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청년 홍성민(가명·27)씨가 7일 오후 서울 하월곡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했다. 강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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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민(가명·27)씨는 한때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수학교육과를 나와 4학년 때인 2017년부터 교사 임용 시험을 준비한 그는 첫 시험에 낙방했고, 사회복무요원 시절에도 퇴근 후엔 공부만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떨어질 때마다 고립의 수렁은 깊어졌다. 홍씨는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나만 취직을 못 하고 있으니 친구들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시생 4년만인 2021년 홍씨는 진로를 돌려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허사였다. ‘그동안 뭘 했냐’, ‘경험이 없다’는 등의 반응에 마음의 응어리만 커져갔다.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회사에 불합격하자 홍씨는 무너졌다. 가족들도 피하고 싶어졌다. 월세가 가장 싼 곳을 찾다 서울 대학동에 월세 28만 원, 3평짜리 단칸방을 구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가뒀다.
문조차 열지 않은 1년 동안 방 안은 곰팡이로 뒤덮였다. 추운 겨울 난방이 잘 안 돼 물을 끓인 열기로 버틴 탓에 창틈, 옷장, 그 안에 있던 청바지 속에도 곰팡이가 번졌다. 홍씨는 “처음에는 2~3일 안 씻으면 머리가 가렵고 입이 텁텁했는데 나중엔 일주일, 한 달을 안 씻어도 그만인 경지에 다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눈떠지면 다시 졸릴 때까지 롤(LOL, 리그 오브 레전드)만 했다. 현실 감각을 무디게 하고 싶었다. 그러다 게임을 끝내고 잠깐 현실을 자각하게 되면 자괴감이 들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고립 청년 홍성민(가명·27)씨가 7일 오후 서울 하월곡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했다. 강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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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빠진 ‘은둔의 늪’
김영옥 기자 |
중앙일보가 만난 12명의 청년은 고립·은둔 생활을 ‘수렁’, ‘개미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우연히 빠진 고립에 익숙해지면서 마치 개미지옥처럼 다시 빠져나오기 힘들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발표한 보건복지부 고립·은둔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이 고립에 빠진 계기는 ‘취업 실패’가 24.1%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인관계 어려움’(23.5%), ‘가족관계 어려움’(12.4%), ‘건강상의 어려움’(12.4%) 순이었다. 이외에도 폭력이나 괴롭힘, 경제적 문제, 외모 콤플렉스 등 다양한 요인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김영옥 기자 |
신재민 기자 |
코로나19 유행 시기를 지나면서 고립의 수렁은 더 깊어졌다. 2019년 약 34만 명으로 추산됐던 고립·은둔 청년은 지난해 약 54만 명으로 늘었다. (보건사회연구원) 김태영(가명·36)씨의 은둔 생활도 이때 고착화됐다. 대학원에서 자동차 엔진을 연구한 김씨는 2016년 지도 교수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박사과정 진학 계획이 물거품 됐고 취직이 잘 안 돼 연구직 프리랜서로 3년 넘게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터져 집 안 콕 박힌 채 간간히 일을 받았다. “처음엔 내가 고립 청년이라고 생각도 못 했다. 게으르게 산 것도 아니고 일할 거 다 하고 밥도 다 챙겨 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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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나고 싶지만…
고립 청년 김태영(가명·36)씨가 지난해 8월 작성한 일기. “밖에 안 나간 지 열흘 정도 된 것 같다. 목적 없이 시간이 그냥 지나간다. 우울하다. 이제 일도 없고 뭐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적혔다. 사진 김태영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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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재택 근로가 은둔으로 바뀐 건 지난해였다. 자동차 산업의 축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이동하면서 김씨가 속한 엔진 분야 연구팀이 갑자기 사라졌다. 당시 김씨의 일기장에는 “밖에 안 나간 지 열흘 정도 된 것 같다. 목적 없이 시간이 그냥 지나간다. 이제 일도 없고 뭐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적혀있다. 김씨는 일기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때 레일에서 완전히 이탈했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 서점에 가려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발이 멈추더라고요. 깊은 물 속, 압력이 쏟아지는 느낌이었어요.”
고립·은둔 청년의 80%가 “현재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고, 67.2%가 “탈고립을 위한 시도를 한 적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고립·은둔 청년의 절반 가까이(45.6%)가 일상생활 복귀 시도 후에도 다시 고립됐다고 응답했다.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27.2%), ‘힘들고 지쳐서’(25%) 등이었다. 10여 년째 방에서 나오지 않으며 은둔 생활 중인 박수빈(가명·30)씨는 “극복하려고 외출해봐도 사람이 많아서 지치고, 딱히 앉을 데도 없고, 나가면 돈을 써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
신재민 기자 |
실제 고립·은둔 청년의 15.8%가 일주일 이상 옷을 갈아입지 않고, 10.5%가 일주일 이상 샤워를 하지 않는다. 홍씨처럼 한 달 동안 안 씻은 사람도 1.2% 존재했다. ‘배가 불러도 불쾌할 때까지 먹는다’거나 ‘배가 고파도 먹지 않는다’는 등 식생활이 불규칙한 경우도 72.4%였다. 사법 시험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7년 동안 고립 생활을 한 황재원(가명·35)씨는 “관계에서 오는 허전함을 먹는 걸로 채우다 보니 폭식증이 오고 체중이 20㎏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그의 삶은 오랜 고립으로 폭식증이 오고, 그 결과 자존감이 더 낮아져 더 심한 고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이준호(가명·31)씨는 4년간 이어진 은둔 생활을 술에 의존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가족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집을 나와 휴대폰을 부수고 술만 마시며 죽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씨는 “매일 편의점에 가서 소주 한 병에 맥주 네 캔을 사서 섞어 마셨다.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기고 기억을 못 하니까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알코올 중독 상태에선 벗어났지만, 술과 함께 항우울제, 수면제도 함께 복용하다 보니 기억력이 퇴화하고 뇌에 손상을 입었다.
고립 청년 홍성민씨가 은둔 생활 중 머물렀던 서울 대학동 3평짜리 원룸. 6개월 동안 문을 열지 않아 곰팡이가 피었다고 한다. 사진 홍성민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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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고립 청년들이 주로 거주하는 좁은 대학가 원룸이나 고시원 환경도 악순환 심화의 원인이다. 10년 동안 대학가 4~6평 원룸에서 살아온 정민호(가명·34)씨는 “좁은 공간에 오래 머무르니 외부로 나갈 필요를 점차 못 느끼게 되고 갈수록 위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억지로 밖으로 나가도 사람들이 즐겁게 놀고 있으면 ‘쟤들은 저렇게 잘 노는데 나는 왜 이러나’, 날씨가 맑으면 ‘날씨도 좋은데 나는 왜 이러나’라는 식으로 우울해진다”며 “무기력이 학습되면서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워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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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있다’ 말해줄 동행자 필요”
김성아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고립·은둔 기간이 장기화되면 빨리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해 더 위축되고,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진다”며 “이들이 사회 복귀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거나 ‘어디까지 왔으니 어떤 게 더 필요하다’, ‘같이 해볼까’라며 도와줄 수 있는 동행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의 고립·은둔 청년 지원 프로그램에선 회복의 실마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달 23일 청년이음센터 동작센터에선 청년 20여명이 겨울을 맞아 뜨개질을 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뜨개질을 배울 땐 집중하느라 정적이 흐르다가도 금세 이야기꽃이 피어 서로의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였다. 청년이음센터 이혜연 팀장은 “청년들은 그동안 쭉 고립됐기 때문에 뇌 활성화를 위해 손을 사용하는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청년들이 성취감을 느끼면서 정서적으로도 많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청년이음센터 동작센터에서 고립·은둔청년 20여 명이 공예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뜨개질을 배웠다. 장서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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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송지영(가명·37·여)씨는 “아무래도 사회에서는 은둔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서 더욱 집 밖에 나가는 게 두려웠는데, 여기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어 안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데서 이렇게 잘해주면 사이비 종교가 아닐까 의심도 드는데 지자체에서 마련했다니 믿음도 갔다. ‘안전한 공간’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실제로 지원에 대한 욕구가 크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에는 경제적 지원(88.7%)이 가장 많았고, 취업 및 일자리 지원(82.2%), 일상생활 회복 지원(80.7%), 눈치 보지 않고 들러서 머무를 수 있는 공간(78.9%)도 많았다. 김태영씨는 “여기는 혼자 있는 사람을 보면 못 참고 계속 말 걸어주는 사람이 있어 좋다”면서도 “올해 사업이 끝나는데 다시 고립될까 봐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지속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
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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