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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이슈 인공지능 시대가 열린다

"AI 주도권 잡자" 세계무대 누빈 MS 나델라 … 움츠러든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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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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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4의 키노트 행사가 열리던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시안 호텔 팔라조 볼룸에서 관객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CEO)가 키노트를 진행하는 가운데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가 '깜짝' 등장한 것이다.

맥밀런 CEO는 월마트의 새로운 인공지능(AI) 챗봇을 소개하던 중이었다. 무대에 오른 나델라 CEO는 "월마트의 독자적 데이터와 생성형 AI의 조합으로 차별화한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CES 2024에서 'AI 혁명'이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펼쳐진 두 CEO의 모습은 AI를 둘러싼 글로벌 기업 간 합종연횡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꼽힌다. 나델라 CEO가 이끄는 MS는 AI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으로 최근 애플을 제치고 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탈환하기도 했다.

거의 동시간대 한국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행보가 포착됐다. 한국 시간으로 10일 이 회장은 새해 첫 경영 행보로 서울 서초구의 삼성리서치를 찾아 6G를 포함한 차세대 통신 기술 동향과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새로운 기술 확보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강조하며 초격차 기술 선점과 미래 준비를 당부했다. 그러나 AI가 경제·사회·안보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중대한 시기인 만큼, 이 회장이 서울보다는 글로벌 CEO들이 모이는 현장을 찾았어야 했다는 것이 산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 회장의 빈자리가 컸다는 시각이다. CES 2024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도 참여했지만, 이 회장은 글로벌 산업계에서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기에 상징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이처럼 중대한 시점에 국내에 머무른 것은 재판에 발이 묶인 탓이다. 오는 26일 부당합병·회계부정 재판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 됐다는 해석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총수나 CEO라면 해외에서 투자·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다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IT 업계 리더들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IT 업계의 미래 판도를 결정지을 수 있는 합종연횡이 활발한 상황에서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인 것은 안타깝고 위험해 보인다"고 했다.

AI 시대 주도권을 잡고자 글로벌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글로벌 기업 리더들을 보면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힌 이 회장의 행보는 더 아쉽다.

나델라 CEO는 CES 2024에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의 한국관 전시장을 찾기도 했다. 그는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들을 만나 AI와 관련된 협업 관계를 구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델라 CEO는 15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막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도 참석해 글로벌 정치·경제 리더들을 만난다. 팻 겔싱어 인텔 CEO, 크리스티아누 아몽 퀄컴 CEO 등 AI 시대 주도권 경쟁에 들어간 주요 기업 CEO들도 CES가 열렸던 라스베이거스에 이어 다보스를 찾을 예정이다. 기업 리더들은 화두로 떠오른 AI와 관련해 협업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와 달리 이 회장은 지난 16일 서초구에서 삼성 명장들과 오찬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국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1심 선고일까지 국내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회장의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가 삼성의 핵심 자산이자 국가 차원에서도 중요한 자산이기에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안타깝다는 시각이다.

이 회장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팀 쿡 애플 CEO 등 전 세계 유수의 기업 경영인 다수와 친분을 맺고 있다. 이 회장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주요국 전·현직 지도자들과 교류해왔다.

이 회장은 해외 네트워크를 동원해 개별 기업의 비즈니스뿐 아니라 국가적 현안 해결에도 나선 바 있다. 이 회장은 2019년 일본의 반도체 부품·소재 수출 규제 당시 일본을 직접 방문해 일본 재계 네트워크를 가동하며 분쟁 조기 해소에 힘썼고, 코로나19 당시 국내 백신 공급이 부족해지자 화이자·모더나 최고경영진과 직접 협상하며 코로나19 백신의 국내 위탁생산을 성사시켰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미국에 22일간 머물며 CEO 20여 명을 만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공판 일정을 고려해 출장을 갈 수 있는 기간에 몰아서 최대한 많은 일정을 소화한 것이다.

김용진 서강대 교수는 "CES를 둘러보니 AI가 화두가 되고 있는데도 삼성전자의 혁신 동력은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적지 않았다"며 "결국에는 이 회장이 해외에서 제대로 뛰어다니지 못하는 상황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로 계속 발목이 잡혀 있다면 삼성전자의 혁신·성장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승진 기자 /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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