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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지우 발달장애 원인 찾았다…"세계 최초" 이룬 이 프로젝트 [희귀병 희망된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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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소아암 연구는 지루한 싸움이다. 원인과 치료제를 찾다가 연구비가 떨어지면 멈추고, 연구비를 따면 또 나아간다. 이런 과정을 반복한다. 몇 년 걸려 한두 건의 성과를 올릴까 말까다. 이런 느림보 연구에 가속이 붙었다. 2021년 5월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유족이 내놓은 소아암·희귀병 퇴치 기부금 3000억원 덕분이다.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구에 사는 지우(5·가명)는 5년 만에 원인 유전자 변이를 찾았다. 서울대병원 연구진은 ‘HDXX3’라는 유전자가 뇌 발달에 이상을 초래하는 원인 유전자의 하나라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곧 국제학회에 “세계 최초 규명”이라고 보고할 예정이다. 서울대병원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 채종희(소아청소년과 교수) 희귀질환사업부장은 “기부금 덕분에 원인 유전자 발견 시기를 크게 앞당겼다”고 말했다.

지우는 태어날 때 온몸이 털로 덮여 있었다.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왼발 넷째·다섯째 발가락이 붙어 있었고, 분리 수술을 받았다. 목구멍이 좁아 절개 수술을 했다. 발육도 느린 편이다. “아~, 빠~”라고 한 글자는 또박또박 말하지만 잇는 게 서툴다. 한 살 무렵 서울대병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원인 유전자를 찾으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발달 지연, 소두증, 다발성 선천기형 등의 진료를 받던 중 올해 3월 이건희 기부금 프로젝트 대상이 됐다.

중앙일보

박경민 기자


연구진은 영국의 소두증 빅데이터, 서울대병원 환자 수천 명의 데이터, 생명과학자 등 협력 연구자의 데이터를 통합해 분석에 들어갔다. 그 결과 지우의 세포와 단백질에서 HDXX3로 인해 생긴 단백질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채종희 교수는 “의사와 생명과학자, 데이터 과학자 등이 한 팀이 돼 호흡을 맞춘 덕분에 가속이 붙어서 원인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지우 아빠(38)는 “희귀병 사업단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원인을 모를 텐데 문제가 뭔지 알게 돼 너무 기쁘다”며 “원인을 찾았으니 답(치료제)이 나오지 않겠느냐. 끝없이 터널을 헤맬 줄 알았는데 터널의 끝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고 했다.

경기도에 사는 열네 살 영민(가명)이는 걷다가 넘어지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침을 많이 흘린다. 서너 문장을 겨우 말하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소뇌 이상 증세를 보인다. 병원을 전전하다 올해 5월 이건희 프로젝트에 등록돼 유전체 검사에 들어갔다. 7개월 만에 의심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았고,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유럽의 9세 남자아이를 확인했다. 다음 달 영민이의 세포를 길러 기능 장애를 확인할 방침이다. 그러면 세계 두 번째 환자가 된다. 연구진은 영민이의 세포를 관리하면서 치료법 연구에 활용한다. 길어야 3년 지원되는 국가 연구비로는 엄두를 못 낼 일이다. 10년짜리 이건희 프로젝트에서나 가능하다. 채 교수는 “희귀병 치료제가 3년 만에 나올 수 없다. 데이터·세포 이런 게 쌓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건희 프로젝트에는 소아암 48건, 소아희귀질환 19건, 공동연구 109건이 진행되고 있다. 160개 의료기관의 전문가 1071명이 달라붙었다. 지난 18일에는 서울대병원에서 희귀질환사업단의 전문가들이 모여 ‘새로운 질병 유전자 발견을 위한 유전자 대 환자 매칭’(박수진 서울대병원 소아신경연구실 연구교수) 등 그간의 성과를 공유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남수현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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