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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혼자 할머니 돌보며 학업까지… ‘가족돌봄청소년’ 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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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통합지원사업 시행

‘효자-효녀’라며 주변 칭찬받지만, 정책 지원 부족해 생활고 시달려

전국 복지관 통해 지원대상 선정… 생계-돌봄-학업 등 맞춤형 지원

“도움받은 청소년들 긍정적 변화”

동아일보

대구 동구 동촌종합사회복지관의 김준형 사회복지사(왼쪽)가 가족돌봄청소년 박지민(가명)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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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부분도 문제지만 저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할머니도 챙겨야 하고, 부족한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아르바이트를 계속 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공부에 집중하기도 어려웠고요.”

대학교 1학년인 박지민(가명) 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헤어져 지금까지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어린 손녀를 키우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할머니는 현재 관절염과 디스크로 인해 거동이 어렵다.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부터 장보기, 설거지, 청소 등 각종 가사일까지 모두 박 씨의 몫이다. 가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박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다.

무거운 돌봄 부담에 조금씩 지쳐갈 때쯤 지난해 박 씨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대구 동촌종합사회복지관의 연결로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의 ‘가족돌봄청소년 통합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생계비와 교육비, 자기계발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사회적 관심·정책 사각지대 놓인 가족돌봄청소년

박 씨는 “지원금으로 학교 수업을 들을 때 필요한 교재도 사고 편의점 음식 대신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나물 반찬과 과일도 샀다”며 “이전에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밥 한 끼 먹는 것도 부담스러웠는데 지원금으로 가끔 미술관 전시나 공연도 보러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 씨처럼 질병이나 장애 등을 가진 가족 구성원을 직접 돌보는 청소년(청소년기본법상 9∼24세)을 ‘가족돌봄청소년’이라고 한다. 가족돌봄청소년은 돌봄과 학업 및 취업 준비 등을 병행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들을 위한 국내 지원 체계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발간된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돌봄청소년에 대한 국가별 인식과 정책적 대응의 수준을 1∼7단계로 나눴을 때 한국은 가장 낮은 7단계 국가로 분류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 보고서에서 “(가족돌봄청소년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놓인 효자·효녀로 호명되고 칭찬이나 연민의 대상으로만 여겨졌을 뿐 별다른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며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실태조차 가늠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가족돌봄청소년(11∼18세 기준)의 규모를 약 18만4000∼29만5000명으로 추정했다.

● 필요에 따라 맞춤형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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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회적 관심과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족돌봄청소년을 위해 월드비전은 가족돌봄청소년 통합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사회복지관협회와 협약을 맺고 전국의 복지관을 통해 지원 대상자를 모집한다. 중위소득 100% 이하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을 직접 돌보는 24세 이하 청소년이 그 대상이다.

가족돌봄청소년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 필요로 하는 지원도 다르다. 이에 월드비전은 연간 최대 200만 원의 지원 범위 안에서 가족돌봄청소년이 △생계(생계비, 식사 지원) △돌봄(간병비, 심리치료비) △학업(교육비, 자기계발비) 등의 분야 중 필요한 것을 선택해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간병비가 가장 많이 필요한 가족돌봄청소년에게는 간병비 150만 원에 교육비 50만 원을, 심리치료를 우선적으로 원하는 가족돌봄청소년에게는 심리치료비 80만 원, 교육비 70만 원, 생계비 50만 원을 지원하는 식이다. 김준형 사회복지사는 “가족돌봄청소년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인 문제지만 심리적인 부담감과 불안감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며 “오랜 시간 의지할 곳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 느꼈을 고립감과 상처들까지 보듬어 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 지난해 전국 39개 기관 통해 65명 지원

월드비전은 올해 전국 39개 기관을 통해 가족돌봄청소년 65명을 지원했다. 이들 중 14∼16세가 20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20∼24세 18명 △17∼19세 15명 △9∼13세 12명 순이었다.

내년에도 지원을 이어갈 월드비전은 내년 1월 신규 지원 대상자 발굴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사회복지관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하고, 기관별로 신청을 접수할 예정이다.

김순이 월드비전 국내사업본부장은 “올해 실제로 지원을 받았던 가족돌봄청소년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이들이 경험하는 긍정적인 변화가 눈에 보이는 만큼 내년에는 신청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돌봄과 학업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복합적 위기에 놓인 가족돌봄청소년들의 욕구에 맞춰 지속적인 지원을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족돌봄청소년질병이나 장애 등을 가진 가족을 직접 돌보는 청소년(청소년기본법상 9~24세)을 통칭하는 용어. 이른바 ‘영케어러’라고도 불린다. 가족돌봄청소년은 돌봄과 학업 및 취업 준비 등을 병행하면서 심리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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