제 개편 논의를 유권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플레이어'들인 의원들 인터뷰를 통해 자세한 논리를 듣고, 속내도 최대한 솔직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의석 과반을 점한 제1야당에서 가장 크고 활발히 선거제 개편 목소리를 내 온 민주당 이탄희 의원 인터뷰를 싣습니다.
"경쟁자 출현 막는 양당 카르텔 막아야…병립형 회귀는 '입법권 사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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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탄희 의원
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지난해말부터 선거제도 개편 관련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습니다. 보수정당과 소수 진보정당 인사들도 참여하는 초당적 정치 단체 '정치개혁 2050'과 함께 선거제도 개편 관련 토론회와 기자회견을 여러 차례 진행했습니다. 이 의원은 당초 '현행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기득권 양당정치를 허물 수 없다'며 소선거구제를 혁파하고 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올해도 대결구도로 흘러오며 불거진 굵직한 정치 이슈들에 가려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고, 현실의 벽에 가로막혔습니다. 이 의원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속, 비례대표만은 현행법의 '연동형' 요소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Q.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것은 퇴행이고 양당 카르텔을 강화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의원 본인도 '카르텔'이라는 양당 소속인데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A. 대한민국 선거제도의 특성은 253개에 달하는 대부분의 지역구가 소선거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1당 아니면 2당 외에는 당선자를 배출하기가 어렵습니다. 일종의 강요된 밸런스 게임 같은 겁니다. 무인도에 가둬 놓고 '두 사람 중에 한 명 골라라'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47석 골목상권만큼은 거대 양당 두 당이 아니라, 다양한 정당들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도록 한 게 현행법입니다. 병립형은 이 47석의 골목 상권까지 거대 양당이 뚫고 들어가서 거기서도 강요된 밸런스 게임을 하자는 거죠. 둘 중에 하나만 고르게 만드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선거제도를 거대 양당에 유리하게 바꾸는 양당 카르텔법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고요.실제로 2020년 득표율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병립형 제도를 적용해 계산을 하면 거대 양당 합쳐서 290석이 나옵니다. 지금 283석도 87년 체제 이후로 최대치입니다. 그래서 정치 양극화를 막지 못하고 악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을 해보면요, 두 양당이 합쳐서 지지율이 많이 나와도 70% 정도입니다. 국회의원 전체 300석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70%면 200석이 좀 넘습니다. 그런데 두 당이 253석을 독식합니다. 그런데 골목 상권까지 뚫고 들어가서 290석까지 만들어야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양당 카르텔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Q.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연동형으로 바뀌면서 위성정당 난립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나? 정치 환경이 더욱 어지러워진 상황에서 이 제도를 유지하면 온갖 위성정당, 아니 '참칭(僭稱)정당' 난립을 부추겨 난리가 날 거라는 지적이 많은데.
A. 지난 선거 때 위성정당이 만들어진 것이 잘못이지 선거 제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47석 골목 상권을 설정한 것이 문제가 아니고요. 그 골목 상권 안에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골목 상권 의석까지 가져가버린 것이 문제인 겁니다. 신당 난립을 이야기하는데요. 솔직하게 말하면 경쟁자들이 나오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죠. 경쟁자들을 차단하겠다고 하는 것이죠. 전형적인 기득권 논리입니다. 마치 거대 재벌들이 중소기업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택은 어차피 국민들이 합니다. 저는 국민들의 선택권을 넓히는 새로운 신당들의 창당은 언제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그런 정당들 중에서 국민들이 선택을 한 정당들만 22대 국회에 들어와서 국회 구성원이 될 겁니다. 국민들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양당의 논리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경쟁자들의 출현을 우려해서 경쟁자들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선거법을 바꾸는 것은 '입법권의 사유화'입니다. 이런 일들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국민들에게 위임받은 입법권을 경쟁자들을 차단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입법권의 사유화'입니다.
비례의석 수 두고 '권역별 비례'는 대국민 사기…'위성정당 방지법' 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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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국회의장이 전국을 3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거기 권역별로 쪼개서 권역별 비례대표 해보자는 안을 제안했고,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서 논의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A. 47석을 가지고 3개 권역으로 나누는 것은 지역구도 완화의 효과가 거의 없습니다. 사실상 구실 역할만 하는 것이고요. '대국민 사기'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영남과 호남을 합쳐서 하나의 권역으로 만들면 영남에서 민주당 의석이 나오고, 호남에서 국민의 힘 의석이 나오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47석을 가지고는요 대한민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눌 수도 없습니다. 6개 권역으로 나누면 1개 권역에 10석도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3당, 4당, 5당, 6당은 아예 씨가 마르게 됩니다. 양당 카르텔 구조가 더 심해지는 것이고요.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증오 정치가 계속될 것입니다.
Q. 연동형 제도가 위성정당 난립을 부추길 거라는 비판 논리가 여전히 완전히 반박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나?
A. 있습니다. 지금 국회에 제안돼 있는 위성정당 방지법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제안한 법은 지역구 정당과 비례정당의 합당을 사실상 금지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47석의 골목상권에 자기 양자를 보내서 의석을 갖게 한 뒤에 나중에 지역구 정당이 흡수를 해서 의석 부풀리기를 하는 것이 위성정당입니다. 마지막에 합당을 하는 경우에 국고보조금을 삭감하는 법안을 발의해 놨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합당이 어렵다고 하면 위성정당을 만들 동기 자체가 차단되게 됩니다. 이렇게 위헌 소지가 없고 실효성이 있는 위성정당 방지 법안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것들을 지금 빨리 논의해야 합니다.Q. 이런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민주당이 의석을 좀 내려놓더라도 다른 정치 세력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연합을 하자'며 당내 설득에 나섰다. 그런데 이 논리가 '민주당 200석' 논리로 변용되면서 비판도 많이 받고 논쟁도 불러일으켰는데.
A. 민주당 독주가 아니고요, 정반대로 가자는 겁니다. 민주당이 단독 180석에서 의석수 일부를 손해를 보더라도 47석 골목상권을 보장해서 여기에 다양한 정당들이 22대 국회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합리적인 보수 세력, 진보 야당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각 정당들이 일하기 경쟁할 수 있는 체제로 바꾸고 각 정당들이 내놓은 사안들이, 각 정당들이 내놓은 정책들이 사안 별로 동일하다고 하면 민주당이 주도해서 그 연합을 통해서 입법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연합 정치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민주당이 독주하는 것이 아니고요, 다 같이 연합 정치하자는 것입니다. 민주당 기득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고, 민주당의 기득권을 오히려 내려놓고, 대한민국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드는 데 우리 민주당이 앞장서자는 이야기입니다.
Q. 그간 '대선거구제 도입' 등을 주장했으나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고, 이제 '소선거구제' 하에서의 구도로 논의가 되고 있는데 결국 개혁이 후퇴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한 심경은?
A. 저는 앞으로는 선거법, 세비, 국회의원 정수와 같은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문제는 제3 기구, 특히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제3기구를 통해서 정하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나라들도 많고요. 뉴질랜드 같은 경우에는 왕립위원회를 통해서 국민투표를 먼저 거치고, 국회는 국민투표의 결과를 승인하는 방식으로 국회 개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가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나간 건 지나간 것이고요. 일단 눈앞의 싸움은 어떻게 보면 더 명확해졌습니다. 선거법 개악을 막으면 대한민국의 고질병인 반사 이익 구조, 싸움 정치, 끝낼 수 있습니다. 싸움 정치에서 일하는 정치로 바꿔나가는 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지금 싸움이 더 명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유권자가 용인할 수 있는 선택지의 범위, 그리고 '정치력의 수준'
그랜드 센트럴 역을 오가는 군중들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당 조직의 본질에 대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 군중은 전혀 조직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관찰자가 지켜보게 되는 것은 혼란스러운 무질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시간표와 개찰구가 그 많은 사람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체제에서 군중을 이루는 각각의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들에게 주어진 대안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당은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는 방식을 통해 이들을 조직한다.
<절반의 인민주권>, E.E 샤츠슈나이더
'얼핏 보기에는 전혀 조직되지 않고,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대합실의 군중들이 저마다 방향을 찾아가는 건 몇 개의 개찰구와 시간표 때문이다'. 정치학자 샤츠 슈나이더는 정치학의 고전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복잡한 인간 사회에서 정당을 기반으로 한 민주정치가 기능하는 구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매일매일의 바쁜 삶을 살아가는 일반 유권자들에게 선거제도가 갖는 의미도 비슷합니다. 출근길 극도로 붐비는 지하철 대합실에 개찰구가 이상한 곳에 설치돼 있거나, 지나치게 적게 혹은 많이 설치돼 있다면 사람들은 방향을 찾아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탄희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병립형으로의 회귀는 유권자의 선택 폭을 줄이고 양당 카르텔을 심화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연동형 제도를 유지해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당들의 출현을 보장하고, 이렇게 국회에 진출한 제 정치세력들이 연합정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개찰구의 비유'로 돌아가자면, 다양한 방향으로 흘러 가야하는 사람들이 모인 우리 정치 대합실에는 개찰구가 두 군데에만 설치돼 있어, 뻔히 보이는 좋은 길로 나아갈 경로가 막혀 있다는 인식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저곳 아무 데나 개찰구가 뚫리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그리고 '그렇게 중구난방 흩어진 사람들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다시 조직해 낼 힘이 '한국 정치'라는 역 안에 과연 있느냐?'는 질문도 제기됩니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의원들에 대한 인터뷰는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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