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8 (목)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전화 돌려서 찾았다는 수능감독관 학교…"보호 규정 필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감독관 명찰에 적힌 이름으로 근무 학교까지 특정

개인정보 노출 우려되지만…현행 규정은 미비

"수험생 유의사항에 '감독관 보호 내용' 포함돼야"

"감독관 명찰에 실명 적어야 하는지 재검토 필요"

뉴시스

[세종=뉴시스] 자녀를 부정행위 처리했다는 이유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감독관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 피켓을 들고 있는 학부모의 모습. 피켓에는 해당 교사 실명과 '파면', '인권침해 사례 수집 중(비밀보장)'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익명의 일반 시민으로부터 사진을 제보 받았다며 27일 이를 공개했다. 교육부외 서울시교육청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학부모가 교사를 상대로 명예훼손과 협박 등을 저지른 혐의가 있다고 보고 경찰에 공동 고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서울교사노동조합 제공). 2023.11.27. photo@newsis.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종=뉴시스]성소의 기자 = 한 수험생 학부모가 자녀를 부정행위자로 적발한 수능 감독관 학교에 찾아가 "네 인생도 망가뜨려주겠다"고 협박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교육 당국이 수능 감독관 보호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8일 교육계에 따르면 수험생 학부모 A씨는 수능 날(11월16일) 이후 해당 감독관이 재직 중인 학교를 찾아 감독관에게 항의했다. A씨는 해당 교사를 향해 자신이 변호사라고 밝히면서 "우리 아이 인생을 망가뜨렸으니, 네 인생도 망가뜨려주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A씨의 아내는 이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능 감독관의 개인정보는 명찰에 적힌 이름 외에 공개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교육계 등에서는 A씨의 감독관 근무지 파악 경위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A씨가 학원에서 경찰공무원 준비생들을 가르치는 유명 강사이며 경찰대 출신 변호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개인적 인맥을 활용해 감독관의 개인정보를 파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생긴 것이다.

A씨는 지난 27일 입장문을 통해 이 같은 의혹을 반박하며 '자녀가 (명찰에 적힌) 감독관 이름을 외워 놨다가 추정되는 학교마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알아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자녀가) 교육청에 나와있는 전화번호를 가나다 순서대로 걸어 중학교 행정실에 물었더니 거기서 알려줬다"며 "해당 학교는 가나다 앞 순서여서 얼마 걸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 주장이 맞다면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교육청 등 공식 기관을 통한 접촉이 아닌, 마음만 먹고 나서면 명찰에 적힌 이름만 가지고 수능 감독관이 근무하는 학교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직접 특정해 찾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교육계에 따르면 이런 사례가 흔하진 않다.

통상 부정행위로 적발되면 감독관과 수험생은 경위서를 적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에 제출한다. 이후 교육부의 수능 부정행위 심의위원회가 이를 심사해 제재 정도를 결정한다.

교육 당국 관계자는 "(부정행위와 관련해) 학생이 사후에 이의제기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현장에서 적발된 사안을 들고 학교에 직접 찾아가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는 없었다"며 "이번과 같은 사안이 불거진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사례가 없는 경우이다 보니 학부모나 수험생이 감독관 학교를 찾아내 항의하러 가는 등의 상황을 애초에 방지하거나 교사를 보호할 규정은 미비한 상황이다.

수능 감독관들에게 배포되는 수십 페이지 분량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감독관 유의사항'에는 시험 당일 주의사항과 부정행위 유형 등을 규정한 것 외에 학부모나 수험생으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았을 때 대처하는 방법은 적고 있지 않다.

평가원에서 배포하는 수험생 유의사항에도 교권침해 요소가 있는 민원 제기를 자제하라는 취지의 내용은 포함돼있지 않다. 당연한 상식 같아 보이더라도, 교육계에서는 수험생 유의사항에 이러한 내용을 명확히 짚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관계자는 "대다수 학부모와 아이들은 감독관의 수고를 감사히 여기지만 간혹 이런 사건이 벌어진다"며 "수험생 유의사항에도 시험 감독관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내용들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수능 이의제기와 관련해서도 교권 침해가 발생하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교사가 시험 감독을 총괄하는 업무에 대해 총체적인 보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교원단체들은 명찰에 굳이 감독관 실명을 표기하지 않고 다른 방식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서울교사노조 관계자는 "고사장에서 감독관이 패용하는 명찰에 실명을 넣어야 하는지, 교육 당국이 재검토해야 한다"며 “제1감독관, 제2감독관, 제3감독관 같은 방식으로 표기할 수 있는데, 교육 당국이 수능 감독관 개인정보 보호에 둔감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수능을 치른 감독관들은 갖은 사유로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민원분석시스템에 접수된 수능 관련 민원은 5448건으로 집계됐다. 3년간 수능 관련 민원만 5000건이 넘는 것이다.

이 중 감독관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도 상당하다.

실제로 수능 날인 지난 16일부터 27일까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감독관 관련 민원글은 24건 올라와있다.

게시글 중에는 감독관 때문에 수능을 망치게 됐다고 주장하며 징계를 요구하는 글도 있다.

한 학생은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감독관이)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서 계시고, 바로 뒤에서 한숨을 쉬는 등 신경이 쓰이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했다"며 "신경이 쓰이고 불안해 영어를 망치게 됐다. 강력한 징계를 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학부모는 "도장을 찍으러 다니는 감독관 행동이 아이의 집중력을 잃게 만들었다"며 "1년 동안 죽어라 잠도 못 자면서 공부해온 시간을 한순간에 망가뜨리는 감독관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고 적었다.

감독관 업무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교사들도 상당하다.

다년 간의 수능 감독관 경험이 있는 경기도 소재 모 고등학교 교사 B씨는 감독관들이 받는 민원을 '학교폭력'에 비유했다. B씨는 "학교폭력과 똑같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재수 없으면' 민원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부담이 있다 보니, 선생님들이 감독관 업무를 기피하려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교육 당국 관계자는 "이런 사례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논의를 거친 후 내년에는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A씨는 전날 자신의 카페에 올린 입장문을 통해 "해당 선생님에게 죄송함 뿐"이라며 "합의가 되면 좋고 아니더라도 이 부분 공탁을 통해 조금이나마 잘못을 뉘우치고 싶다"고 했다.

교육부와 시교육청은 A씨에게 명예훼손, 협박 등의 혐의가 있다고 보고 구체적인 혐의와 대상을 특정해 이번 주 중 경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soy@newsis.com

▶ 네이버에서 뉴시스 구독하기
▶ K-Artprice, 유명 미술작품 가격 공개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