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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연재]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특파원 시선] 만델라, 아라파트 그리고 ICJ 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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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정부·집권당, 총선 앞두고 전략적 활용 관측

과반득표 첫 실패 위기…대이스라엘 강경책 지속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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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5월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만난 아라파트(왼쪽)와 만델라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은 자기결정권을 성취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남아공의 '국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1990년 2월 석방 2주 후 만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전 의장을 포옹하며 한 발언이다.

1993년과 1994년 차례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만델라 전 대통령과 아라파트 전 의장은 생전 다양한 계기로 수시로 만나 서로를 응원하는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인종차별정책) 시절 만델라 전 대통령의 투옥과 석방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줬고,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종식하고 대통령에 오른 만델라는 이를 잊지 않았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97년 한 연설에서는 "팔레스타인의 자유 없이는 우리의 자유도 불완전하다"라고도 말했다.

두 지도자의 이 같은 관계는 이후 남아공과 팔레스타인의 끈끈한 연대로 이어진다.

실제 남아공 정부와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전에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아파르트헤이트에 비교하며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비판하는 등 팔레스타인을 확고하게 지지해 왔다.

2019년에는 이스라엘에 억압받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 텔아비브에 있는 주이스라엘 자국 대사관의 지위를 연락사무소로 강등하기도 했다.

남아공이 지난해 12월 29일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 혐의가 있다며 이스라엘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배경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처럼 깊은 정서적 유대감이 일정 부분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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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만델라 동상과 팔레스타인인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남아공 현지에서는 그 이면에 있는 국내 정치적 상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1994년 집권 이후 줄곧 과반 득표로 집권한 ANC는 심각한 전력난과 높은 실업률, 부패,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 등으로 지지율이 계속해서 떨어져 왔다.

작년 말부터는 올해 5∼8월 중 실시 예정인 총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50%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에 ANC가 지지 세력 결집을 통한 과반 확보를 목표로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을 선거 전략적 측면에서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ANC 대표인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지난달 8일 "이스라엘을 ICJ에 제소한 것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 공약의 일환"이라며 "지금 팔레스타인 주민이 겪는 고통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공 흑인이 경험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핍박하는 강자'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이라는 구도를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했던 자신들의 역사에 투사해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동시에 지지층 결집을 노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국제적으로 원칙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핵심 가치에 충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국내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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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법재판소(ICJ)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남아공 외무장관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한 것은 총선을 앞둔 ANC에 유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라마포사 대통령이 이후 대국민 성명(1월 29일), 연례 국정연설(2월 8일) 등에서 ICJ의 잠정조치 명령을 거듭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대표국으로서 국제 무대에서 위상과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일련의 행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지난 8일 100분 가까이 이어진 연례 국정연설 대부분을 올해 총선을 앞두고 그의 첫 5년 임기를 방어하고 성과를 홍보하는 데 할애했다.

그러면서도 ICJ의 잠정조치 명령과 함께 지난해 브릭스 의장국으로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5개국의 가입을 끌어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을 중재하는 '아프리카 평화이니셔티브'를 주도한 것을 잊지 않고 언급했다.

올해 총선에서 라마포사 대통령의 ANC가 과반 득표를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ANC의 지지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남아공의 대이스라엘 강경 정책은 한동안, 최소한 총선 전까지는 이어질 전망이다.

hyunmin6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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