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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이슈 세계 속의 북한

협상론자 “전쟁 날 수도” vs 제재론자 “김정은 연극”...美서 기존 기조와 다른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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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남조선 평정’ 발언 놓고 논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조국 통일 3대 원칙’을 폐기하고 “남조선 전(全) 영토 평정”을 언급한 이후 한반도에서 도발·전쟁 가능성을 놓고 미국 전문가들의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북한이 전쟁을 결정했을 수 있다는 경고와 우려를 내놓으면서 전면전이 아니라도 국지적 공격이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일부 전문가는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포탄을 제공 중이라는 사실 등을 들며 (다른 지역 전쟁에 무기를 공급하는) 북한의 도발로 인한 한반도 전쟁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크지 않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에선 통상 북한의 무력 도발을 막기 위한 억제가 필요하다는 쪽과 북한을 전쟁보다는 대화의 상대로 봐야 한다는 쪽이 논쟁하는 구도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논의는 이 차원으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의 전쟁 충동을 억제하기 위한 대화 필요성 및 핵 동결(북한 현 상태로의 핵개발 용인)에 무게를 두는 ‘협상파’와 북한의 무력 도발 동력은 약하므로 더 강력히 압박해 핵 도발을 억눌러야 한다는 ‘제재파’로 나뉘는 양상 또한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北 핵전쟁 가능성 고려는 해야”

이번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지난달 15일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등장한 ‘김정은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가’란 기고문이었다. 공저자 로버트 칼린 스팀슨센터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미들베리국제문제연구소 교수는 “우리는 김정은이 1950년 그의 할아버지가 (6·25 전쟁에서) 그랬듯 전쟁을 일으키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달 11일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교수도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에 기고한 ‘2024년 미국과 북한의 외교는 가능한가’란 글에서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고려는 해봐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는 대만 문제로 인한 미·중 충돌 가운데 북한이 중국을 돕기 위해 핵 위협을 가하거나, 한국을 강압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의 대립,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러 밀착 같은 현재 국제 정세를 북한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이용하려 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북핵 전문가인 칼린과 헤커는 1990년대부터 북한은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지만 2019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의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로 김정은이 이런 과거 정책을 버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헤커는 앞서 지난해 11월 한 기자간담회에서도 “북한이 1990~2020년 약 30년 동안 진정성 있게 진지한 대화를 끌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핵개발의 변곡점에 도달할 때마다 내려진 결정으로 북한의 핵 포기 기회를 잃게 됐다”고 했었다.

1993~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로 북한과 협상했던 경험이 있는 갈루치는 한발 더 나아가 미·북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라면 북한이 과거 협상에서 관심을 보였던 제재 해제와 한미 연합훈련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기고문에서도 이런 기조를 이어가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려면 “미국이 진심으로 (미·북)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고 비핵화를 (협상) 과정의 초기 단계보다는 장기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전면전 아니어도 ‘도발’ 가능”

반면 김정은이 가장 바라는 것은 정권 유지이므로 헤커·칼린·갈루치 등이 암시한, 전면전을 개시할 가능성이 낮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전면전은 김정은 정권 몰락의 위험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들도 대부분 서해 도서 지역 등에 대한 국지적 공격 가능성은 우려하고 있다.

제임스 루이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부소장은 지난 30일 내셔널인터레스트 기고문에 “그(김정은)는 미치지 않았고 그가 온갖 종류의 연극을 할지라도 전쟁은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며 “(김씨) 정권을 위험에 처하게 할 행동은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CSIS는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미사일·핵 도발 억제를 위해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던, 미국의 보수 성향 연구소다.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인 수미 테리 페닌술라스트레티지스 창립자도 같은 날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김정은이 전쟁을 원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은 한국과의 큰 전쟁은 반드시 미국을 끌어들이게 되며 정권의 종식을 가져온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북한의 의도적 전쟁 개시보다 한국 수역에 대한 미사일 발사, 한국 도서 지역에 대한 드론 보내기, 서해 경계선 침범 같은 북한의 정기적 저강도 도발이 (한국의) 보복을 유발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 북한정보담당관을 지낸 마커스 갈로스카스 애틀랜틱카운슬 인도태평양 국장은 이날 뉴스위크에 실린 글을 통해 “(통일을 안 하겠다는) 북한의 새 정치적 노선은 전쟁이 임박했다는 신호라기보다 현실의 인식”이라며 “한국은 북한보다 인구가 두 배 많고 경제력은 50배 크며 선택권과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이 있는 활기찬 사회”라고도 했다. 갈로스카스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핵 위협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절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안보에 치명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강압 행위 전반에 대해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맞서야 한다”고 제언했던 인사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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