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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이슈 국방과 무기

탑건처럼 전투기가 급상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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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5K 전투기가 중력가속도를 이기며 급상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도 나오듯 지상중력보다 훨씬 강한 하중이 몸을 짓누르는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기절하지 않는 게 죽을 만큼 힘들어진다. 기자가 지난 28일 충북 청주 공군 항공우주의료원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체험한 중력가속도 내성 강화훈련(G-TEST)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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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공군 항공우주의료원에서 실시한 가속도 내성강화 훈련(G-TEST)에서 체중의 6배에 달하는 중력인 6G를 견디고 있는 기자의 모습. 온 몸의 피가 아래로 쏠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자칫하면 의식을 잃게 된다.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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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조종석처럼 생긴 G-TEST 기계에 앉고 문이 닫히자 순식간에 장비가 빠른 속도로 원을 그리며 돌았고 중력가속도를 끌어올렸다. 2초 만에 체중의 6배에 달하는 중력(6G·지상에서 느끼는 중력의 6배)에 도달했다. 숨이 가빠졌고 거대한 압력이 온몸을 아래로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 화면을 보니 전투기가 급격한 기동을 하는 것 같았다. 시야가 회색빛으로 변하더니(그레이 아웃) 눈앞이 깜깜해지는 블랙아웃 현상이 일어났다. 이대로면 의식을 잃고 조종간을 놓을 게 분명하다. 조종사들은 이를 G-LOCK 현상이라고 부른다. 강한 중력이 몸을 짓누르며 온몸의 피가 아래로 쏠려 두뇌의 혈액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실제 전투기 비행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대로 전투기가 무한한 우주 공간으로 향하는 느낌이 들 때쯤 “고개 뒤로 붙이세요. 호흡하세요”라는 말이 들려왔다. 이때 복부와 하체에 힘을 주고 숨을 짧게 끊어 쉬며 피를 머리까지 올리는 L1 호흡을 했다. 어두워지던 시야가 다시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20분 같던 20초가 지났다. 공군사관학교 생도들도 첫 시도에서는 절반 가까이는 훈련 중 기절해(G-LOCK) 탈락한다는 G-TEST를 통과하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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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 설치된 가속도 내성강화 훈련(G-TEST) 장비의 모습.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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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비행 중 일어나는 상황을 지상에서 체험

G-TEST를 포함해 이날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실시한 비행환경적응훈련은 공중근무자가 임무를 수행할 때 제한요소가 되는 인간의 신체적인 기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실시하는 훈련으로 공군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필수 코스다.

두 번째 훈련은 3차원의 공간에서 비행하면서 수평 감각 등이 오류를 일으키는 비행착각을 체험하는 훈련이었다. 캡슐과 같이 생긴 장비에 들어가니 F-15K의 조종석을 본 따 만든 좌석과 계기판이 있었다. 훈련이 시작되고 비행기가 급격한 상승을 하거나 하강을 할 때 내 감각이 느끼는 정도와 계기판에서 가리키는 게 얼마나 차이가 큰지 느낄 수 있었다. 체감상 수직에 가깝게 상승하는 느낌이었지만 실제 상승 각도는 30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니 나의 감각을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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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탈출 훈련을 위해 기계에 앉아 있는 기자.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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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은 “실제 전투기가 이륙 중 급격하게 상승을 한다고 생각해 레버를 아래로 내리다가 전방 야산에 부딪히거나 지상으로 추락하는 경우도 있다”며 “느낌과 자세계가 확연히 다를 때는 느낌이 아닌 자세계를 보고 비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상탈출 훈련과 높은 고도에서의 저산소 체험도

그다음으로는 전투기 조종이 불가능한 경우를 대비한 비상탈출 훈련을 실시했다. 전투기가 격추당하거나 추락 시 좌석 아래 탈출 레버를 당기면 좌석이 위로 튀어나가고 낙하산이 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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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실시한 공군 비행환경적응훈련에 모두 통과해 받은 수료증


고공 저압훈련에선 18000피트 상공의 저압·저산소 상태에 노출돼 보기도 했다. 고공 저압훈련장비는 밀폐된 체임버 내부의 공기를 외부로 배출함으로써 지상에서 고공 환경을 조성하는 장비다. 실제 인간이 산소 호흡기 없이 비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고도는 8000피트 정도다. 그러나 18000피트에서 산소 호흡기를 벗으니 2분이 채 되지 않아 불안감이 엄습했고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간단한 받아쓰기조차 쉽게 되지 않았다. 혈중산소농도는 60%대로 떨어지자 교관은 기자에게 급히 산소마스크를 채웠다. 이는 기압변화와 산소 결핍에 따른 신체변화 체험 및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훈련이다. 기자는 고공 저압훈련을 마지막으로 이날 비행환경적응훈련을 모두 수료했다.

공군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는 실제 비행과 유사한 환경 속에서 비행환경 적응훈련의 각 과목을 진행할 수 있고, 항공기 기종, 조종사의 경력과 임무 등을 고려한 맞춤형 훈련프로그램으로 조종사의 실질적인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하고 있다.

하동열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 기동생리훈련과장은 이날 훈련에 대해 “조종사들이 극한의 비행환경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전에 지상에서 실시하는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청주=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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