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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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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지옥’ 26년 만에 싹!… “이제야 사는 것 같아요”[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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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한양대병원 피부과 교수 - 건선 손정원 씨

중학생 때 발병, ‘당시 생소한 병’… 여러 병원 다녔지만 지속적 악화

따돌림 등 삶의 질 크게 떨어뜨려… 10점이면 중증…40점 넘을 때도

한때 체표면 45%까지 건선 덮여… 산정특례 대상 되면서 신약 치료

동아일보

김정은 한양대병원 피부과 교수가 26년 동안 건선으로 고생한 손정원 씨(오른쪽)의 얼굴 피부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실상 완치에 이른 손 씨의 투병 비결에 대해 김 교수는 포기하지 않고 병과 싸운 손 씨의 성실함을 가장 먼저 꼽았다. 한양대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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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초등학교 체육 교사 손정원 씨(40)가 김정은 한양대병원 피부과 교수를 찾았다. 손 씨의 병명은 ‘중증 건선’. 10년 이상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치료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악화했다.

건선은 각질이 은백색 비늘 혹은 붉은색 발진 형태로 전신을 덮는 염증성 피부 질환이다. 전체 인구의 1∼2% 정도에서 나타난다. 구체적 원인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면역세포인 T세포의 활동성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각질세포에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선은 단순히 피부 질환으로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 고혈압과 같은 대사 질환이나 류머티즘을 동반할 수도 있다. 외모로 인해 대인 관계에도 큰 지장을 초래해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건선=건성 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김 교수는 “요즘도 환자의 90%는 건성 피부가 심하면 건선이 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대체로 피부병이 빨갛고 각질이 돋아나기 때문에 구분하기 어려워 그러는 것 같다. 하지만 엄밀히 다른 질병”이라고 했다.

● 삶의 질 크게 떨어뜨리는 건선

26년 전, 손 씨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손 씨는 풍진에 걸렸다. 얼굴과 몸에 발진이 나타났다. 치료를 받자, 발진은 곧 사라졌다. 하지만 얼마 후 좁쌀처럼 작은 발진들이 다시 올록볼록 튀어나왔다.

동네 의원에 갔더니 태열(胎熱)이라고 했다. 태열은 아토피피부염으로, 생후 6개월 미만의 영아들에게 주로 쓰는 병명이다. 의사는 약을 처방해 줬다. 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얼굴에서 시작한 발진은 팔과 몸통 쪽으로 번져 나갔다. 그제야 이상하다 싶어서 다른 피부과를 찾았다. 의사가 건선이라고 했다. 어린 손 씨는 물론 손 씨의 부모도 그때 건선이란 병을 처음 알았다.

사춘기 시절, 건선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손 씨의 경우 각질이 두꺼웠고, 각질이 하얀 딱지처럼 몸 여기저기를 덮었다. 친구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앞에서는 대놓고 뭐라 하지 않았지만, 뒤에서는 이렇게 수군댔다. “같이 있기 찜찜하다” “옮을 수 있으니 조심해라”. 그들의 대화 내용이 손 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픈 마음은 운동으로 달랬다. 다행히 운동하는 선배들은 손 씨의 피부를 놓고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 후에도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막 체육 교사가 됐을 무렵이었다. 피부에 좋다는 한 온천에 갔다. 정말로 그 온천이 건선 치료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며칠은 해 봐야지’ 하는 생각에 며칠 후 다시 온천에 갔다.

업소 사장이 손 씨를 기억해 냈다. 그는 다른 손님들이 거부감을 느낀다며 문 닫기 30분 전에 오면 따로 받아주겠다고 했다. 정중한 말투였지만 씁쓸하게 느껴졌다. 손 씨는 그날 이후로 온천에 가지 않았다.

● 여러 병원 다녔지만 개선 안 돼

처음 건선 진단을 받았을 때 손 씨는 연고를 받았다. 그 연고를 바르고 나니 각질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건선 부위가 더 커졌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보인다. 이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비타민D를 섞어 쓰는데, 당시에는 스테로이드제만 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두 성분을 하나로 합친 연고를 주로 쓴다.

손 씨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치료받기로 했다. 하지만 수월하지 않았다. 새벽 기차를 타고 상경한 뒤 치료를 받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광선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시간과 비용 문제로 받을 수 없었다. 광선치료는 자외선 중에서 특수 파장만 쏘아 건선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다 보니 3년 동안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 다녔으면서도, 큰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결국 손 씨는 대학병원 치료를 중단했다. 이어 알로에나 목초액을 바르는 식의 민간요법에 의존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알로에는 보습에는 도움이 되지만 병의 악화를 막을 순 없다. 목초액은 오히려 병을 악화시킬 수 있어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후 손 씨의 피부 상태는 더 나빠졌다. 손 씨는 다시 고향에 있는 개인 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광선치료도 받았다. 연고도 발랐고, 처방해준 약도 먹었다. 하지만 건선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서울로 근무지를 옮겼다. 서울에 있는 동네 의원을 다니다가 한양대병원으로 옮겼다. 이때 김 교수를 만났다. 이 무렵 건선은 얼굴은 물론 전신에 퍼져 있었다. 측정해 보니 체표면적의 35%를 건선이 덮고 있었다. 김 교수는 “중증도를 측정하는 평가에서 10점 이상이면 중증으로 보는데, 손 씨는 24점이 나왔다. 중증 중에서도 중증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 신약 사용 후 증세 급격하게 호전

김 교수는 먹는 약, 바르는 약, 광선치료를 병행했다. 치료 후에는 증세가 호전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약효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약효가 떨어졌고, 건선 부위는 다시 넓어졌다. 객관적 수치도 썩 좋지는 않았다. 일단 중증도 점수가 40점을 넘어섰다. 건선은 체표면적의 45%까지 넓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인 셈.

이제 기존의 약물로는 치료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대체할 약이 없는 건 아니었다. 중증 건선 환자에게 잘 듣는 신약이 있기는 했다. 생물학적 제제인데, 주사제 형태의 약물이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1회 주사를 맞는 데 200만 원이 넘게 들었다. 그러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2017년 7월, 중증 건선 환자에게도 ‘산정특례제도’가 적용된 것이다. 산정특례제도는 암, 중증질환, 희귀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고가의 진료비를 줄여주는 제도다. 보통은 본인부담금의 10%만 낸다.

손 씨도 대상자로 선정됐다. 덕분에 20만 원으로 주사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눈에 띄게 건선 부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약도 얼마 후 효과가 좀 지체됐다. 2019년 4월, 생물학적 제제를 다른 걸로 바꿔 치료를 이어갔다. 2020년 12월에도 다시 약물을 바꿨다. 이런 식으로 신약 치료를 이어갔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건선이 다시 악화하지 않은 것이다. 꾸준히 증세가 개선됐고, 피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 결과 중증도는 0.8점으로 줄었다. 건선이 체표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로 줄었다. 기적에 가까운 호전이었다. 김 교수는 “3개월마다 주사를 맞고, 바르는 약을 쓰고는 있지만 사실상 완치에 가깝다”고 말했다.

● “환자 성실함이 완치 비결”

건선에서 해방된 요즘, 손 씨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하다. 일단, 버스나 전철과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눈치 보지 않고 탈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단다. 건선이 심할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아무리 더워도 소매가 짧은 옷은 입지 못했다. 팔을 모두 가리려면 땀에 찌들지언정 긴소매 옷만 입어야 했다. 이불도 깨끗해졌다. 손 씨는 “예전에는 잘 때 가려워서 나도 모르게 긁다 보니까 이불에 피가 묻곤 했는데, 그런 게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고통을 겪다가 완치에 이른 비결이 무엇일까. 김 교수는 “환자인 손 씨가 성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토록 긴 시간을 꾸준히 치료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 게다가 산정특례 제도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한다. 특히 2주 이상 치료를 중단하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치료를 한 번이라도 거르면 안 된다. 손 씨는 주변의 악조건을 이겨내고 이 조건을 충족시켰다.

손 씨는 가장 성공적이면서도 모범이 될 만한 치료 사례로 꼽힌다. 김 교수는 다른 환자를 진료할 때 손 씨를 참석시켜 경험담을 들려주도록 했다. 대한건선학회 수기 공모전에서 그의 투병 수기는 대상으로 선정됐다. 학회는 그의 치료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홍보용으로 보급했다. 손 씨는 “조금이라도 나와 같은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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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원 씨 건선 투병일지1997년 건선 발병 사실 확인
1997∼2001년 지방 의원에서 스테로이드 약 처방
(초기 반짝 효과, 이후 악화하는 경향 반복)
2001∼2003년 서울 A대학병원에서 건선 치료
(큰 효과 보지 못하고 치료 중단)
2004∼2016년 지방 병원과 의원에서 간헐적 치료
민간요법 치료도 시도했지만 효과 못 거둠
2016년 8월 한양대병원 피부과 첫 치료
건선 중증도 20점, 체표면의 35% 차지
(먹는 약, 바르는 약, 광선치료 시작)
2017년 1∼12월 기존 치료 반복, 효과 정체 보임
(건선 중증도 40점 이상 체표면적 45% 이상)
2017년 12월 생물학적 제제 신약 주사 치료 시작
2019년 4월 생물학적 제제 1차 교체
2020년 12월 생물학적 제제 2차 교체
2023년 12월(현재) 사실상 완치, 3개월마다 주사, 바르는 약 사용
(건선 중증도 0.8점, 체표면적 1.0%로 급감)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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