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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3 (금)

[세계포럼] 노무현의 길, 이재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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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노무현 정신’ 운운하기 민망

“불체포 특권 포기” 뒤집기 이어

“연동형 강화” 공약도 파기 시사

약속 지키고 초심 잊지 말아야

정치 지도자를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면 그가 기로에 섰을 때 어떤 선택을 할지 대개는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성격과 기질, 과거 행보 등을 고려해보면 십중팔구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다. 그는 항상 원칙을 강조했고, 크고 작은 정의가 서로 충돌할 때면 항상 큰 정의를 우선시했다. 적어도 눈앞의 이익 때문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경우는 없었다.

지난 1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11월 28∼30일 조사)의 역대 대통령 공과(功過) 인식 조사 결과 ‘가장 잘한 일이 많은 대통령’으로 노무현이 꼽힌 데는 그의 이러한 정치 역정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잘한 일이 많다’는 답변은 노무현(70%), 김대중(68%), 박정희(61%) 전 대통령 순으로 많았다. 역대 대통령 호감도를 묻는 다른 조사에서도 노무현은 김대중이나 박정희와 함께 1, 2위를 다툰다.

세계일보

박창억 논설위원


노무현은 재임 시절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고 탄핵 위기를 맞는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후(死後) 그는 당당히 재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진보 진영 내에서 노무현이 갖는 위상은 절대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많은 정치인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고 자처한다. 너도나도 못다 한 노무현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곧잘 노무현과 비견된다. 두 사람은 초년 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극적인 성공신화를 썼다는 점이 실제로 닮았다. 1987년 사법연수원생 시절 변호사 노무현의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는 이재명도 기회가 될 때마다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를 표방한다. 이재명은 지난해 7월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자리에서도 “제 정치인생은 노 대통령께서 가리키는 방향대로, 노 대통령께서 열어준 정치개혁·정당개혁의 길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며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그 꿈을 제가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선 패배 이후 이재명의 행보는 ‘노무현 정신’을 운운하기 민망할 정도로 말 바꿈이 심하다. 최근 노무현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이재명을 향해 “자기가 무슨 놈의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인가”라고 힐난했다. 이재명이 수차례의 약속을 파기하고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 있냐”며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시사하자 이를 비판한 것이다.

대선 당시 “선거제 개혁으로 정치교체를 이루겠다”고 말했던 이재명은 지난해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 확대와 위성정당 방지’를 공언했다. 그러나 이재명은 본인의 유튜브 방송에서 “어쨌든 선거는 이겨야 한다”며 약속을 파기하고 병립형으로 회귀할 것을 시사해 논란을 빚고 있다.

훨씬 더 절망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그는 지난 6월 국회 대표연설에서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지난 9월 단식 병상에서는 본인의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했다. 말 바꾸기의 역풍으로 그의 체포동의안은 가결됐고 정치 지도자로서의 신뢰를 스스로 망가뜨렸다.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돼 기사회생했지만, 그 순간 그는 비겁하고 구차해 보였다. 이재명에게 ‘노무현 정신’은 필요하면 갖다 붙이고, 불리해지면 슬쩍 떼어버리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가.

지난해 5월 보궐선거에서도 이재명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성남을 버리고 손쉽게 승리할 수 있는 인천 계양구로 갔다. 18대 총선을 제외하면 늘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양지 중의 양지’였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며 민주당의 험지였던 부산 출마를 자처해 ‘바보’ 소리를 들었던 노무현과는 달랐다.

체포동의안이나 총선을 앞두고 과연 노무현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노무현은 “원칙 없는 승리보다 원칙 있는 패배를 택하겠다”고 했다. “혹시 연수원생 자격을 박탈당할지 모른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많이 온 것이다. 지금부터 얻는 것은 덤이니, 다 잃어도 괜찮다.” 이재명은 자서전에서 1988년 7월 사법연수원 동기생들과 대법원장 연임 반대 연판장을 준비할 때 이런 심정이었다고 썼다. 이재명은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이 말을 다시 떠올렸으면 한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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