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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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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영화 ‘상납’ 계속되면…한국영화는 영영 희망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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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책 전문가 노철환 인하대 교수 인터뷰

넷플릭스 등 OTT가 독점하면
극장 사멸·영화발전기금 고갈
제2봉준호 키울 재원 사라져

프랑스, 15개월 지나 OTT 공개
넷플에 佛영화 투자 조건 걸어


◆ OTT 상영유예 ‘홀드백’ 법제화 논란 ◆

매일경제

노철환 인하대 교수. [한주형 기자]


한국영화사 최고 흥행작은 1761만명이 관람한 ‘명량’이다. 2014년 7월 30일 개봉한 ‘명량’은 10일째(8월 8일) 관객수 867만명을 기록했다. ‘몰빵’에 가까울 만큼 상영관을 밀어줬다는 논란도 부정하기 어렵지만, 개봉 초기 팬들이 극장을 찾던 뜨거운 10년 전 모습은 재연 불가능한 풍경이 됐다.

왜 그런가. 기대작이더라도, 아니 기대작일수록 ‘최장 3개월’이면 OTT에 풀릴 거란 확정적인 예감 때문이다. 대박을 쳐도, 쫄딱 망해도 “어차피 OTT 공개”란 예감은 대박 영화를 ‘중박’으로, 망작을 ‘역대급 망작’으로 전락시킨다. 그 사이, 극장 수익을 기준으로 영화발전기금을 걷고, 이를 지원받던 신진 영화인 씨가 말라간다.

‘홀드백 법제화’가 영화계를 뜨겁게 달구는 가운데, 영화정책 전문가로 통하는 노철환 인하대 교수는 “홀드백까지 안 되면 한국영화는 정말 희망이 없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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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철환 인하대 교수. [한주형 기자]


15일 만난 그는 “자본을 가진 넷플릭스 등 OTT가 단기간에 권리를 독점하면 그 앞의 시장부터 하나둘씩 죽어나간다”며 “극장이 죽고, IPTV도 침체되고, 결국 ‘돈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니면 극장 갈 이유가 증발하는 거다. OTT에게 계속 영화를 ‘상납’하는 구조면 한국영화는 희망이 없다”고 강조했다.

노철환 교수는 해외 영화정책에 관한 국내 최고 전문가다. 파리8대학 대학원에서 영화미학과 영화제작·배급을 전공했고(석사 3개, 박사 1개), 7년간의 프랑스 체류시절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파리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유럽 영화정책을 세밀하게 취재·연구해 국내에 알렸다. 이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영화에 적용됐다. 작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홀드백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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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드백을 법제화한 최초의 EU 국가는 프랑스로 기간이 15개월, 이탈리아와 불가리아는 3개월이에요. 프랑스는 당초 36개월이던 홀드백 기간을 15개월로 당기는 대신, OTT 업체로부터 많은 걸 얻어냈어요. 홀드백 기간을 단축해주는 조건으로 프랑스 영화에 투자하게 한 건데,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이죠.”

프랑스 정부는 문화부장관령으로 OTT 홀드백 기간을 15개월로 줄여줬다. 그 대가로 넷플릭스는 3년간 연매출의 4%(최소액 4000만 유로)를 10편 이상 영화에 투자해야 한다. 2억 유로(약 2896억원)의 효과다. 총 투자액의 17%는 상대적으로 소규모 영화(400만 유로 이하)에 투자해야 하는데, 이는 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90일이던 홀드백을 120일로 더 늘리는 안이 최근 추진 중이고, 불가리아는 작년 12월 8일 홀드백 3개월이 확정됐다.

홀드백(holdback)이란 ‘극장 개봉 후 OTT에서 공개되기까지의 기간, 즉 OTT 상영 유에 기간’을 뜻한다. 극장 수익 축소가 결국 영화산업을 절멸시킨다는 위기감이 홀드백 법제화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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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철환 인하대 교수.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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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 축소되고, 2차 시장 수익이 감소하고, 그러면 한국영화 전체 수익률이 줄어듭니다. 이는 영화 투자 감소를 부르고 개봉작도 급감합니다. 극장과 배급사가 티켓값의 1.5%씩을 부담(현행 총 3%)하는 영화발전기금이 고갈될 것이고, 이 기금이 없으면 한국영화 다양성도 죽습니다. 새 영화가 없으면 망가가 원작인 애니메이션만 유행하는 일본 영화계처럼 새로움이 사라질 겁니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1위 영화투자 배급사로 성장했습니다. 홀드백은 글로벌 OTT에 대응하는 필연적인 방법론이에요.”

게다가 1차 시장인 극장과 달리, TVOD(영화 건별 결제)가 매출의 상당액을 차지하는 IPTV 업체는 SVOD(OTT 구독시 모든 시청 무료)와의 이원화를 주장하는 등 양측 입장이 첨예하다. 게다가 관객, 즉 영화 소비자는 비용을 적게 치르고 영화를 즐기고 싶어 한다. 홀드백 기간도 3개월이냐, 6개월이냐 등 입장이 전부 달라서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꼬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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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 홀드백 법제화가 가시화된 가운데, 지난 12일 만난 영화정책 전문가 노철환 인하대 교수.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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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로 풀리면 영화발전기금이 ‘0원’입니다. 우리가 봉준호 영화를 만난 것도, 봉 감독도 영화발전기금으로 지원·운영되는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다닐 수 있었기 때문 아닌가요? 시장이 노쇠화되지 않아야 한국영화가 계속 흐릅니다. 영화발전기금을 더 걷어 수혜를 늘려야 한다는 게 제 궁극적인 생각이에요.”

홀드백이란 용어도 재정립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홀드백은 미국이나 유럽에선 사용되지 않는 콩글리쉬다.

“미국에선 ‘theatrical release window’로 의역시 ‘극장이 영화를 독점하는 기간’이고, 프랑스에선 ‘미디어 연대기, 매체 연대기(영어로 media chronicle)’로 부릅니다. 스크린이 4만 개인 미국은 영상산업 시장이 ‘극장 대 비(非)극장’ 구도여서 저런 용어를 사용하고, 프랑스 ‘미디어 연대기’는 극장, OTT, TV 등에서 공개되는 일련의 순서를 말하니 중립적이죠. 홀드백은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는 콩글리시에요. 한국에 맞는 용어를 정립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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