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딜레마③] 교권과 '대립 구도' 부각
싸우면 교사는 "교권침해" 학생은 "인권침해" 주장
생활지도고시 시행되면서 인권조례와 충돌 생겨
"학생인권 약화돼야 교권이 회복되는 것은 아냐"
"학생인권 보장 수준 높을 수록 교권 존중도 높아"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긴급 기자회견에서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2023.12.13. yesphoto@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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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성소의 김정현 기자 = 교사와 학생이 대립한 사안에 대해 교사는 '교권 침해'를, 학생은 '학생인권 침해'를 주장하며 맞서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최근 교권과 학생인권의 대립 구도가 부각되면서 이 같은 사례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사안에 따라 '교권 침해' 또는 '학생인권 침해'로 모두 해석할 수 있는 사례가 최근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생이 교사의 언행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학생은 교사의 발언을 '인격권 침해'라고 주장하고 교사는 학생의 문제 제기가 '교권 침해'라고 맞서는 식이다.
실제로 학생이 교사의 언행에 항의한 것을 두고 교사가 '교권 침해'로 대응해 학생이 도움을 요청한 사례가 최근 서울시교육청 산하 학생인권교육센터에 접수됐다고 한다.
센터 관계자는 "학생이 자신의 인격권이 무시 당했다며 교사에게 항의를 했는데, 교사는 이를 교권침해로 보고 해당 학생을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에 신고한 경우가 있었다”며 "교보위에서는 교권침해 여부만 주로 따지다 보니, 학생 본인이 입은 피해는 반영되지 않는다며 센터 측에 도움을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이 경우 교보위는 학생 혹은 학부모가 교사의 교육활동을 침해했는지를 중심으로 사안을 심의한 후 학생에 상응하는 처분을 내리고, 학생인권교육센터는 교사의 지도 과정에서의 학생인권침해 발생 여부를 조사해 학교에 권고 또는 각하 등의 조치를 취한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한쪽에선 '교권침해'로, 다른 쪽에선 '학생인권침해'로 해석하며 다투는 것이다.
이는 학생인권조례와 지난 9월부터 시행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속 내용이 학교 현장에서 충돌하면서 빚어진 현상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배포한 고시 해설서에 따르면 교사는 학생이 생활지도에 응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교육활동을 방해했다고 판단한 사안에 대해 교권보호위원회 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물리적·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을 규정하면서 학생이 인권을 침해 당했을 때 행정기구를 통해 권리 구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생과 교사가 부딪히면 각자의 권리 구제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상황에 따라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조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센터 관계자는 "학생들은 교보위에 회부된 사실 자체에 대해 구제 요청을 하는데, 센터도 교보위를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체계상 그렇게까지 할 순 없다"며 "교보위 심의 과정에서 학생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줬는지 정도에 대해서만 개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시와 조례가 충돌한다며 교육부가 지난달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을 마련해 발표했지만, 학생의 휴식권과 차별 받지 않을 권리 등을 모두 제외시켜 사실상 조례를 부정한다는 해석이 많았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서울학생인권조례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월20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2.20. bluesoda@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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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권리 구제 등 조례가 갖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고시와 충돌하는 지점을 첨예하게 풀어내려고 노력하기보다 조례 내용을 들어내는 간편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조례가 법령의 성격을 더 강하게 갖고 있지만, 현 정부가 보수 정부인 만큼 보수의 가치가 반영된 지침을 내려 보냈으니 충돌할 수 밖에 없다"며 "그러나 조례 자체를 없애려는 것은 과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최근 학생 인권과 교권의 대립 구도가 부각되면서 이 같은 '회색지대'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약화된 교권침해의 원인을 '학생 인권'에서 찾는 여론이 강해졌고 둘은 대립하거나 반비례하는 관계라는 인식 또한 강화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의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일각에선 교권과 학생 인권이 대립하거나 반비례하는 관계가 아니며 학생 인권을 약화시켜야 교권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짚는다.
박 교수는 "교권과 학생 인권을 대립한다고 보는 건 맞지 않다"며 "교사의 교육권 개념에 학생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것까지 허용한다면 대립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인권 침해)까지 교육권 범주에 포함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학생인권 보장 수준이 높고 인권 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일수록 교권을 존중하는 정도도 높게 나타난다는 학계의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학생 인권과 교권 관계에 관한 학생의 인식(저자 김종우·김위정·이가람)'에 따르면 학생들이 학교와 가정에서 자신의 인권이 존중 받는다고 느낄수록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는 수준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결국 주관적 인권 존중 경험이 자신을 포함한 타자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한 인식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학생이 자신의 인권이 존중 받는 경험을 하고, 인권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을 때 교권에 대해서도 존중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서울시의회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발의에 대한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이 나오자, 지난 22일 인권·권익향상 특별위원회(인권특위)를 통해 다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상정·의결하려다 취소했으며 내년에 다시 논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오해를 풀고, 열린 자세로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며 "학생인권 조례, 교육활동 보호 조례,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조례가 병존하는 새로운 변화를 향한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집행정지 결정을 내린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최수진)는 "효력정지로 인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는 명백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soy@newsis.com, ddobag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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