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첫 주재한 회의에서 “궁중 암투나 삼국지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초선인 장동혁 의원을 사무총장에, 홍영림 전 조선일보 기자를 여의도연구원장에 각각 임명하며 파격 인선도 이어갔다.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 비대위가 공식 출범한 이날 오후 상견례를 겸한 회의를 국회에서 열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 하면 더불어민주당과 다를 것 없다”며 “이기기 위해 모든 전략을 동원하겠지만, 명분과 원칙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농구에서 쓰이는 ‘피벗 플레이’(주축 발을 단단하게 바닥에 붙이고 반대 발을 이용해 방향 전환을 하는 기술)를 언급하며 “공동의 선(善)이라는 원칙에서 (발을) 떼지 않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도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 비대위원장, 김형동 비서실장, 박은식, 윤도현, 민경우, 한지아, 구자룡, 김경률, 장서정, 김예지 비대위원, 유의동 정책위의장, 윤재옥 원내대표.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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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비대위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윤석열 대통령과의 수직적 당정 관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위원장은 “궁중암투나, 합종연횡하듯 사극을 찍거나, 삼국지 정치는 하지 말자”며 “사극은 어차피 늘 (배우) 최수종의 것이고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결국 졌다”는 말도 했다. 소설 『삼국지』의 제갈량이 최고의 지략가이자 책사지만 결국 큰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는 걸 거론하며 정치적 꼼수나 정치공학에 기대지 않겠드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 한 위원장은 최근 KBS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에서 강감찬 장군으로 분한 최수종씨를 언급하며 본인이 사극 속 권력 암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강조하는 듯한 비유도 덧붙였다.
전날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일방 통과시킨 김건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이른바 ‘쌍특검’ 등 현안에 대한 입장도 거듭 밝혔다. 그는 “우리는 소수당이고, 상대는 똘똘 뭉쳐 총선용 악법을 통과시키는 것에 부끄러움을 못 느끼고 있다”며 “동료 시민을 위한 좋은 정책을 만들고, 상대당의 왜곡과 선동에 맞서자”고 강조했다. 지난 26일 취임 이후 견지해온 “총선용 악법” 입장을 재강조한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예방한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그 법은 총선을 뒤엎고 국민 선택권을 침해하겠다는 명백한 악법”이라며 “당에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고 있고, 거부권은 국민을 위해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한 위원장은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와 별개로 여권 일각에서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특별감찰관 임명과 제2부속실 부활의 필요성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질문이 나오자 “조금 다른 이야기”라며 “당을 이끌면서 필요한 정책은 차차 고민하겠다”며 말을 돌린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정치 경험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것만이 정치가 아니라 공공선을 추구하는 모든 행동이 정치”라며 “여기 계신 비정치인 출신 비대위원들 모두 평생 그런 정치를 해오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저희가 정치 초보인 것이 아니라 이게 진짜 정치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 비공개 회의 때도 “흉금없이 이야기하자, 그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노인 비하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한 민경우 국민의힘 비대위원.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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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 앞서 임명직 당직자 인선도 추가 공개했다. 내년 4·10 총선 공천 실무를 책임지는 사무총장에는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 연이어 합격한 판사 출신의 초선 장동혁 의원을 임명했다. 당의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은 통상 3선 이상이 맡아왔고, 전임 이만희 사무총장도 재선이었다.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엔 홍영림 전 조선일보 여론조사 전문기자를 발탁했다. 홍 신임 원장은 30여년간 여론조사와 통계 분석을 담당하며 유튜브 활동을 통해 대중에도 이름을 알려왔다. 대변인에는 영입 인재이자 서울 구로갑 출마를 선언한 호준석 전 YTN 앵커가 내정됐다.
한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자신이 지명한 비대위원 8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민경우(58) 대안연대 상임대표, 김경율(54) 회계사, 윤도현(21) ‘자립준비 청년 지원(SOL)’ 대표, 한지아(45) 을지대 재활의학 부교수, 구자룡(45)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 장서정(45) 보육·교육 플랫폼 ‘자란다’ 대표, 박은식(39) ‘상식과 정의를 찾는 호남대안포럼’ 대표, 김예지(43) 국회의원 등이다. 윤재옥 원내대표와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당연직 비대위원으로 포함됐다.
정치권에선 한 장관의 인사 스타일을 두고 ‘자유투(자격증·유튜브·투사) 인사’란 평가가 나온다. 비서실장 김형동 의원과 사무총장 장 의원, 구자룡(45) 비대위원은 모두 사시 출신의 변호사 자격증이 있다. 박은식·한지아 비대위원은 의사 자격증을, 김경률 비대위원은 회계사 자격증을 각각 소지하고 있다. 민경우·구자룡·박은식 비대위원과 홍 원장 등은 보수 성향의 유튜브 출연 경력이 있고, 비대위원 대다수는 이른바 ‘조국 저격수’, ‘이재명 저격수’와 같은 투사적 활동을 해왔다. 한 장관 본인도 취임 일성에서 ‘586 정치의 퇴출’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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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가 공식 출범하면서 국민의힘 당원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비대위원장이 지명된 21일부터 28일까지 총 7억2040만원의 후원금이 후원회에 모여 평소 대비 19배가 걷혔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새해 첫날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2일부턴 첫 지방 일정으로 대전과 대구를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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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어차피 여포는 동탁 찌른다”
전날 탈당 후 신당 창당을 선언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한 위원장이 제갈량을 언급한 뒤 페이스북에 “제갈량이 살던 방향으로 살고 싶냐, 동탁과 여포같이 살고 싶냐 묻는다면 저는 주저없이 제갈량의 삶을 동경하겠다. 어차피 여포는 동탁 찌른다. 그것도 아주 황당한 사건으로”라고 적었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을 동탁에, 한 위원장을 여포에 비유해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전략”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 전 대표는 그러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제대로 공부해보면 아테네를 시기해서 스파르타가 그리스 내에서 패싸움 벌이다가 마케도니아 좋은 일 시켜주는 결론이 난다”며 “이재명 대표를 알렉산더 만들고 싶은 게 아니면 역사 공부 똑바로 해야 될 것”이라고도 했다.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인 지난 8월 해외 출장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들고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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