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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이슈 의대 정원 확대

의대 정원 확대를 의사과학자 양성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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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삼성서울병원 신경외과 의사이면서 항체약물접합체 개발 업체인 에임드바이오를 이끌고 있는 남도현 교수가 의료진과 함께 진료를 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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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학자 육성의 필요성이 제기된 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내 보건복지 분야 연구개발(R&D) 역량이 민낯을 드러내면서다. 그동안 선진화된 의료체계와 성장 잠재력 등을 자신하던 K바이오는 정작 감염병 바이러스가 확산되자 백신과 치료제 모두 적시에 내놓지 못했다. 그에 반해 미국, 영국 등에선 수십 년간 연구를 이어온 의과학자들이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경구 치료제와 같은 결과물을 단숨에 내놓으며 바이오 분야에서 국가 간 격차를 벌렸다.

전문가들은 K바이오의 한계로 의과학자의 부재를 꼽는다. 12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의 연간 졸업생 3300여 명 가운데 기초의학을 진로로 선택하는 사람은 30명가량으로 1% 미만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미국은 매년 1000여 명이 의과대학원 박사 과정(MD-PhD)에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배출된 인원만 1만4000여명이다. 일본의 의과학자 수도 5000명 수준으로 우리나라를 웃돈다.

바이오 산업의 주역인 의과학자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건 정부의 정책적·재정적 지원책이 미미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의과학자 양성프로그램(MSTP)을 운영하며 매년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캐나다, 영국, 스위스 등도 정부 주도 양성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학 등 민간 주도의 의과학자 육성 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어 지원 규모, 추진 동력 등에서 다른 나라와 차이를 보인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의과학자는 보건의료 연구의 핵심 인력이지만 현행 법령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 지원방안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임상 현장의 미충족 수요를 R&D 사업으로 연계하고 성과를 창출하려면 국가가 의료기관 중심의 연구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은 일선 연구 현장에서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이 의원이 보건복지 R&D 예산과 관련해 20·30대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연 간담회에서 에스오엔컴퍼니 소속 이민선 약학박사는 "아이디어는 있는데 이를 실제 임상에 적용해볼 만한 기반이 국내엔 아직 미흡하다"며 "연구 중심 병원이 늘어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봉수 고려대 개화프로테오스태시스 연구단 박사는 "최근 정부가 R&D 예산의 파이는 거의 그대로 두고 연구 과제 개수를 늘리겠다는 식의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연구자들에게 불필요한 행정 업무만 던져주는 것"이라며 "직접 인건비 지원 등 획기적인 육성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의학 교육이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 양성에 집중돼 있는 것도 의과학자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거론된다. 대부분의 의대 학부 과정이 병원 실습을 돌며 국가자격시험을 준비하는 데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임상의학 교육과정(BME-GME)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Post-Doc)으로 넘어가는 인력 자체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의사 자격을 취득한 후 의과학자로 진로를 바꾸는 건 더욱 불가능하다. 의사들이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환자 진료에 드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이 경우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 의과학대학원 관계자는 "의과학자로 진로를 정한 후에도 직업 불안정성 등을 이유로 추가 연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확대 작업에 착수한 정부가 의과학자 양성책도 함께 내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지 않으면 임상의사만 늘어날 뿐 기초의학은 여전히 방치될 것이란 지적이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의약 시장을 뒤흔든 비만 치료제와 코로나19 백신 모두 의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성과"라며 "정부가 의과학자 양성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더 큰 감염병 위기가 왔을 때 그저 마스크에만 집착하는 행태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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