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민간업자들에게서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30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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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이 30일 1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 경선자금 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았다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것은 검찰 측 핵심 증인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한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김 전 부원장은 “돈을 요구한 적도,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용 유죄’ 배경엔 ‘유동규 진술 신빙성’ 인정
이번 재판의 주요 쟁점은 ‘유동규 진술’의 신빙성 여부였다.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 등 ‘뒷돈’이 오간 사건의 경우 직접적인 물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관련 인물, 특히 돈을 건넨 공여자의 진술이 유·무죄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김 전 부원장 측은 재판에서 유 전 본부장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불법 정치자금을 수억원이나 줬다면서 돈을 전달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을 집중 공격했다. 유 전 본부장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유 전 본부장이 지난해 수사 과정에서 검사와 면담한 뒤 함구하던 태도를 바꿨다면서 유 전 본부장의 진술 번복엔 검찰의 회유가 있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해 9월 말부터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면서 입장을 바꿔 이 대표와 측근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냈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 대표의 대선 경선자금을 김 전 부원장에게 전달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불법정치자금·뇌물 수수 관련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취재진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3.11.30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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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재판부는 김 전 부원장 측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우선 검찰이 ‘불법 면담조사’를 통해 유 전 본부장의 진술 변경을 유도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면담에선 적법절차가 준수됐다”고 했다. 또 “오랜 기간 지속된 부정부패가 의심되는 수사상황에서 기억을 환기하기 위해 면담절차를 여러번 거쳤다고 해서 (진술의) 신빙성을 일괄 배척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진술 번복 경위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 전 본부장은 진술 번복 당시 위례개발사업 비위 등으로 추가 조사를 받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선처를 바라고 검찰의 의도에 부합하게 사실과 다르게 진술할 동기가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유동규 진술의 신빙성은 객관적 상당성, 전후 일관성, 여타 증거들과의 주요 부분이 합치되는지 등을 보아 구체적, 개별적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을 전부 믿을 수는 없지만, 사건별로 따져 신빙성을 각각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불법 정치자금 6억원을 둘러싼 김 전 부원장과 유 전 본부장 간 ‘기억 공방’에서 유 전 본부장의 손을 들어줬다. 유 전 본부장이 전달 일시 등에 대해서 부정확한 진술을 하기는 했지만, 지난 일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진술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도의 오류라고 봤다.
또 “감각적 경험에 대해 세밀하게 진술한 점”도 신빙성을 인정한 근거로 들었다. 앞서 유 전 본부장은 증인신문 과정에서 “(돈이 든) 쇼핑백이 찢어질까봐 한 겹 더 감쌌다” “돈을 준 후 공원 벤치에서 앉아 대화하다 모기에 엄청 물렸다”는 등 당시 정황을 자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정민용·남욱 변호사의 진술과 배치되지 않는 점 등 관련자 진술들이 대체로 일치하는 점을 감안하면 유 전 본부장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같은 이유로 김 전 부원장이 2013년 4월 유 전 본부장에게서 뇌물 7000만원을 수수한 것도 맞다고 봤다.
남욱 변호사가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8개월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3.11.30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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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일부 뇌물 혐의에 대해선 김 전 부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부원장은 2013년 설 및 추석 명절 무렵 총 2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데, 재판부는 유 전 본부장이 명절에 돈을 준 사실 자체를 명확히 진술하지 못하고 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2014년 4월쯤 1억원을 수수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당시 공사 관련 현안이 없었고, 성남시 의회도 사실상 활동을 마친 상황이었다”며 뇌물죄의 성립 요건인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 전 부원장은 항소심에서도 유 전 본부장의 진술 신빙성을 두고 치열하게 다툴 것으로 보인다. 진술의 신빙성에 따라 1, 2심 유무죄가 달라진 사례도 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한신건영 전 대표 한만호씨는 검찰 수사 때는 한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줬다고 진술했다가 재판 단계에서 그 돈을 교회 공사 수주에 사용했다고 말을 바꿨다. 이 사건은 1심 무죄, 2심 유죄로 결론이 엇갈린 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남욱→김용’ 돈 전달한 유동규는 무죄···“법리적 이유”
남 변호사로부터 김 전 부원장에게 자금을 전달한 유 전 본부장은 이날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유 전 본부장을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공모한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는데, 재판부는 유 전 본부장이 정치 행보를 보인 적 없고 남 변호사가 조성한 자금을 관리하거나 사용할 재량도 없었다며 이 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유 전 본부장이 불법적 정치자금 전달에 관여한 것은 명백”하지만, “법리적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유 전 본부장에 대해 “범행의 공범인 동시에 정치자금법 사건의 신고자이기도 하다”며 “깊은 어둠 속에 있던 범행이 유 전 본부장의 진술로 세상에 드러났다”고 했다.
이어 “유 전 본부장은 신고자가 아닌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한동안 그 멍에를 지고 갈지도 모른다”며 “유 전 본부장 같은 이들이 배신자가 아닌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진실을 맞이한 용기를 보여준 사람으로 인정받길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범 간의 불법을 지켜주는 게 이익이 되는 게 아니라 먼저 밝히고 선처받는 게 이익이 되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며 유 전 본부장에게 징역 1년6개월과 추징금 1억4000만원을 구형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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