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본성대로 키워 친환경 유정란 생산, 전남 화순 다솔농장
"친환경 축산 발전에 어느정도 기여…소비자에 더 좋은 먹거리"
환경친화축산농장 지정 다솔농장 민석기 대표 |
(화순=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동물이 본성대로 살 수 있게끔 해주는 게 사육자의 역할이죠. 친환경 사육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전남 화순군 사평면 한적한 산골에서 산란계 양계장을 운영하는 민석기(64) 다솔농장 대표는 친환경 사육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동물들이 본능에 충실한 생활을 하면서도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 본질이라고 했다.
환경친화축산농장으로 지정된 그의 양계장에는 6천500마리 산란계가 5개 사육동에 분산돼 있다.
3.3㎡당 27마리 가량 키우는 게 일반적이지만, 민 대표는 그 수를 절반으로 줄여 닭이 사육장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했다.
아파트처럼 우리(케이지)를 수직으로 층층이 쌓아 올려 몸 하나 움직일 공간조차 없는 공장형 사육 시설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농장을 방문한 지난 14일은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려 다소 습한 날이었는데도 여느 양계장에서 풍기는 불쾌한 악취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왕겨를 발효시킨 깔집을 사육장에 깔고, 닭에게 유산균 등을 섞은 사료를 먹여 그 분뇨가 다시 발효제가 되는 선순환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육장을 안내하던 민 대표가 주변에 모여든 닭을 손짓으로 훠이 훠이 몰아내더니 그 아래에서 갓 주워 든 깔집 한 줌을 쥐여주며 냄새를 맡아보라고 권했다.
물 마시는 산란계 |
최근 2개월여간 한 번도 교체하지 않은 깔집이었지만 여전히 보송보송한 촉감을 유지하며 구수한 향을 풍겼다.
쾌적한 환경의 사육장과 함께 민 대표는 주변 야산에 닭을 풀어놓고 키우는 방목형 사육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유행으로 방목은 잠시 중단했지만, 평소에는 아침 사료를 먹인 뒤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방목장으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닭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풀어놓는다.
출입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닭도 수월하게 방목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반대편에도 쪽문을 만들었다.
닭도 각자의 개성에 따라 하루 종일 밖에서 생활하는 개체가 있는 반면 사육장에만 머무는 개체가 있다고 민 대표는 설명했다.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그는 방목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개체를 억지로 밖으로 내보내지는 않는다고 했다.
인위적인 조치는 최대한 배제한다는 그의 신조에 따른 사육방식이다.
물과 사료가 계란의 품질을 결정하는 만큼 방목 중 더러운 물을 마시지 않도록 닭이 파헤쳐놓은 구덩이도 늘 메워준다.
매일 알을 낳아 영양소가 쉽게 결핍될 수 있어, 직접 재배한 마리골드·파프리카·영양제 등도 사료에 섞고 있다.
친환경 방목장 |
들짐승 등 천적의 습격을 막기 위한 외부 울타리는 물론 사육장별 영역을 구분한 방목장 내 울타리도 만들었다.
같은 닭끼리라도 연령이 더 많은(힘이 센) 개체가 약한 어린 개체를 공격하는 습성 때문에 연령이 같은 개체끼리 생활하도록 했다.
모두 민 대표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은 노하우로, 그의 친환경 사육 방식도 처음부터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25년 전 서울에서 하던 자동차 정비 사업을 그만두고 화순에서 400마리 규모로 친환경 양계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땐 비슷한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친환경 사육 방식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도, 자문할 전문가도 없었다.
무작정 발판에 풀어놓은 닭들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거나 생산성이 떨어지기 일쑤였지만 누구 하나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민 대표 스스로 죽은 닭을 해부하고 분뇨의 상태를 살펴보면서, 수의사나 동물 의약품 제조업체를 찾아다니며 묻고 또 물어보면서 친환경 사육의 길을 개척했다.
그는 "제가 최초로 친환경 인증을 취득했는데 당시에는 심사를 담당한 팀장들이나 직원들, 관심 있는 농가들이 제 농장에서 친환경 축사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배워갔다"며 "우리나라 친환경 축산에 발전하고 확산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한 것 같다"고 자부했다.
불모지와 다름없던 친환경 사육은 착한 소비가 사회적 관심을 받으며 빛을 보기 시작했다.
당일 생산된 친환경 유정란 |
대량 생산 방식의 계란보다 비싸지만 맛과 품질로 시장에서 인정받고 훈제란과 비슷한 구운란을 자체 개발해 고부가가치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민 대표는 "관련 연구를 계속해 방목 등 더 나은 방향의 사육 방법을 개발하고 그 노하우를 후배들과 공유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고 싶은 게 저의 소박한 소망"이라고 말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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