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022년 초연에 이어 오는 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개막하는 창극 '리어' 재연에서 여든의 리어왕 역에 캐스팅됐다.
2022년 창극 '리어' 공연에서 국립창극단 간판 배우 김준수가 막내 딸을 잃고 절규하는 리어왕을 연기하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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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수는 데뷔 이래 '최연소' 타이틀과 멀어진 적이 없다. 2013년 22세 나이로 국립창극단에 입단했고 입단 3개월 차에 창극 '서편제'의 어린 동호 역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그 후 창극 '배비장전'의 배비장,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트로이의 여인들'의 헬레네, '패왕별희'의 우희 등 굵직한 작품의 주역으로 두각을 드러내면서 창극단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서른이 된 2021년에는 KBS 국악대상을 받았는데 입단과 마찬가지로 최연소였다.
김준수가 선보이게 될 '리어'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우리 소리로 옮긴 창극 작품이다.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인 정재일이 작곡했고, 정영두가 연출과 안무, 배삼식이 극본을 맡았다.
공연을 준비 중인 그를 지난 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의 슬픔은 젊고 늙음을 떠나 누구든 경험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라며 "팔순의 노인 역을 맡았지만, 노인을 흉내 내는 데 그치는 연기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준수가 창극 '리어' 공연을 앞두고 연습실에서 리어왕을 연기하는 모습. 사진 국립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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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여든의 노인 연기가 쉽지 않겠다.
A : 노인 역할이지만 노인을 흉내 낼 생각은 없다. 리어왕을 읽으면 세상 모든 걸 가진 왕의 마지막 순간도 결국은 허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외로움과 허무함에 대한 이야기다. 젊다고 예외가 아니고, 젊다고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Q :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운가.
A : 전체적으로 다 어렵다. (웃음) 특히 리어의 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 어렵다. 한때 끝없는 권세를 누렸던 리어는 딸들에게 배신당하고 쫓겨나는 순간부터 미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엔 정신을 놓는다. 이 과정에서 한순간이라도 집중력이 흐려지면 그 다음 장을 이어가기가 어렵다. 한 번 해봤는데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 같다.
Q : 어떤 리어로 기억되고 싶은가.
A : 그동안 김준수의 연기를 다 잊게 하는 리어였으면 좋겠다. 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오직 리어만 남는 연기를 하고 싶다.
창극 '패왕별희' 중 항우(정보권)가 죽은 우희(김준수)를 끌어안고 절규하는 모습. 김준수는 패왕별희에서 섬세한 경극식 손짓 연기과 쌍검무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사진 국립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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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간 TV예능과 뮤지컬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스타가 됐구나' 느끼는 순간이 있나.
A : 알아보시는 분들이 늘었지만,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크다. 특히 무대에서 실수했을 때 자책을 심하게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날에는 우울하고, 그 감정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어떤 날은 무대 위에 올라가는 것이 너무 무섭다.
Q : 좀 더 대중적인 장르로 전향할 생각은 없나.
A : 나는 소리를 할 때 가장 자유롭다. 어떤 노래를 부르더라도 내 뿌리는 바뀌지 않는다. 가요든 뮤지컬이든 국악의 특징을 담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한 분이라도 더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내가 어디 있든 친정은 국립창극단이다. 소리를 빼고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
Q : 김준수의 완창 판소리도 볼 수 있을까.
A : 올해 가장 큰 목표다. 연말에 완창 '춘향가'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연습하고 있다. 연기도 좋고 창극도 좋지만, 소리꾼으로서의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다. 무엇보다 소리를 잘하는 소리꾼이 되고 싶다.
Q : 어떻게 국악인이 됐나.
A :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민요를 배웠는데, 선생님이 큰 대회에 나가보라고 하셨다. 엉겁결에 나간 대회에서 판소리를 하는 누나를 보고 판소리에 반했다. 모든 음악에 감정이 담겨있지만, 판소리는 유독 절절하고 직설적이지 않나. 선생님을 수소문해서 배웠고 그때부터 국악 외길을 걸었다. 대회에서는 3등을 했다. 그 누나가 1등이었다.
Q : 집안에 예술가가 없다고 들었다.
A : 부모님은 전남 강진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엄마가 마늘을 수확해오시면 옆에서 같이 마늘을 까면서 소리를 했다. 시골에서 자라 어디서든 소리를 할 수 있었다. 밭두렁이든 논둑이든 상관없었다. 월출산이 무대고 등산객이 관객이었다. 바위 위에 올라가 부채를 들고 소리를 하면 잘 들었다며 용돈을 쥐어주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웃음)
Q : 10년 넘게 국립창극단에서 주인공 역을 줄줄이 맡았고, 서른 살에 국악대상을 탔다. 앞으로의 꿈은.
A : 대작을 만들고 싶다.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 '토지'가 창극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된다면 연속극으로 만들어 드라마 보듯 창극을 보러 오셨으면 좋겠다. 가장 재밌는 장면에서 연기를 끊고 궁금하면 내일 다시 오시라고 할 수도 있고. (웃음) 창극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활동은 뭐든 시도해 볼 것이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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