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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이슈 윤석열 정부 출범

진영논리 갇힌 윤석열·바이든의 ‘자유’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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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국제정치학자 차태서 성균관대 교수



한겨레

차태서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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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 지도자가 외교에서 얼마나 자주 ‘자유’와 ‘민주’를 언급하는지 순위를 집계한다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위를 차지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3.1절에도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이 3·1운동의 완성”이라고 했고, 오는 18~20일에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도 주최한다. 윤 대통령의 이런 가치외교는 현재의 세계가 ‘자유주의 대 전체주의의 대결’이라고 강조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모델로 삼고 있다.



국제정치학자 차태서(사진) 성균관대 교수는 새로 펴낸 ‘30년의 위기'(성균관대출판부)에서 현재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는 미국이 주도하는 보편적 질서를 의미했던 기존의 자유와는 다르다고 분석한다. 현재 세계는 미국이 유일한 강대국이었던 지난 30년 단극 시대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긴 과정’에 있고, “바이든이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이념적 대결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현실을 가리려는 일종의 궁여지책”이라는 것이다. 차 교수는 “쇠퇴하고 있는 패권국으로서 미국이 동맹에게 물질적 실익을 제공할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유와 민주의 편이라는 ‘가치외교’는 미국이 동맹국들과 파트너 국가들을 일정 정도 동원할 수 있는 유용한 레토릭”이라고 말한다.





최근 펴낸 ‘30년의 위기’서
미국 단극체제 붕괴 과정 분석
“바이든의 이념적 대결 강조는
패권국 쇠퇴 가리려는 궁여지책”





한국엔 30년의 여름 끝, 긴 겨울 시작
“어려운 상황 관리할 ‘현실 외교’ 필요
선악구도로는
협상·외교 불가능”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의 비극적 여파 속에서 성장하며 국제정치학을 공부한 밀레니얼 세대인 차 교수는 미국 주도의 질서가 막을 내리고 있는 ‘탈단극 시대’에 한국 외교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에 대한 연구들을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다. ‘30년의 위기'는 1991년 소련과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뒤 미국이 유일한 강대국이 되었지만, 승리주의에 젖은 미국이 전세계로 과도하게 팽창했다가 그 결과로 현재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과정을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분석한다. 한국이 탈냉전 시대 30년 동안 의지해왔던 기존 외교의 틀로는 대처할 수 없는 ‘시대적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한국은 줄곧 미국의 패권질서를 전제로 삼아 대외정책을 수립해왔는데 그 토대가 붕괴하고 있다. 탈냉전 동안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추구했던 목표인 북한 핵개발 포기와 남북통일도 결국은 실패했다”고 그는 엄중하게 진단하다.



차 교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과도한 이상주의가 실패하면서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나아갔던 상황을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다룬 E.H.카의 ‘20년의 위기’(1939)에 공감하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현재의 세계도 그와 비슷한 위험에 처해 있고, 전쟁을 막기 위한 현실주의 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가 날로 엄중해지고, 북한이 통일을 포기하고 한국을 ‘교전 중인 적대국가’로 규정한 상황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은 더욱 절실하다.



한겨레

3일 차태서 교수와 전화 인터뷰에서 세계 질서의 변화와 한국 외교에 대해 좀 더 질문을 던졌다.



―현재 세계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던 단극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분명해졌지만, 그 이후에 어떤 세계 질서가 만들어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불명확성의 시대다. 미-중 양극체제로 갈지,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강대국들이 각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극 체제로 가는 것인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의 점진적 쇠퇴는 되돌리기 어려운 구조적인 현실이다. 미국의 능력과 의도 사이에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모습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오히려 더욱 분명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돌아왔다’고 하면서 자유세계 질서를 우리가 복원하겠다고 계속 얘기는 하는데, 그 말을 실현할 수단은 없다. 일단은 미국부터 챙겨야겠다는 길로 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윤석열 대통령도 ‘자유’를 줄곧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기존에 우리가 익숙했던 자유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보편적, 포용적 개념이었다면, 바이든이 현재 이야기하는 자유는 ‘우리는 자유이고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하려는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를 배제하고, 저들은 우리의 적이라는 것을 보이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냉전 초기의 트루먼 대통령과 매우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자유’는 ‘자유 진영 대 비자유 진영’이라는 내외의 집단을 구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가치 외교’에 사용되는 특수·배제적 레토릭이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한미일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탈단극 시대라는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려는 측면이 있다. 중국이 부상할수록 힘의 균형이 변하니까, 다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한미일이 어느 정도 같이 가는 것은, 좋든 싫든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미일이 같이 가야 하는 이유가 자유 때문이라고 판단하면 잘못된 것이다. 현재 상황을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대결로 판단하면, 협상이나 외교가 불가능한 일종의 종교적 선악 구도로 가버린다. 지금은 현실주의 외교가 필요하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 우리가 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간을 찾아서 타협할 부분은 타협하고 협상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주요 동맹인 일본, 호주와 한국 외교는 다른가.



“한국은 중국과 거리가 너무 가깝고 북한 문제도 있고, 국력도 여전히 일본급은 아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런데, 일본과 호주도 지금의 한국만큼 이데올로기적이지는 않다. 기시다 일본 총리도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하고, 호주도 오커스에 참여해 미국과 군사적 동맹을 강화했지만, 중국과 경제 교류도 늘리면서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외교에서는 유독 현실주의자들이 드물다.”



―북한이 통일을 포기하고 한국을 ‘교전 중인 적대국가’로 규정했는데, 한국도 통일 목표를 포기해야 할까.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통일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지난 30년은 한국에게 우호적인 긴 여름이었고 이제 긴 겨울이 오고 있다. 그 긴 겨울 동안 기존 방식대로 통일이나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기대는 접고 일단은 버티는 방식으로 가야 된다. 그 뒤에 통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릴 이유는 없다. 냉전 초기에 소련 봉쇄 전략을 주도한 현실주의자였던 캐넌은 일단 소련을 봉쇄하되 소련의 세력권은 인정하고 미-소 양국의 평화 공존을 추진하려 했다. 지금의 남북 관계에 대해서도 그런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자유의 북진’이나 북한의 정권 교체(레짐 체인지) 같은 이야기를 하지 말고, 어떻게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위기를 관리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길 아닌가.”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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