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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빈대 공포 확산

다들 거부하면, 학교 빈대는 누가 잡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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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업무담당 지정도 없이 ‘구제·예방’ 공문만

행정직-교사 업무 ‘힘겨루기’에 학생들 볼모로

경향신문

빈대가 출몰한 대구의 한 대학교 기숙사에서 방역 담당자들이 침대를 소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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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모든 교육행정공무원은 빈대와 전혀 무관함을 선언한다.”

11월 9일. 한국노총 교육청노동조합연맹에서 성명서가 나왔다. 내용은 이렇다. 빈대 확산 우려에 따라 정부가 합동대응팀을 만들어 확산 방지에 나선 가운데 학교에도 어김없이 ‘빈대 예방 공문’이 내려왔다. 그런데 일부 학교에서 빈대 예방 및 관리에 관한 업무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게 시키려는 움직임이 노조에 포착됐다는 것. 이에 엄연히 ‘보건 업무’인 빈대 문제를 절대로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이 맡지 않겠다는 것이다.

며칠 뒤인 11월 16일. 이번엔 충남교사노동조합에서 성명이 나왔다. “빈대 방제는 학교와 교사의 교육업무가 아닌 상시적 시설관리 업무”라는 주장이다. 충남교사노조는 “빈대는 감염병을 일으키지 않는 모기, 파리, 바퀴벌레와 같은 유해 해충의 일종”이라며 “유해 해충을 잡는 일도 보건 교사의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양측의 성명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학교 행정직 공무원들은 빈대 예방 및 관리 업무가 (보건) 교사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교사들은 빈대 문제가 시설관리 등 학교 행정업무라고 맞선다.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빈대 방제를 못 맡겠다”로 압축된다. 빈대 확산 우려를 팬데믹에 빗대 ‘빈대믹’이라고 부르는 요즘이다. 행정공무원도, 교사도 싫다면 학교 빈대는 누가 잡아야 할까.

■‘교통정리’ 안 해준 정부, ‘빈대 싸움’으로

정부는 11월 3일부터 행정안전부 등 10개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빈대 정부합동대책본부’를 꾸려 방제 및 확산 문제에 대응 중이다. 빈대 대응을 위한 행동요령이 발표됐고, 매주 빈대 대응 회의가 열리고 있다. 대책본부에는 교육부도 참여한다. 학교는 학생 다수가 모여 머무르는 곳이라 감염·전염 등 보건 문제에서 취약하다. 코로나19나 신종플루 시기에도 학교는 주요 감염 전파장소였다. 교육부는 정부 지침에 따라 일선 교육청에 빈대 구제 및 예방 등을 위한 활동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교육청은 다시 일선 학교에 이 같은 내용을 공문으로 보냈다.

정부의 대응이 발 빠르게 이뤄졌다. 하지만 학교에 “빈대 업무를 하라”고 지시했을 뿐 ‘누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은 없었다. 미흡한 ‘교통정리’ 탓에 행정노조와 교사노조가 각각 성명을 내며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 지역 교육청 관계자는 “애초에 교육부에서 공문이 올 때 업무 담당이 누구인지 정해지지 않아서 우리도 그대로 학교에 전달한 것”이라며 “학교 사정에 맞게 학교장이 업무 담당자를 정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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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경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11월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빈대 확산방지를 위해 정부합동대책본부 첫 긴급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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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 업무가 어떻길래 서로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지방의 한 교육청에서 제시한 ‘빈대 관리 방안’을 보면 이해가 된다. 우선 빈대 담당자가 되면 학교 환경에 따라 자체 점검 계획을 수립해 이를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교실, 당직실, 통학버스, 교내 휴게실, 학교 기숙사 등 학교 곳곳을 다니며 주기적으로 빈대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기록하게 돼 있다. 학생이나 교직원 중 빈대에 물린 이가 있는지, 신고는 했는지 등도 파악해 적어야 한다. 빈대가 안 나오도록 예방 방제도 해야 하고, 혹여 빈대가 나오면 사후 방제도 해야 한다. 여기에 빈대 예방교육, 빈대 관련 학부모 안내 및 응대까지.

통상 학교에는 보건 교사가 1명이다. 6학급 이하 소규모 학교에는 보건 교사가 따로 없다. 행정직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대도시의 큰 학교에야 2~3명이 근무하지만 작은 학교에는 1~2명인 경우도 많다. 보건 교사든, 행정공무원이든 기존의 업무를 하면서 위에 나열된 빈대 업무를 ‘추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왜 양측이 성명서를 내가며 다투는지 한편으론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다만 정부 대책본부가 11월 3일부터 학교 내 빈대 발생 현황을 집계한 결과 의심신고된 곳이 4곳, 이중 빈대가 확인된 곳은 한 곳뿐이다. 빈대 담당자가 되더라도 교사나 행정공무원이 실제 현장에서 빈대를 찾아다닐 상황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무영역 놓고 ‘교사 vs 행정직’ 갈등 반복

이번 빈대 싸움 문제뿐만이 아니다. 일선 학교에서 업무영역이나 분장을 놓고 교사와 교육행정직이 대립하는 일은 수시로 벌어진다. 누구의 업무인지 ‘애매한’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지방교육청의 장학사는 “예컨대 학교의 정수기 관리, 수돗물(수질) 관리, 공기질 관리 등은 보기에 따라선 (보건) 교사 몫인 보건·환경 업무이기도 하고 행정공무원 몫인 시설관리 업무이기도 하다”며 “교육부나 교육청 입장에서도 담당자가 누군지 지정해 공문을 보내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나 교육청이 공문에서 업무 담당을 특정할 경우 해당 노조 등의 반발이 일 것을 우려해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다.

관련 법 규정이나 방역체제 등의 미정립, 정부 차원의 지원 부족이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학교보건미래비전연구회는 “코로나19를 거쳐오고 인플루엔자가 계속 유행하고 있음에도 방역·소독업무 등 학교 감염병 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빈대 문제에 있어 학교 내 부서별 역할과 업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충남교사노조 관계자는 “보건 교사가 방역 등을 포괄하는 ‘환경’ 관련 업무를 하도록 명시하는 현 교육법 시행령은 1990년대 마련돼 시대 변화를 담지 못하고 있어 개정이 시급하다”며 “적어도 해충 구제나 방제 문제에 있어선 지역 교육지원청 등에서 일괄 관리하는 등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도권 한 초등학교 교장은 “보건교사든, 행정직공무원이든 일단 업무를 맡지 않겠다고 버티고 나서면 강제로 업무를 부여하기가 학교장 입장에서도 쉽지 않다”며 “빈대 문제만 해도 관련 학생 건강이나 위생관리, 교육 등은 교사가 맡고 소독이나 방제 업무는 행정에서 맡는 등 적절하게 서로 업무를 나눠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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