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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역행·퇴행의 시대…여성들은 거꾸로 가는 시계를 되돌리려 성취하고 싸웠다[플랫][올해의 젠더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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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올해의 젠더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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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이아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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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성들의 현실을 정리하는 단어는 ‘더 커진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 그리고 ‘역행’이다. ‘숏컷(짧은 머리 모양)’ 헤어스타일이라는 이유로 여성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여성 살해 소식도 잦았지만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특정 게임 유저(이용자)들이 여성 노동자들의 페미니즘 표현을 문제 삼고 마녀사냥을 벌였지만 게임 회사는 방관하거나 동조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올해를 “역행과 퇴행의 시대”라며 “지금까지 여성들이 힘겹게 쌓아 올린 것들을 허물어뜨리는 걸 넘어 역행시키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여가부’ 흔들기 계속…정부 성평등 정책 퇴보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흔들기’는 올해도 계속됐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파행 사태 이후 여가부장관 후보자로 임명된 김행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드라마틱하게 엑시트(exit)하겠다”며 여가부 폐지 찬성 뜻을 밝혔다. 정작 자신에게 제기된 ‘주식 파킹(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음)’ 의혹 등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김현숙 장관이 아직 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가부 폐지’를 주요 과제로 내세웠던 김 장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성’ 지우기에 나섰다. 지난 7월 여가부는 2013년부터 이어진 정부종합계획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계획’ 명칭을 ‘성별대표성 제고계획’으로 바꿨다. 여가부는 “양성평등 관점을 반영해 명칭을 바꿨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 발표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선 ‘여성폭력’이라는 단어가 대거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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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여성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방치 국가 규탄 긴급행동’ 참가자들이 지난 8월 24일 서울 관악구 목골산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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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 속에서 여가부는 성폭력 피해자 의료비 지원 등 ‘2024년도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120여억 원을 삭감했다. 여가부는 ‘초·중·고교 학생의 성 인권 교육 예산’ 5억5600만원도 전액 삭감했다. 2013년에 시작한 사업이지만 여가부는 “학교보건법에 따른 폭력 예방 교육과 중복된다”며 내년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24년간 직장 성차별·성희롱 상담을 해온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12억1500만원이던 예산을 내년 5억5100만원으로 삭감했다. 이주 여성 노동자들의 주거와 안전을 상담·지원하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사라질 위기다. 노동부는 전국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9곳의 내년도 예산 71억800만원을 전액 삭감하기로 했다. 노동부는 그간 민간단체 위탁 방식에서 정부가 직접 수행하는 쪽으로 지원방식을 개편한다는 입장이다.

여성·시민단체들은 정부의 긴축 기조 속에서 피해자나 약자 예산을 줄이는 움직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피해자·약자를 잘 지원하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토론·연구 없이 정부가 손대기 좋은 형태로 지원 체계를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예산안에 드러난 정부의 ‘퇴보 기조’다. 송 대표는 “예산을 줄여도 괜찮다는 인식이 진짜 문제”라고 말했다.

대낮에 성폭행, 스토킹으로 숨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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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연대회의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과 관련해 “페미사이드(여성 살해)를 멈추라”는 집회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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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예산 삭감은 단순히 지원액이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젠더폭력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올해도 여성 폭행, 살인 사건 뉴스가 많았다. 지난 5월엔 나흘 사이 3명의 여성이 살해되고, 8월엔 대낮 공원에서 여성을 구타하고 성폭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5월 25일 경기 안산의 한 모텔에서 20대 남성이 여자친구 목을 졸라 살해했고 26일엔 서울 금천구에서 30대 남성이 교제폭력을 신고한 여성을 살해했다. 28일엔 경기 안산에서 30대 남성이 함께 살던 여성을 살해했다. 지난 7월엔 인천 남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남성이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 살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여성 살해 사건은 여전히 ‘개인 간의 문제’로 의미가 축소되고 있다. 가정폭력방지법의 적용 범위를 교제폭력까지 확대하는 법안, 아예 교제폭력을 별도의 영역으로 두자는 법안 등이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불특정 여성을 향한 폭행 사건도 있었다. 지난 8월 최윤종(30)은 대낮에 서울 관악구의 한 공원 등산로에서 출근하던 여성을 구타하고 성폭행했다. 피해 여성은 사건이 일어난지 이틀 만에 숨졌다. 검찰 조사 결과 최윤종은 4개월 전부터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4일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에선 20대 남성이 여성의 ‘숏컷 헤어스타일’을 문제 삼으며 아르바이트생을 폭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검찰은 지난달 이 사건을 ‘혐오범죄’로 규정하고 유사 사건을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여성혐오 사건이 반복되는 데에는 정부, 정치권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인호 관악구의원은 후보 시절 “불법촬영 감시·점검을 위해 사용하는 예산 6412만원을 전액 삭감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지난해 구의회를 통과한 ‘2023년 관악구 예산서’를 살펴보면, 여성안심마을 조성 예산이 1년 새 반토막이 났다. 배진경 대표는 “구의원의 여성혐오 발언의 시발점은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인데, 정부가 여성에 대한 차별, 혐오 폭력을 신경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며 “그렇기에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더 힘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노동자들 일터 위협하는 ‘인셀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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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가 힘을 받는 건 게임업계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7월 일부 남성 유저들이 프로젝트 문이 출시한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의 일러스트 작가의 SNS 글을 문제 삼으며 회사에 집단 방문한 일이 대표적이다. 그간 남성 유저들이 온라인상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비난하면서 회사를 압박하는 일은 많았지만, 여성 노동자가 일하는 회사를 직접 찾은 건 처음이다. 회사는 정규직 작가였던 여성 노동자와 계약을 종료하겠다며 유저들을 달랬고 결국 작가는 일을 그만뒀다.

지난달 넥슨에선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 내 손가락 이미지를 두고 일부 커뮤니티 유저들이 여성 애니메이터의 SNS를 뒤져 페미니즘 성향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유저들이 남성 혐오라고 주장한 집게손가락 움직임을 만든 작업자는 40대 남성이었다. 원청인 넥슨은 작업 과정에서 해당 이미지를 8차례 이상 검사했지만, 유저들이 문제 삼자 홍보 영상을 내렸다. 넥슨은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하청업체 뿌리스튜디오에 대응할 것을 압박했다. 여성 작업자는 원청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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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대표는 “넥슨 사태는 원청의 잘못된 판단과 갑질이 핵심”이라며 “게임업계가 비상식적인 목소리에 좌지우지되고 여성 노동자들에게 실제적인 위협도 가해지는 ‘폭력’ 상황인데 정부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고용노동청이 게임업계 특별점검에 나섰지만 노동부 차원의 조치는 미흡한 상황이다.

맞서 싸우고, 금녀 구역을 깬 여성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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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9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노조원들이 ‘현대자동차 기술직 부문 신입공채 0명, 2023년엔 달라야 한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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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백래시 속에서 변화를 만드는 여성들도 있었다. 창사 이래 기술직 신입 공채에서 단 한 명의 여성도 채용하지 않았던 현대자동차의 생산직(기술직) 공개 채용에서 첫 6명의 여성 합격자가 나왔다. 숨지 않는 여성들도 있다.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해 의식을 잃게 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서 피해 당사자는 직접 자신의 사건을 언론에 알렸다. 그제야 검찰도 움직였다. 성범죄 추가 확인을 위한 DNA 재감정이 받아들여졌고, 청바지 안쪽에서 가해자의 DNA가 검출됐다. 이를 근거로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공소장이 변경됐다. 지난 9월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젠더 범위를 넓히려는 여성들도 있다. 레즈비언 커플 김규진씨 부부는 지난 6월 임신 소식을 알렸다. 국내에서 동성 커플의 임신과 출산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김씨 부부는 법적 관계가 아니기에 신혼부부 청약, 수술 시 보호자 동의, 배우자 유산 상속 등 권리가 제한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성결혼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후퇴한 1년이었지만 거센 백래시에 대응하는 ‘거센 진보’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송 대표는 “일상의 안전 위험, 표현의 자유 검열 등 사건·사고가 전년도보다 많이 보인다는 점에서 굉장히 후퇴한 1년”이라면서도 “지금 당장 안 보이는 것 같아도 백래시가 심해지면 그에 따른 거센 진보도 일어난다. 내년엔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 유선희 기자 yu@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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