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처방에 봉합까지…의료공백에 간호사들, 불법진료 내몰려
환자 피해 속출…"심정지 환자에 응급약물 처방할 의사도 없어"
"전공의들 간호사 고발 준비"…간호협 "고발 시 맞대응"
대한간호협회, 긴급 기자회견 |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의대 증원에 반대해 집단사직한 전공의들의 업무를 간호사들이 강제로 떠맡고 있다는 현장 증언이 나오자 정부가 간호사 보호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위반한 의료기관을 제재하는 방식이다.
대한간호협회(간호협)는 23일 오전 서울 중구 간호협회 서울연수원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과 함께 불법 의료행위에 노출된 간호사들의 신고 내용을 공개했다.
간호협은 의사들의 집단사직이 시작되자 지난 20일 오후 6시 '의료공백 위기대응 현장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를 개설하고 간호사들의 신고를 받고 있다. 이날 오전 9시까지 신고 154건이 접수됐다.
간호사들은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불법진료 행위지시'를 꼽았다.
간호사들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를 대신해 채혈, 동맥혈 채취, 혈액 배양검사, 검체 채취 등 검사와 심전도 검사, 잔뇨 초음파(RU sono) 등 치료·처치 및 검사, 수술보조 및 봉합 등 수술 관련 업무, 비위관(L-tube) 삽입 등 튜브관리, 병동 내 교수 아이디를 이용한 대리처방 등을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초진기록지와 퇴원 요약지, 경과기록지, 진단서 등 각종 의무기록 대리 작성과, 환자 입·퇴원 서류 작성을 강요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응급실 환자 진료 제한 안내문 |
의료 공백으로 환자안전도 크게 위협받고 있다.
간호협은 "심정지가 온 환자에게 당장 응급약물을 처방하고 인공기관삽관을 해야 할 의사가 없어서 환자 상태가 악화했다는 신고가 2건 들어왔다"며 "의사 부족으로 간호사가 중환자실에서 환자와 함께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는 신고도 접수됐다"고 전했다.
일손 부족으로 환자 소독 시행 주기는 4일에서 7일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주말에도 해야 하는 거즈 소독은 평일에만 하고 있다.
신고된 의료기관 중엔 상급종합병원이 62%로 가장 많았고, 종합병원 36%, 병원 2% 순이었다. 신고한 간호사는 일반 간호사 72%,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24%로 일반간호사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임상전담 간호사'로도 불리는 PA 간호사는 수술장 보조, 검사시술 보조, 검체 의뢰, 응급상황 시 보조 등의 역할을 한다. 위법과 탈법의 경계선상에서 일부 의사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1만명 이상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하면 PA 간호사를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환자를 내 몸 같이" |
이를 위해 복지부와 간호협회는 지난 21∼22일 양일간의 논의를 통해 의료공백 상황에서 간호사들이 법적 보호를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보호 체계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간호협회에 따르면 정부는 의료기관이 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없는 업무 목록을 작성하고 현장에서 이를 위반할 경우 의료기관장에게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는 그간 법적으로 의사와 간호사 업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일부 간호사들이 의사가 해야 할 의료행위를 대신하면서 불법 진료에 내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없는 의료행위'는 대법원 판례를 참고해 마련할 예정이며, 이외 업무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장이 간호부와의 협의를 거쳐 마련하기로 했다.
박민수 제2차관은 이날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의료기관장 책임하에 각 기관 내에서 이루어지는 의료행위는 '명확하지 않은 회색 부분'들이 있다"며 "이런 것들은 기관장 책임하에 분명하게 법을 지켜 가면서 진행해 주실 것을 이 자리에서도 말씀드리고, 또 그렇게 지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의료사고 발생 시 간호사에 대한 책임 경감 방안 마련도 추진한다.
간호협은 정부가 필수 진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24시간 운영하는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의에서 일하는 간호사를 대상으로 '위기 대응 간호사 수당'을 지원하는 등 적정 보상체계를 마련해달라고도 정부에 요구했다.
나흘째 이어진 전공의 집단 이탈 |
한편 간호협회에 따르면 일부 전공의들은 간호사들에 대한 고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고발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공의들이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것을 문제 삼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 일부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를 대체했다가 전공의들로부터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발당하는 일이 벌어졌었기 때문이다.
간호협은 "전공의들이 간호사를 고발하면 맞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가 전체의 70%를 넘어서는 등 보건 의료상황이 악화한 점을 고려해 이날 오전 8시를 기해 보건의료 재난경보 단계를 최상위인 '심각'으로 끌어올렸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아니라 보건의료 위기 때문에 재난경보가 '심각'으로 올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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