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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 (토)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계곡 뛰어들어 실종 장애아 구한 소방관[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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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소방서 김재욱 소방관, 작년 8월 6일 초등 6년생 수색 신고 접수

섧게 울부짖던 보호자에 "안일했던 생각 부끄러워…꼭 구하고 싶었다"

가슴 높이 계곡 입수 후 300미터쯤 수색 중 천진난만하게 물장구 치던 아이 발견

"그때 이후 장애인 출동에 대한 맘가짐 달라져...새로운 사명감과 활기 얻은 소중한 경험"

[편집자주]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가량 숨 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지난해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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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소방관(사진 오른쪽)이 지난 2022년 9월 15일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서 발생한 방앗간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사진=김재욱 소방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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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구조 출동! 구조 출동!”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8월 6일 오후 4시 26분, 경남 거창소방서 위천119안전센터에 출동 벨이 울렸다. 곧이어 상황실 신고 접수 요원은 방송을 통해 ‘아이가 월성계곡 근처에서 실종됐으니 수색 바랍니다’며 출동 내용을 간략히 알렸다.

김재욱(32) 소방관은 동료들과 함께 거창군 북상면 월성계곡으로 향하는 펌프차에 올랐다. 이동 중 월성계곡 입구 갤러리 카페에서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실종됐다는 신고 내용을 접하고선 김 소방관은 “초등학교 고학년인데 길을 잃었다고?”라며 다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하자 김 소방관의 그런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김 소방관은 아이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펌프차가 도착하자마자 자신들에게 달려들어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고 보통 상황이 아님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실종된 아이는 3~4세의 지능을 가진 지적 장애아였다.

김 소방관은 “아이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정말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 서럽게 울부짖었다”며 “저희 소방관들은 평소에 감정 이입을 하지 않도록 훈련받는데 감정 이입이 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절규였다. 꼭 내 손으로 아이를 찾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김 소방관은 자신의 성급한 지레짐작이 부끄러워졌다. 만 2년을 갓 넘긴 신입 소방관으로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김 소방관은 “현장 도착과 동시에 짧은 이동 중에 가졌던 안일하고 성급했던 제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알게 됐다. 보호자들에게 죄송해서라도 꼭 찾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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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소방관(사진 맨 왼쪽)이 지난 2022년 11월 10일 경남 거창군 거창읍에서 발생한 컨테이너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사진=김재욱 소방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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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경력 탓에 장애를 가진 실종자를 수색해 본 경험이 없던 김 소방관은 같이 출동한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계곡으로 내려가 수색을 진행했다. 활동복을 그대로 입은 채 가슴 높이의 물속으로 들어갔다. 김 소방관은 계곡을 걸어 내려가며 혹시 모를 사고를 생각해 수시로 잠수를 해 수면 아래를 살폈다. 그렇게 약 300미터쯤 수색을 했을까. 구불구불한 계곡의 특성상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의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김 소방관과 같이 수색을 하던 아이의 아버지가 재빨리 계곡의 모퉁이를 돌더니 “제 아이가 맞습니다”라고 소리쳤다. 김 소방관은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왈칵 뜨거운 감정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 그저 살아 줘서 고맙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어른들이 짊어진 극한의 슬픔엔 아랑곳없이 아이는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즐겁게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김 소방관은 아이를 안아 들고 계곡 옆을 둘러싼 비탈길 위쪽 밭에서 대기 중이던 거창소방서 본부 구조대에 아이를 무사히 인계했다. 아이는 별다른 부상 없이 건강했다. 김 소방관은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고 웃을 수 있었다.

김 소방관은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를 계기로 장애인 대상 현장 활동에 대한 마음가짐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했다. 김 소방관은 “그때 이후 장애인 대상 출동 시 선배들에게 현장 상황의 특징 등을 면밀히 파악하고 미리 준비했다”며 “당시 출동은 잠시 나태해진 제게 새로운 사명감과 활기를 불어넣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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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소방관.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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