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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이슈 경찰과 행정안전부

보고서 표에 이선균 적시…경찰 간부, 마약내사 문건 왜 찍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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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배우 故이선균씨를 협박해 5000만원을 받은 전 영화배우 박모(29)씨가 아기를 안고 지난해 12월28일 오후 인천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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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선균(사망 당시 48세)씨의 마약 혐의 수사 자료를 최초 유출한 혐의로 인천경찰청 간부 계급의 경찰관이 체포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 경찰 간부는 이씨 이름이 적힌 지휘부 보고용 내부 문건을 촬영해 외부로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최초 유출자로 추정되는 경찰관을 특정한 만큼 이 내부 문건을 보도한 연예 전문 인터넷 매체로의 전달 과정 수사 역시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다만 문건 작성 시점이 지난해 10월 18일로 연예 매체가 보도한 지난해 12월 28일까지 70여일 차이가 나기 때문에 수사 자료가 몇 단계에 걸쳐 유출됐는지 파악하는 데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22일 수사당국과 이선균씨 협박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영화배우 박모(29)씨 등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9월 10일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가 입수한 강남 룸살롱 실장 김모(30)씨의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에 관한 제보였다.

이씨를 협박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박씨는 김씨의 마약 혐의 제보 나흘 뒤 등장한다. 김씨와 교도소에서 처음 알게 된 뒤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며 친분을 이어오던 박씨는 김씨로부터 연예인 마약 투약 관련 얘기를 듣게 된다. 박씨는 9월 14일 해킹범을 가장해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김씨에게 ‘네넴띤’(한 비빔라면을 보이는 대로 읽은 인터넷 밈)이란 이름으로 “곧 경찰 와요. 아니면 바로 이선균한테 사진 폭발이에요”라며 1억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김씨는 박씨의 협박을 이용해 같은 달 22일 이씨에게 “매스컴(보도)은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3억원을 받아 챙겼고, 박씨에겐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숨겼다.

김씨가 ‘배달 사고’를 냈다는 것을 뒤늦게 안 박씨는 지난해 10월 10일 인천경찰청 마약계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김씨 머리카락을 마약 투약 증거로 제출했다. 박씨는 이때 이씨의 마약 투약 의혹도 제보했다고 한다. 이후 인천청은 박씨 제보 등을 토대로 10월 14일 이씨를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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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나흘 뒤인 10월 18일 인천청 마약계는 지휘부 보고용으로 ‘연예인·유흥업소 종사자 등 마약류 투약 사건 수사진행보고’ 제목의 문건을 생산했다. 이 보고서에 포함된 표 첫 줄엔 이선균 실명과 비고(직업)에 영화배우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둘째 줄의 김씨는 19일 공갈,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같은 날 한 지역신문에 ‘톱스타 L씨, 마약 혐의로 내사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김씨를 체포한 경찰은 이씨를 총 세 차례 소환 조사한다. 1차 조사(10월 28일)와 2차 조사(11월 4일)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씨의 마약 투약 감정이 불가하다고 회신했다. 3차 조사(12월 23일)는 19시간 뒤인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이어졌다. 이씨는 2차와 3차 조사 때 비공개 소환 조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은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거부했다. 이씨는 결국 마지막 조사를 받은 지 사흘 만인 지난해 12월 27일 이씨는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인근에 주차된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 연예 전문 인터넷 매체는 이씨가 숨진 다음 날인 28일 이씨 등에 대한 수사 진행 보고 문건 내용을 담아 기사를 냈다. 해당 기사에선 “경찰이 제대로 내사도 하지 않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이씨의 피의자 신문조서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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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등으로 배우 이선균씨와 호흡한 봉준호 감독 등 문화예술인연대회의는 지난 1월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봉 감독은 "수사 정보가 최초 유출된 때부터 극단적 선택이 있기까지 2개월여 동안 경찰의 보안에 한치의 문제가 없었는지, 진상 규명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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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마약 투약 의혹 수사가 결국 이씨 사망으로 비극적으로 마무리되면서 경찰의 연예인 공개 수사 방식에 대한 문화계 등의 비판론이 거세졌다. 이에 지난 1월 15일 인천경찰청은 수사 정보 유출 경위를 조사해달라고 인접한 경기남부경찰청에 수사의뢰했다. 일주일 뒤인 같은 달 22일 경기남부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인천청과 연예 매체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고 인천청 마약계 수사관들의 휴대전화도 압수했다.

경기남부청은 지난 21일 오전 10시부터 인천청에 대한 2차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수사 진행 보고서를 최초 유출한 혐의(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당시 경무과에 근무하던 A 경위를 긴급체포했다. A 경위는 최초 지휘부 보고 과정에서 수사 진행 보고서 원본을 촬영해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 경위는 체포 당일 직위 해제됐다. 경찰은 21일 오후 A 경위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의혹을 밝히기 위해 엄정히 수사 중이며 구체적 수사사항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손성배·이영근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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