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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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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동안 여인과 소녀만 만들었죠”…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조각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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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미술 거장 최종태 인터뷰
성모상 등 작품 157점 기증
“깨끗한 것 추구하다보니
한평생 여인상만 제작해”


매일경제

조각가 최종태가 최근 홍대 연남동 자택에서 작품에 둘러싸여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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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일하는 게 참 좋아요. 일하는 시간은 집중이거든. 그전에는 일하면서 잡념이 끼어들었어요. 요새는 금방 집중이 되면서 스님들이 선정(禪定)에 들듯 물아일체에 빠져요. 얼마나 좋은지.”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작가는 잡념 없는 순수한 상태에 빠지는 즐거움을 다른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면서 빙긋이 웃었다. 반가사유상의 그윽한 미소가 언뜻 스쳤다. 지난 1970년대부터 순수하고 맑은 성모상을 빚으며 한국 종교미술 토착화를 일군 조각가 최종태(92·서울대 명예교수)다.

홍대 연남동 핫한 거리에 자리 잡은 자택 마당과 작업실엔 ‘모자상’ ‘기도하는 여인’ ‘관음보살상’ 등 작품이 수두룩하게 놓여 있다. 최근엔 종교색이 강한 157점을 엄선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서소문성지 관장인 신부님이 방을 만들어줄 테니 작품을 기증하겠냐 제안해서 흔쾌히 주었어요. 어디든 미술관을 만든다 하면 줄 참입니다. 죽기 전에.”

88세 미수(米壽) 이후 거짓말처럼 잡념이 사라졌다.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지하실에서 작업했어요. 요즘은 나무에 채색하는 게 재밌어. 예전엔 나무가 흠이 있어서 커버하느라 머리 염색약을 칠했는데 요새는 색깔에 재미가 붙었어요.”

그는 한때 나무에 색을 칠해도 될까 싶었다. 20세기 조각은 브랑쿠시 이후 나뭇결을 그대로 생생하게 노출했다. 나무 질감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다. “남들은 색을 안하는데 혼자 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생각하게 됐어요. 과거 역사를 보니까 불상도, 서양 성상 조각도 나무에 색을 칠했어. 아프리카 사람도 칠했지. 그래서 안심했어. 20세기만 안 칠하는 쪽으로 했지, 세계 역사 전체를 보니까 나무에 칠을 하는 게 통례였구나 하고.”

색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내가 만드는 이미지에 더 접근하기 위해서”라며 “분위기를 더 살리기 위해 색채가 필요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은 뒤 말을 이었다. “나는 조형적인 아름다움보다 정신적인 미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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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최종태가 홍대 연남동 자택 작업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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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신자지만 젊은 시절부터 반야심경과 금강경 등 불교 경전에 깊이 천착한 그다. 반가사유상과 불국사 석굴암을 세계 최고의 조각으로 손꼽는다.

“비너스는 아름다워도 정신적인 것이 없어요. 반가사유상은 부처님이 생각하는 인간 최고의 경지를 지향하고 있어요.”

그가 70년간 빚은 조각은 모두 여인과 소녀상이다.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상과 예수의 아버지 요셉을 빼고는 없다. 서울 길상사에 세운 관음상도 여성이기에 가능했다.

“처음부터 남자를 안 만들었어요. 반가사유상처럼 맑고 깨끗한 것을 추구하다 보니 여성이 더 적합했나 봐요.”

그는 서울대 미대 교수였던 화가 장욱진과 조각가 김종영의 애제자였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스님과도 생전 인연이 깊었다. 모두 자신에게 엄격한 선비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장욱진은 술을 거나하게 마시면 “나는 심플하다”고 외친 일화로 유명하다. “근데 하루는 심플하다고 안 하고 ‘나는 고독하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이 화두처럼 40년을 지배했다가 최근에야 알게 됐어요. 그 양반은 어느 시기에 세계미술사 영향을 독하게 끊어냈어요.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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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최종태가 홍대 연남동 자택 작업실에서 최근 색칠 작업하고 있는 나무 작품을 만지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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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1973년부터 한국적인 독특한 교회미술의 지평을 열었으나 제대로 알아봐 주는 사람이 드물다.

“세계미술사에서 좋은 게 좀 많아야지. 평생 내 손에, 머리에, 가슴에 따라다녔어요.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더 어려운 것은 동시대를 살았던 스승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어요.”

이제 모든 족쇄에서 벗어났다. “누가 뭐라 해도 내 길을 갈 때까지 갈 거야. 예술에 있어 끝은 없어. 가다가 거기서 중단하는 거지.”

죽음이 스승과 형제와 동료를 데려갔다.

“죽음? 모르는 거야. 왜 모르냐면 갔다 온 사람이 없어. 아름다움이 뭐냐. 이 또한 모르는 거. 아름다움을 본 사람이 없어. 추구할 뿐이지. 진리가 무엇이냐. 이것도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냐. 크고 중요한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문제다. 안다고 하는 게 이상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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