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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빈대·러브버그·미국흰불나방…2023년 우리를 괴롭혔던 벌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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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벌레는 비행 중에도, 벽에 붙어 있을 때도 암수가 내내 붙어 있는 모습에 ‘러브버그’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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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2일)은 어둠이 가장 깊어 겨울 끝에 이르렀다는 동지(冬至). 밤사이 내린 눈으로 발목이 푹푹 빠지고, 새하얀 눈이 세상을 덮어 어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겨울왕국처럼 아름다운 깊은 산속 연구소의 겨울 풍경이 ‘동지’답다.





지난주 최고 기온은 영상 20도, 12월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 동안 눈이 아닌 비가 장마처럼 내렸다. 이례적으로 내린 겨울 호우가 그치자, 오늘은 영하 20도까지 곤두박질쳤다. 고작 보름 사이 12월 기온이 고온에서 한파로 급변하며 널을 뛰고 있다. 따뜻하다 갑자기 추워진 한파는 더욱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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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린 눈으로 강원도 횡성군의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또한 겨울왕국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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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출현으로 느끼는 기후재앙



예측하기 어려운 추위와 더위가 매년 불규칙하게 발생하고, 계절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으면서 기상이변과 기후위기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일상화되고 있다. 올해만 하더라도 때늦은 가을 더위에 이어 12월 중순까지 영상 20도를 넘나들 정도로 포근한 날씨를 보였다가, 16일 주말부터 맹추위가 들이닥쳤다. 한반도에도 극단적인 기후변화로 인한 기후위기가 이미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에도 기후가 변하며, 생태계를 바꾸고 생물의 존재를 위협하며 끊임없이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전혀 눈치 못 채거나 혹시 낌새를 알아차려도 절실한 생계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건너뛸 수 있었다. 하지만 먼 나라의 홍수나 북극곰의 멸종이 아니라 내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자 이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현실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후변화로 엉망진창이 된 세상을 낯선 벌레를 맞닥뜨리고서야 재앙으로 느끼고 있다. ‘벌레’는 왜 항상 무섭고, 징그럽고, 안 좋은 이미지로 등장하는지 곤충학자로서 속상하지만, 싫다는데 할 수 없다.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벌레들을 만났을 때는 두려움이 극에 달해 더욱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자연 생태계 파괴로 많은 변화를 실제 체험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곤충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 폐해를 보여주고 있으니 어찌 보면 반면교사인 셈이다.



빈대를 없애겠다고? ‘미션 임파서블’



2023년, 그렇게 세간의 관심과 공포증을 일으킨 벌레는 단연 빈대. 완전히 박멸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빈대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빈대 퇴치를 위해 야단법석이었다. 빈대퇴치제를 생산하는 제약회사 주가들이 덩달아 급등세를 보이고, 빈대를 잡겠다고 질병관리청과 환경부가 맹독성인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를 방역용으로 사용 허가하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저질렀다. 국민의 건강을 고려한다면 독한 살충제 이외에 사람이 불편을 느끼지 않을 만큼 개체 수를 조절하는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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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는 암컷에 기생해 살아간다. 빈대가 기생하는 관박쥐(왼쪽)와 암컷 빈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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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사라진 줄 알았던 빈대가 다시 출몰했다고 난리가 났지만, 사실은 눈에 띄지 않았다뿐이지 멸종될 놈들이 아니다. 빈대는 주로 박쥐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녀석들이다. 박쥐들이 건재하므로 기대어 살 곳도, 먹거리도 충분한데 빈대가 왜 없어지겠나. 게다가 인간이 없애겠다고 뿌리는 살충제는 빈대가 보기에 분해하기 어려운 물질도 아니어서 몇 세대가 지나면 살충제를 무력화시키는 내성이 생긴다.



빈대가 살아온 세월이 무려 3억5천만 년이다. 자연의 시간을 겨우 100년 사는 인간의 시간에 투영하면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 버텨온 그들이 쉽게 무너질 리 없다.



사랑벌레는 식물의 사랑도 돕는다



2년 연속 우리를 찾아온 곤충도 있다. 사랑벌레(러브버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또 떼를 지어 나타났다. 비행 중에도, 그냥 벽에 붙어 있을 때도 암수가 내내 붙어 있는 모습에 ‘러브버그’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전혀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는 낯선 파리의 출현에 사람들에겐 오히려 미움을 받았다. 사랑벌레는 낙엽이나 동물 사체, 배설물 등 땅에 쌓여있던 각종 유기물을 모두 분해하여 흙으로 돌려보내는 중요한 분해자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징그럽다’ ‘빨리 없애달라’는 시민들의 민원 급증에 지자체 보건소와 방역단은 살충제를 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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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벌레는 비행 중에도, 벽에 붙어 있을 때도 암수가 내내 붙어 있는 모습에 ‘러브버그’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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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벌레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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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벌레는 분해자 역할뿐 아니라 식물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중매자이기도 하다. 꼭 필요한 생물인데 혐오스럽다거나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오판으로 지레 겁을 먹고 없애려 한 것이다. 가장 손쉽고 극악한 처방인 살충제 살포는 또 다른 환경 재앙을 부를 수 있는데 예방적, 친환경적 방제 방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아쉽다.




서울 한강공원·청계천 등에서는 미국흰불나방 애벌레가 대거 출몰했다. 지난 10월 말까지는 송충이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미국흰불나방은 1958년 국내에 유입된 나방으로 추정되는데, 65년 동안 한반도에서 살았으므로 외래종이라 부르는 것보다 토착종으로 정리하여 방제해야 한다. 보기에는 징그러워도 익충이었던 사랑벌레와 달리 미국흰불나방은 하는 짓도 흉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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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흰불나방 애벌레는 지난 10월 말까지 사진 속 송충이(솔나방 애벌레)로 오해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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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이와는 다르게 생긴 미국흰불나방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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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흰불나방의 성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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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미줄을 쳐 천적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며 도심 공원과 가로수에서 나뭇잎을 갉아먹는다. 시민들로서는 이런 애벌레들이 나무에서 우수수 비처럼 머리 위로 떨어지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이런 미국흰불나방은 지속해서 대량 발생할 가능성이 크므로 노린재, 거미, 사마귀 등 천적을 활용하고, 월동곤충의 은신처인 잠복소(潛伏巢, 나무기둥에 짚이나 거적을 감아 만든 해충의 월동처)를 설치하여 개체 수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



5월의 집단 비상…동양하루살이



하루살이는 영어로 메이플라이(Mayfly)라고 한다. 5월경 짝짓기를 위해 암컷과 수컷이 떼를 지어 비상하는 생태적 특성을 잘 나타낸 단어다. 오뉴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동양하루살이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고 올해도 컸다. 하루살이 무리의 출현은 대략 10년 전부터 올해까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데 특히 강남과 압구정 인근 상권 주변에 피해를 주고 있다. 물에 사는 곤충이므로 강변에만 제한적으로 발생하고, 불빛으로 날아드는 야행성 곤충의 특성으로 조명이 있는 곳에 떼로 출몰하므로 선택적 방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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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하루살이의 영명(英名)은 메이플라이(Mayfly)다. 5월경 짝짓기를 위해 암컷과 수컷이 떼를 지어 비상하는 생태적 특성을 잘 나타낸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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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최근 몇 년 사이, 우리가 원치 않았지만, 삶 속에서 곤충을 접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곤충은 오랜 세월 지상, 지하, 민물, 바닷물 등 거의 모든 환경에서 살 수 있는 환경 적응 능력을 자랑하므로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다. 빈대, 사랑벌레, 미국흰불나방이나 동양하루살이뿐만 아니라 어떤 놈들이 장차 불쑥 나타나 우리를 괴롭힐지 모른다. 그러나 생태계 내에서 폭발적이거나 돌발적인 곤충 발생은 비교적 흔한 사건이다. 객관적 추론과 연구가 충분히 가능하므로 근거 없는 섬뜩한 공포감은 가질 필요가 없다. 기후변화와 도시화에 맞물려 벌레가 점점 더 인간의 문명에 들어오고 있을 뿐이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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