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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코끼리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젠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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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성매매는 일부, 옛날이 아닌 지금 우리 일상의 문제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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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 쉬운 교육이 있겠냐만, 개중에서도 유난히 더 어려운 교육이 있다. 이를테면 100명이 넘는 인원을 대상으로 대강당에서 열리는 교육에서는 군중 속 고독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점심시간 이후 교육도 어렵다. 앞에서 1인 다역 연기와 온갖 재롱을 떨어봐도 식곤증에 내려앉는 눈꺼풀을 이길 장사가 없다. 교육 환경만큼 교육 대상, 주제를 둘러싼 어려움도 매번 다르다. 어린이 대상 성교육에서는 낯선 개념과 내용을 이해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청소년 대상 성인지교육에서는 이들이 흥미로워할 소재로 내용을 이끌어가는 게 관건이다. 그때그때 더 적합한 방법을 하나씩 찾아나가는 게 교육의 묘미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아 자꾸 피하게 되는 교육도 있다. 내게는 성매매 예방 교육이 그랬다.

미아리, 청량리…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눈감는 사람들


우리나라 공공기관에서는 4대 폭력 예방교육이라 하여, 성폭력·성희롱·가정폭력과 성매매 예방교육을 진행한다. 다른 교육이라고 대단히 환영받으며 진행되지 않지만 개중에서도 유난히 시작부터 어려운 교육이 있다면 바로 성매매 예방 교육이 그렇다. 성매매 예방을 주제로 교육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거니와 강의를 듣는 참여자의 태도도 한층 더 방어적이다. 한 번은 교실에서 팔짱 낀 남자 청소년이 서늘한 냉소로 성매매 피해 여성을 향해 말했다. “그거 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대요?”

칼은 없어도 잔뜩 가시 돋친 말과 태도로 성매매를 바라보는 이는 흔했다. 특히 그런 이들은 대부분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로 피해자 자립을 지원하는 것도 못마땅히 여기며 (심지어 세금으로 지원하는 게 아닐 때도) 세금낭비로 치부했다. 아니 성매매를 ‘젠더기반폭력’으로 여기지 않으므로 ‘피해 여성’이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상한 간극이 있었다.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면서도 동시에 부도덕한 일이라 비난했고, 당면한 문제를 바꾸려는 시도에는 불필요한 간섭이라 말하며 훼방을 놓았다. 다른 문제들에는 그저 무관심하거나 시혜적으로 도움을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왜 성매매 문제에는 이렇게 유난히 더 적대적일까?
한국일보

2004년 성매매 업소가 즐비한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에 경찰차와 단속 인원들이 서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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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청량리, 천호동… 평범하고 익숙한 지명이지만 이렇게 연달아 놓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그저 지역이 아닌 다른 것을 떠올리곤 한다. 바로 성매매 집결지다. 고백하자면 강사양성과정에서 성매매 예방교육을 듣기 전까지 저 명칭에 해당하는 지역이 실제 그 지역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서울에 ‘미아’라는 지역이 있는 것도 알았고, ‘미아리’라 불리는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는 것도 알았는데, ‘미아리’라는 말이 너무 관용구처럼 쓰인 나머지 현실 속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서울 한복판 미아사거리역이 있는 그 지역이 바로 그 미아리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성매매는 줄곧 불법이었고 세상에는 거래될 수 없는, 거래돼선 안 될 무엇이 있다고 믿고 배웠기에 이렇게 나의 일상 가까이에 모든 기대와 신뢰가 무너지는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초등학교보다 많은 성매매 업소… 모를 수 있는 권력 아래 놓인 현실

한국일보

경기 고양시의 한 상가 건물 남자 화장실에 소변기 위에 성매매 광고 전단지가 붙어 있다. 이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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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알아차릴 기회는 적지 않았다. 상가에 있는 남성 화장실 소변기 위에는 눈높이에 맞춰 형형색색의 성매매 업소 전단지가 붙어 있었고 길거리에는 보도블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전단지가 뿌려져 있었다. 사람들이 수도 없이 오가는 역 근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번은 친구를 만나러 나간 수원역 앞에서 성매매 집결지를 맞닥뜨렸다. 대낮의 휑한 거리에 청소년 통행금지구역 표지판이 거대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 표지판 아래 또렷하게 새겨진 수원경찰서장 명의 표시는 지금 이 문제가 얼마나 공공연한 외면 아래 자행되고 있는지 보여줬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모르는 게 아니라 남성이라 모를 수 있는 것, 모르고 싶은 거였다.

당면한 현실의 거대한 문제 앞에서 우리는 때로 외면을 택한다.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성매매 문제가 딱 그렇다. 앞에 언급한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모른 척했다. 이를테면 성매매 집결지가 사라지고 있는 만큼 성매매 문제는 옛말이 됐다는 말이 그렇다.

나도 그런 말을 믿고 싶지만 현실은 성매매 집결지가 재개발이 되며 밀려나고 디지털로 옮겨갔을 뿐 현실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일례로 최근 국내 최대 성매매 알선 사이트를 운영하던 남성이 잡히며 해당 사이트 규모가 드러났다. 사이트 가입자만 70만 명, 등록된 성매매 업체는 7,000여 곳에 달했다. 단 하나의 사이트에 등록된 게 이 정도다. 참고로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초등학교가 6,175개라고 하니, 초등학교보다 많은 성매매 업소가 성행하고 있다는 소리다. 다시 말해, 성매매 문제는 디지털과 접목해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뜨악한 숫자 앞에 성매매의 뿌리 깊은 역사를 들먹이며 어쩔 수 없다고 자조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폭력 조직’에 대해서 같은 이유를 근거로 정당화하려 들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체념의 기준이 그저 역사성 하나만은 아닌 것임이 분명하다.

남성은 어떻게 이 문제에 개입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

2013년 경찰이 서울 강남 일대 불법 전단지 일제 단속에서 압수한 성매매 전단지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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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 코끼리의 존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때, 마음에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그 균열은 때로 분노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앞서 청소년의 사례로 언급한 것처럼 성매매를 둘러싼 광범위하고 막연한 적대도 마찬가지다. 그 분노에는 자신이 성매매를 지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으리라.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의도와 분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니 여전히 성을 둘러싸고 남성에게는 관대하고 여성에게는 더 엄숙한 성차별적 잣대가 남아있는 현실에서 그 분노는 기대와 다른 작용을 한다. 성매매 산업의 기틀이 되는 성차별적인 사회구조 문제가 가려지고 그 안에 자리한 개인의 인성 문제만 부각하고 만다.

불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조사별로 편차가 크지만 성매매 산업의 규모는 작게는 6조 원에서 많게는 37조 원 규모로 추정한다. 2023년 여성가족부 예산이 1조5,000억 원 정도였다. 이 정도 규모의 문제가 단지 개개인의 일탈로 형성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곳에는 공간을 제공하고 여성의 성을 유통하고 판매하고 소비하고 통제하는 절대다수 남성이 존재한다. 남성의 모습을 한 국가의 조직적 방조가, 젠더 권력구조 아래 무관심할 수 있었던 무수히 많은 개인의 방치가, 타인의 성을 구매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왜곡된 섹슈얼리티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이미 우리는 일상에서 성매매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이를테면 성적 대상화가 그렇다. 성적 대상화를 비판하는 게 단지 성적인 노출을 삼가고 순결하게 살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Sexual objectification’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상대를 일방적인 성적 사물, 물건으로 취급하는 행태를 말한다. 물건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상대의 생각,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손쉽게 거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게임에서 이유도, 맥락도 없이 몸매를 부각한 캐릭터들을 쓰는 일이 그랬다. 어차피 가상 캐릭터니까, 게임이니까, 더 잘 팔릴 수 있게 하기 위한 성적 대상화는 쉽게 용인됐다. 그러나 한 번 여성을 향해 대상화된 사람들의 시선은 온라인이나 가상의 존재에만 그치지 않았다. 학교, 회사, 일상에서 여성을 잠재적 연애 대상으로만, 성적인 존재로만 대하는 일이 빈번했다. 다시 말해, 성적 대상화는 성매매의 가장 일상적인 형태의 모습이고 성매매는 성적 대상화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의 모습이다.

이 모든 문제는 분절돼 있지 않고 하나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그리고 줄을 움직이려면 손 놓거나 끊지 말고 당겨야 한다. 일상이 된 성적 대상화부터 단체 채팅방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성 혐오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돼온 성접대 문화까지 하나씩 변화를 만들자. 지금은 21세기이고 곧 2024년이다. 자동차가 날아다니지는 못해도, 최소한 이 뿌리 깊은 폭력을 마냥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는 남성들이 똑똑히 코끼리를 바라봐야 할 때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이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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