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동차 시장은 ‘개와 늑대의 시간’입니다. 피크아웃(판매량이 고점을 찍은 후 하락) 후에 실적 성장의 계기(개)가 될지, 침체의 시작(늑대)이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지난달 13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에서 만난 김진우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한투PE) 투자실장은 자본시장이 바라보는 자동차 업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김 실장은 한국투자증권 리서치본부에서 오랜 기간 자동차 담당 연구원으로 활약했다. 인터뷰 당시에는 애널리스트였는데, 작년 말 그룹 인사가 나면서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한투PE로 적을 옮겼다. 한투PE는 딜소싱 다변화와 역량 확충을 위해 김 실장을 영입했다.
김진우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 투자실장이 2023년 12월 13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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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실장은 지난해 자동차 시장을 ‘구조적 왜곡을 풀어나가기 시작한 중요한 변곡점’으로 정의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미국 시장에서 151만579대의 누적 판매량을 달성했다. 미국 내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던 2021년(148만9118대)을 앞질렀다.
그는 “쌓였던 자동차 재고가 동나고 수요가 넘치면서 미국 딜러들은 인센티브를 받고 차를 팔기도 했다”며 “2021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자동차 회사들이 소비자에게 소위 ‘갑질’하는 수준으로 차가 잘 팔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코로나19 기간 크게 늘어난 국내 완성차 기업의 이익이 일시적일 것으로 판단했고, 그로 인해 주가는 별로 오르지 않았다. 올해 1월 2일 기준 증권가 컨센서스(평균 전망치) 상 현대차의 주가이익비율(PER)은 5.68배, 기아는 4.44배에 그친다. 코스피 PER이 10.87배인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익은 늘어나는데 주가는 제자리걸음이다 보니 자동차주 밸류에이션이 심각하게 저평가 상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 실장은 지난해 자동차 시장에 피크아웃이 왔다고 짚었다. 하지만 그래도 올해는 저평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시기라고 봤다. 그는 “내연 기관 업계에서 판매량이 ‘피크(고점)’를 찍은 건 지난해 여름 정도로 보고 있다”며 “이제 ‘아웃(저점)’의 속도와 기울기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LA 오토쇼에 아이오닉5N을 전시했다. 다양한 고성능 전기차 기술이 적용돼 있는 차다. /현대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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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점은 찍었지만, 골이 깊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김 실장의 진단이다. 김 실장은 2026년 판매량이 저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하며 이 시기를 ‘뉴노멀’이라고 정의했다. 뉴노멀 시기엔 코로나19 이전 판매량 수준으로 ‘데칼코마니’처럼 감소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전 세계 자동차 물량은 2017년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추세였으나 코로나19를 거치며 가속화했다”며 “이제 자동차 시장은 쌓인 물량을 팔기 위해 가격을 깎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 가격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기술·판매 전략 등을 활용해 매매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정 판매량을 유지하더라도 재고는 지난해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자동차 가격은 동시에 하락하면서 자동차 업계 간 ‘옥석 가리기’를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그는 “소비자의 자동차 선택권이 조금씩 살아나면서 자동차 회사 간 실적 편차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실장은 이럴 때일수록 자동차 업계는 코로나19 시기 거둬들인 이익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회사는 실적이 더 나빠져 주가가 그대로여도 저평가를 벗어날 것이고, 어떤 회사는 경쟁업체 대비 압도적인 성과를 내면서 주가 저평가를 벗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대차와 기아가 판매 호조를 이어가며 주가가 저평가 국면에서 탈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 실장은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10월에 이어 11월에도 전월 대비 각각 9.6%, 7.7%씩 판매가 늘었다”며 “이는 지난해 4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흐름”이라고 판단했다.
주주환원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김 실장은 “국내 자동차 회사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전반적으로 주주환원에 대한 믿음이 없다”며 “현대차와 기아는 일회성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배당을 통한 주주환원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독일 남부 츠비카우에 있는 폭스바겐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전기차 ID.3를 조립하고 있다./폭스바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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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장이 국가 간 경쟁으로 치달은 이때, 미래차 경쟁 또한 치열해질 예정이다. 2021년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지정해 자국의 배터리 제조 산업을 보호하기 시작했고, 이 여파로 국내 전기차 시장이 위축되며 불황이 겹쳤다.
김 실장은 “글로벌 정세 리스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전기차 시장”이라며 “자동차 회사가 다른 나라에서 영업하기 더 힘들어지는 이 시점엔 산업 자체가 디스카운트를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래차가 부상하며 자동차 부품 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김 실장은 특히 대형 부품사가 아닌 중소형 부품사를 더 주목했다. 그는 “차량의 플랫폼화와 전기차 개발 속에서 중소형 부품기업이 미래차 부품 제공에 더 적합한 시기가 됐다”며 새로운 부품의 등장으로 고객사 다변화 기회가 열리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소형 부품사의 실적 호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며 에스엘, 피에이치에이, 성우하이텍, 한국단자공업, 대원강업, 덕양산업, 세방전지를 관련주로 추천했다.
강정아 기자(jenn1871@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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