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병원 수술 30∼50% 취소했지만, 다음 주엔 더 늘어날 듯
"암 전이됐는데 수술 취소됐다" 분통…환자들, 치료시기 놓칠까 '전전긍긍'
정부, 피해환자에 '법률상담서비스' 지원한다지만 "감히 병원에 어떻게…"
'전공의 없는 병원' 현실화 |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서혜림 오진송 권지현 기자 =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대규모 병원 이탈으로 인한 수술과 진료 축소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수술률 가동률이 절반 밑으로 떨어지고, 암이 전이된 환자의 수술이 취소되는 등 현장의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주요 병원의 응급실 기능이 계속 축소되고 있으며, 지방에서는 치료받을 수 있는 응급실을 찾지 못해 수백㎞를 떠돈 환자 사례마저 나왔다.
◇ 응급실 '빨간불'…"중환자실 부족으로 중증외상환자 수용 불가"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은 전공의들의 대규모 이탈에 따라 전체 수술을 최소 30%에서 50%까지 줄인 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대형병원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자 수련하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칭한다.
환자를 직접 수술하거나 진료하진 않지만, 교수의 수술을 지원하고 환자 상태를 관리하는 역할 등을 맡는다. 이들이 없으면 수술, 진료 등에 큰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
서울대병원은 수술을 연기하고, 신규 진료 예약을 줄이면서 전공의 이탈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
기존 환자의 예약은 최대한 소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미 취소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병원도 파악하고 있다. 진료과별로 매일 상황을 확인하며 조율 중이다.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수술을 절반으로 줄인 조치를 지속하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수술실 22개 중 10개만 운영 중이다. 가동률이 50%도 안 된다는 얘기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세브란스병원은 현재 응급실에서 위장관응급내시경, 담낭담관질환 환자 수용이 불가하다고 공지했다.
뇌출혈과 심근경색 환자도 부분적으로만 수용 가능하다고 밝힌 상태다.
삼성서울병원은 전공의 이탈로 이날 수술의 40% 이상이 연기될 것으로 봤다.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역시 수술을 30%가량 축소했다.
서울아산병원은 환자 피해를 고려해 최대한 할 수 있는 수술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다음 주부터는 감소 폭이 더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신규 환자의 외래진료 예약도 크게 줄였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은 현재 중환자실(ICU) 부족으로 중증 외상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상태다. 단순히 얼굴이 찢어지거나 벌어지는 열상 환자의 성형외과 진료도 불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진료 기다리며 맞잡은 손 |
◇ 교수 동원해 빈자리 채우지만 진료 감소 불가피
복지부에 따르면 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의 74.4%인 9천27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근무지 이탈자도 8천24명에 달한다.
전공의 이탈이 길어질수록 지금보다 수술을 포함한 전체 진료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현재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정상적으로 하더라도 전공의가 없는 탓에 대기시간도 계속 길어지고 있다.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세브란스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는다는 한 폐암 환자는 "20일에 다녀왔는데 대기가 엄청나서 정말 하루 종일 있었다"며 "지방에서 올라와 아침에 도착했는데, 대기만 2시간 30분을 했고 치료를 다 받고 나니 오후 6시더라"고 전했다.
각 병원은 전공의의 빈 자리를 전임의와 교수 등을 동원해 채우고 있다. 야간 당직 등에 교수를 배치하고 있지만, 상황이 길어지면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빅5' 병원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중환자실이나 응급의학과는 우선순위로 인력을 지원해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며 "가장 큰 문제는 남아있는 의사들의 번아웃(소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일주일에서 열흘이 고비가 될 수 있다"며 "그 이후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병원에 남은 의사와 보호자 |
◇ 환자 시름 깊어져…수백㎞ 떠돌다 3시간30분 만에 치료받는 사례도
병원이 수술과 진료 일정을 조정하며 전공의 이탈에 대응하는 사이 환자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등으로 자발적으로 피해 사례를 공유하며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
직장암 3기로 지난해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받았으나, 항암 치료가 종료된 지 두 달 만에 암이 간으로 전이돼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는 한 환자는 극심한 불안을 호소했다.
이 환자는 "지난 20일 입원, 21일 수술 예정이었는데 취소됐다"며 "시기를 놓쳐서 간 이식으로 넘어갈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섭다"고 했다.
또 다른 위암 환자는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 속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데, 129센터에 접수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이 억울함과 속상함을 어쩌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방에서는 치료받을 수 있는 응급실을 찾지 못해 수백㎞를 떠돈 환자 사례도 나왔다.
강원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11시 30분께 강원 양양군에서 당뇨를 앓는 60대 A씨가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괴사가 일어나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구급대는 강릉아산병원으로 가려 했으나, 병원 측은 전공의 부재로 인해 진료가 어렵다며 다른 병원으로 이송을 권유했다.
구급대는 속초와 강릉에 있는 병원 모두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에 길거리를 떠돌다 첫 119 신고 후 3시간 30분 만인 오후 3시가 돼서야 겨우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
충남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B씨는 "오는 28일 세브란스병원에서 폐 질환으로 검사 예정이었는데, 암이 확진된 사람만 진료하고 있다며 일정을 4월로 변경하자더라"며 "암 걸려서 다 죽어가야 진료받을 수 있는 거냐, 사정사정해도 안 들어주더라"고 토로했다.
전날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신규로 접수된 피해사례는 총 57건이다. 수술 지연 44건, 진료 거절 6건, 진료예약 취소 5건, 입원 지연 2건이었다.
정부는 수술 지연 등 피해자에게 '법률상담서비스'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어떤 환자가 앞으로 치료받을 병원을 상대로 쉽게 고소·고발에 나서겠느냐"는 자조적인 반응도 나온다.
전공의 없는 의국 |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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