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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서울 동작구에 있는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조선시대 병풍 '곽분양행락도' 가 보존처리 작업 과정을 마친 뒤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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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꽃나무 아래 학이 노니는 정원. 대형 차양 아래 손주 둘을 품에 안은 노인이 함박미소를 띠고 있다. 등 뒤에선 큰 부채를 든 시녀가 시중들고 주변에 가족과 신하들이 싱글벙글 웃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무희의 춤과 기녀들의 연주가 지금 성대한 축하연 중임을 알린다.
조선 19세기에 크게 유행한 그림 ‘곽분양행락도’의 한 장면이다. 주로 6폭~12폭 병풍으로 제작돼 수복강녕의 삶을 기원하는 길상(吉祥) 용품으로 활용됐다. 1802년 순조와 순원왕후의 혼례 때 사용되면서 사대부는 물론 민간에도 유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국내외에 40점 남짓 전한다.
이 가운데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족학박물관에 소장돼온 곽분양행락도가 15개월간 보존처리를 마치고 독일로 되돌아가기에 앞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1902년 해당 박물관이 이를 소장한 후 122년 만에 국내 첫 공개다. 11일 서울 상도동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이하 연구소)에서 공개된 작품은 애초에 그림 낱장이 각각 분리돼(8장) 전해지다가 이번에 전체적인 오염 제거 및 배접 처리를 통해 ‘8폭 병풍 완전체’로 재탄생했다. 연구소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의 ‘국외문화유산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사업’에 따라 이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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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서울 동작구에 있는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조선시대 병풍 '곽분양행락도' 가 보존처리 작업 과정을 마친 뒤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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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된 곽분양행락도의 중심 장면(8폭 가운데 5폭의 일부). 11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김정희)과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대표 박지선)는 15개월간 작품 보존처리를 마치고 독일로 되돌려주기에 앞서 처음으로 이를 공개했다. 강혜란 기자 |
곽분양행락도의 주인공은 중국 당나라의 명장 곽자의(郭子儀·697∼781)다. 그는 안사의 난(755~763,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고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져 곽분양으로 불렸다. 숱한 무공을 세워 출세가도를 달렸을 뿐 아니라 8남7녀 외에 많은 손주를 보았고 85세까지 장수했다. 곽분양행락도는 그의 80세 생일잔치를 묘사한 그림으로 명나라 때 유행하다 조선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재단의 김정희 이사장은 “중국에선 곽자의가 중심이 돼 그의 충신됨을 높이 사는 그림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선 그처럼 다복하게 오래 살라는 의미의 연회용 병풍으로 쓰인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채로운 도상과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는 곽분양행락도는 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온 외국인 수집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에 공개된 라이프치히그라시 소장품의 경우는 독일의 저명한 고미술상 쟁어(H. Sanger)가 일본에서 구입한 것을 1902년 소장기관이 사들였다고 한다. 가로 50㎝, 세로 132㎝ 크기의 낱장 그림 8장이 하나로 어우러진 연폭 병풍으로 전체 4m에 달한다. 1~3폭에는 집안 풍경과 여인들 및 앞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4~6폭에는 잔치 장면, 7~8폭에는 연못과 누각의 모습을 묘사했다. 각 장의 오른쪽 상단에 펜으로 알파벳과 번호가 적혀있고 그 중 하나엔 ‘Korea, Sanger’라고 적혀 있어 입수 경위와 유물 번호를 기록한 용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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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된 곽분양행락도는 낱장으로 전해져오다 이번에 8폭 병풍 완전체로 재탄생했다. 11일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대표 박지선)에서 공개된 병풍 그림에선 유물 번호와 작품 소장 경위로 추정되는 알파벳이 확인된다. 강혜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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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된 곽분양행락도의 보존처리를 진행한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의 박지선 대표가 11일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강혜란 기자 |
연구소의 박지선 대표는 “앞서 스펜서 미술관과 시카고 미술관이 소장 중인 곽분양행락도를 보존처리한 경험 덕에 이번에 새로이 비단 장황(표구)까지 해넣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림만 분리하는 과정에서 1면과 8면의 화면 일부가 잘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복원하면서 이를 보완해 전체 크기를 맞췄다”고 덧붙였다.
작품은 3월 말 독일 박물관으로 돌아가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재단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총 10개국 31개 기관을 대상으로 53건의 국외 소재 문화유산을 보존처리하여 현지에서 전시되거나 활용되도록 했다. 김정희 이사장은 “외국에 소장된 유물을 꼭 환수하지 않더라도 활용을 통해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도록 보존처리 지원에 계속 힘쓰겠다”고 말했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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