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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슈 선거제 개혁

선거법, 또 당할라…정의당의 비애[김영상의 오지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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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 ‘병립형 회귀’ 만지작

위성정당 금지도 공약에서 후퇴 조짐

병립형 원하는 국민의힘은 은근 편승

정의당 입지 좁아지며 다당제 위기로

‘소수정당 배려’ 암묵 합의에 배신?

거대 양당에 진보정당 계속 짓눌려

헤럴드경제

지난달 29일 국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찾은 김준우 정의당 비대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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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과 약간 스쳤던 인연이 떠오른다. 10여년전 한 동반성장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적 있다. 노 전 의원 역시 패널로 왔었다. 정운찬 당시 동반성장위원장 사회로 동반성장 이슈로 난상토론을 펼쳤는데, 노 전 의원과 약간의 의견차로 설전을 벌였던 것 같다. 끝나고 건물 앞 도로변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노 전 의원이 걸어온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온다. “어, 의원님. 왜 여기로? 기사 차타고 가시는 것 아녜요?”라고 했더니 쑥스럽게 웃는다. “저 (실)업자 입니다. 기사 없어요. 버스 타고 가면 되지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땐 의원직이 아니었나보다. 그래도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정치인이 버스를 타고 가다니…. 참, 신선했다. 정의당? 사실 그때 다시 봤다. 정의당 대표인물로 소탈하고 인품도 뛰어나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노 전 의원이 몸담았을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정의당에 대해 시선을 조금 달리한 것은 2020년 총선때였다. 다 알다시피 위성정당이 난립했고, 그때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위성정당격인 미래한국당은 창당을 통해 19석을 얻었다. 민주당 위성정당 격인 더불어시민당도 17석을 얻었다. 정의당은 겨우 5석을 얻었다. 선거 참패였다. 뼈아픈 것은 정의당이 데스노트(부적격 후보자로 찍으면 곧바로 낙마한다는 것)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녔으면서도 당시 스스로 그것을 포기했고 이에 자충수를 뒀다는 점이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지금의 야당은 선거법 개편에 나섰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이는 전국 정당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수가 적을 경우 모자란 의석수 일부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선거법 개편 대의명분은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소수 정당이 국회 진입을 하는데 있어서 문턱을 낮춰주겠다는 것이었다. 소수정당의 비례대표 문을 더 넓혀줌으로써 소수정당의 의석 확대에 인색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총선 한 석이라도 아쉬운 정의당은 야당의 선거법 개편에 직간접적으로 협조했다.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이 폭풍처럼 대한민국 사회를 들썩였을때다. 정의냐 비정의냐, 조국 전 장관을 놓고 친(親)조국과 반(反)조국으로 둘로 쪼개질대로 쪼개진 상태였다. 정의당은 조국 논란에 함구했다. 정의당 상징이었던 데스노트는 장롱 속에 깊숙이 숨겨놓고 꺼내지도 않았다. 민주당의 선거제도 개편의 속내가 검찰개혁 패스트트랙을 위한 것임을 진작에 눈치 챘지만, 이에 눈 감았다. 잠깐 침묵하면 한 석이라도 더 얻을 수 있다는 생각, 다음 총선에 대한 ‘실리’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예상치 못한 게 ‘위성정당’이었다. 불시에 창당했다가 실리(의석수)를 챙기고 여당이든, 야당에 컴백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기위해 설계된 위성정당의 ‘꼼수정치’가 그렇게 위력적일 줄 몰랐다.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을 통해 결국 스무석 가까이 더 챙겼고, 위성정당 창당에 늦게 가세한 민주당 역시 더불어시민당을 통해 17석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정의당이 명분도 잃었고, 실리도 잃었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그때 조국 논란에 확실한 스탠스를 취하고, 준연동형 선거제 개혁때 최소한 위성정당 창당 금지를 못박았다면 이런 뒷말은 듣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병립형은 퇴행일 뿐” 주장에 이재명 침묵지난달 29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실에선 눈길 끄는 만남 하나가 있었다.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인사차 방문한 것이다. 정의당은 최근 비대위 체제를 가동시켰다. 지지난달 정의당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득표율 1%대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득표율 1.83%로, 참담한 결과였다. 진보당 후보(1.38%)와도 별차이가 없었다. 정의당은 한때 지지율이 10%중반대까지 올랐고, 꾸준히 5~7%를 유지해온 전통의 진보정당이라는 점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비상이 걸린 정의당은 이정미 지도부가 전격 사퇴하는 결단을 내렸고, 내년 총선이 정말 위태롭다는 인식 하에 김 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를 출범시킨 것이다. 이런 비대위 위원장이 본격적인 행보를 하면서 제1야당의 이 대표를 찾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의 멘트였다. 김 위원장은 선거법 얘기를 집중적으로 화두에 올렸다. 김 위원장은 “최근 공직선거법 개정 방향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최소한 병립형으로의 퇴행은 막는 유의미한 결단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총선 이전에 적용해왔던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로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지역구(의석수 253석)나 비례대표(47석)는 어디까지나 득표율로 정한다. 매우 간편한 방식이지만, 이는 승자독식 구조로 거대양당의 기득권에 유리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득표율대로 정해지는 병립형은 득표율 외에도 배려하는 몫이 있는 연동형에 비해 비례대표 의석수가 작아진다. 이 제도에선 정의당이 원하는 다당제 진화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정의당으로선 어쨌든 병립형은 최악의 제도다. 병립형에 대한 회귀는 그래서 안된다는 점을 촉구한 것이다.

이 대표는 즉답을 피했다. 이 대표는 “정의당이나 민주당이나 지향하는 바는 같다”면서도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이나 수단, 방법들이 조금씩은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나은 세상과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민주당과 정의당)가 함께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많은 영역에서 협력관계가 잘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민주당과 정의당 색깔이 유사해 협업 필요성을 부각시키면서도 병립형에 대해선 선문답식으로 답한 것이다. 이에 김 위원장의 요구를 간접적으로나마 수용할 수 없음을 시사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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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4당과 정치개혁공동행동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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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이 병립형 아젠다를 화제로 올린 것은 전날 이 대표의 메가톤급 발언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전날 내년 총선과 관련해 “이상적인 주장으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며 선거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게 선(善)이라는 식의 말을 내놨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발언을 통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나 최소한 위성정당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이 대표는 지난해 2월 대선공약으로 ‘비례대표제를 왜곡하는 위성정당 금지’를 내걸었다. 소수정당 비례성을 강화한 선거제 개혁, 비례대표 확대도 동시에 공약했다. 6개월뒤 거대 야당 대표로 뽑힌 자리에선 “정치공학이나 선거의 유불리, 향후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정치개혁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했다. 이런 이 대표가 유튜브방송에서 병립형으로의 회귀를 만지작 거리고, 위성정당 금지 약속에서 이를 철회하는 입장으로 전환한 듯한 스탠스를 취한 것이다. 둘중의 하나로 귀결되면 이 대표는 정치공약을 깨뜨리는 셈이된다. 정치인으로서의 신뢰성에 큰 흠집이 날 수 있다.

그런데도 이같이 입장선회 뜻을 피력한 것은 내년 총선에서 한표라도 더 챙기는 게 낫다는 현실적 판단과 관련이 크다는 분석이다. 윤석열정부를 견제함과 동시에 보호망이 강력한 야당을 유지하기 위해선 현재의 ‘과반 이상 의석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쪽으로 본인 결정을 내렸다는 시각도 나온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민주당이 한표라도 더 얻는 게 중요하지, 정의당 등 소수정당 비례의석 확대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이 대표가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래서 이 대표의 의중 확인이 필요했고, 병립형 회귀는 안된다고 이 참에 못박아야 한다고 여겼다는 게 중론이다.

정의당, 선거법 개편 대응에 무기력증어쨌든 이 대표의 의중이 전해지자,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선거제 개편을 두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2시간30분 이어진 의총에선 총 28명 의원이 발의자로 나섰다. 의견은 병립형 회귀와 연동형 유지로 팽팽하게 나뉘었다고 한다. 민주당이 내내 약속했던 위성정당 방지법 처리도 이뤄지지 않았다. 대선공약 파기에 대한 찬반 논란도 열기가 뜨거웠다. 일부 의원은 “공당 공약을 깨뜨리면 국민들을 어떻게 볼 수 있나. 표를 어떻게 달라고 하나”라고 했고, 일부 의원은 “약속(대선공약)을 파기할 경우 약속 파기에 대한 국민적 사과나 합당한 이유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분위기야 어찌됐던, 당초 ‘연동형+위성정당 금지’를 표방했던 민주당 중지가 과반이상 의석을 빼앗기면 안된다는 현실론에 힘이 실리면서 병립형 쪽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런 예정된 흐름 속에 김 위원장은 이 대표와의 만남에서 최소한 ‘위성정당 금지’라는 확약을 받고 싶어했지만, 이 대표는 이를 외면했다는 게 팩트다.

정의당 입장에선 비통한 얘기지만,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거법 개혁에 관한한 정의당으로선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굳이 다른 야당의 도움 없이도, 거대 의석수(168석)를 가진 민주당은 자당의 의중대로 현안을 처리할 수 있다. 진작부터 병립형 비례대표제 당론을 모은 국민의힘이 묵묵히 민주당의 향후 행보를 주시만 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가지 않고, 현행 준연동형을 유지하겠다면 위성정당을 내놓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병립형이 최선의 시나리오지만, 지난 총선에서 달콤한 열매를 선사했던 위성정당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은 카드라는 것이다. 이렇듯 여당이 지금 흐름에서 밑질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동안 다당제와 소수 정당의 비례대표 문 확대를 통한 소수 의견의 존중과 배려를 정치개혁의 코드로 삼았던 민주당의 대선공약이 진짜 공약(公約)이 될지, 역주행의 공약(空約)이 될지 정의당으로선 손쓸 기회도 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게 뼈아파 보인다. ‘진보정치의 상징’ 노 전 의원의 피와 땀이 녹아있는 정의당, 창당 이래 주창했던 정의와 선명성으로 승부했던 정의당. 정의당은 지금 선거법 개편과 관련해선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결과적으로 공정과 정의의 깃발을 잃어버린채 거대 정치권 틈바구니에서 미미한 존재로 표류했던 2020년 때처럼 말이다. 내년 총선 운명을 현재로선 양당 흐름에 맡겨놓을 수 밖에 없는 정의당, 과연 이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는 있을까.

김영상 논설실장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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