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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이슈 미술의 세계

“이 흰색 판때기를 5억에 샀다고?”…절친 갈라놓은 ‘이것’ 도대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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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소재 연극 ‘아트’
그림 둘러싼 친구들 갈등 통해
우정과 질투, 경쟁의식 드러내
엄기준·이필모·박호산 캐스팅


매일경제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공연 중인 연극 ‘아트’의 한 장면.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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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표현이다’ ‘형식이다’ ‘정의가 불가능하다’ 등으로 변했지만 미학자 아서 단토(1924~2013)가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 이후 예술은 훨씬 열린 개념으로 바뀌었다. 예술사의 맥락과 예술가, 비평가, 미술관장 등 예술계(artworld)가 인공물에 예술 작품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생각이 퍼지며 예술의 외연은 넓어졌고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는 더 어려워졌다.

예술을 소재로 한 연극들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지난 2월 공연을 시작한 연극 ‘아트’는 오랜 기간 우정을 쌓아온 세 남자가 현대미술에 대한 담론을 나누며 일어나는 갈등을 그리는 블랙코미디다.

미술 애호가인 피부과 의사 세르주는 가로 150cm, 세로 120cm의 하얀 캔버스에 대각선으로 흰색 줄이 하나 그어진 현대미술 작품을 5억원을 주고 산다. 유명 작가 앙뜨로와의 그림이고, 예술성이 뛰어난 가치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서다.

“퐁피두(파리 3대 미술관)에 앙뜨로와 작품이 몇 점 있는 줄 알아? 세 점이야! 앙뜨로와가 무려 세 점! 퐁피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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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공연 중인 연극 ‘아트’의 한 장면.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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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는 절친한 친구 마크를 집에 초대해 그림을 자랑하지만 마크는 세르주에게 공감하지 못한다. 그는 세르주의 그림이 백지에 가까운 캔버스에 불과하며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고 본다. 미술을 안다고 자부하는 허영심 때문에 세르주가 5억원을 날렸다고 생각할 뿐이다.

“설마 이딴 판때기를 5억이나 주고 산 거 아니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판때기라고 하는지 알고 싶네.”

배려심 깊은 또 다른 친구 이반이 두 사람을 중재하려 하지만 갈등은 점점 고조된다. 말리던 이반까지 다툼에 휩싸이고, 과거의 이야기까지 끄집어내지고, 오랜 기간 세 사람 사이에 쌓여있던 감정들이 터지며 상황이 극단적으로 전개된다.

“도대체 왜 그래? 둘 다 하는 짓이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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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공연 중인 연극 ‘아트’의 한 장면.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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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가 세 남자의 예술에 대한 담론을 통해 드러내는 것은 결국 남자들 사이의 우정이다. 절친한 친구 사이에도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 질투, 깔보는 마음이 있고, 이것들이 겉치레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그림을 두고 언쟁을 하는 와중에도 세르주가 자신의 교양을 뽐내듯 친구들에게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책 ‘행복한 삶에 관하여’를 읽으라고 반복해 권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의미심장하다. 관객은 하고많은 책 중 왜 세네카의 책이 등장하는지, 그것이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드러내는지 곱씹을 수 있다.

세 남자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남자들의 우정은 손쉽게 무너질 수 있지만 질투와 깔봄, 경쟁의식이 반드시 우정을 저해하는 것은 아니다. 만지기 전에 늘 흰 장갑을 꺼내 끼며 그림을 애지중지하던 세르주가 연극의 말미에 그림에 다가가 취하는 행동은 우정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 거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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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공연 중인 연극 ‘아트’의 한 장면.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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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가 쓴 ‘아트’는 몰리에르 어워드,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토니 어워드, 뉴욕 비평가 협회 등에서 수상한 화제작이다. 35개국에서 15개 언어로 공연되며 전세계적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 공연은 2018년 초연 이후 이번이 4번째다. 그림의 주인 세르주 역은 엄기준·최재웅·성훈·진태화가, 항공 엔지니어 마크 역은 이필모·김재범·박은석·손유동이 맡았고, 문구 영업사원 이반은 박호산·박정복·이경욱·김지철이 연기한다. 공연은 5월 12일까지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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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된 1인극 ‘하늘을 걷는 선인장’의 한 장면. 씨아뜨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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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10일 서울 중구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된 1인극 ‘하늘을 걷는 선인장’은 죽음을 직감한 노파 허복례가 연극을 시작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평생을 아내와 엄마로서 가족을 위해 살아온 허복례는 연기 학원에서 셰익스피어, 체홉, 칼데론의 작품을 공부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한다.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 한 예술가로서 행동하라”는 연극 이론가 콘스탄틴 스타니스랍스키의 조언처럼 연기는 배우가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연기할 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하늘을 걷는 선인장’을 통해 연극이 무엇이며, 현생을 살아가기 바쁜 현대인에게 연극이 왜 필요한지 등을 짚을 수 있다.

‘하늘을 걷는 선인장’는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거는 소통형 연극이다. 허복례 역을 맡은 김현희 배우(씨아뜨컴퍼니 대표)가 딸과 손녀, 연기 강사 등 다수의 인물을 모두 연기하며 작품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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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된 1인극 ‘하늘을 걷는 선인장’의 한 장면. 씨아뜨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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