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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조국, 미래의 아이콘이 되기를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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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4년 3월3일 조국혁신당 창당대회의 조국 대표. 강창광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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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 정도면 화기애애하게 친구들과의 만남을 마무리해야 할 때였다. 정치 이야기가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조국혁신당의 돌풍이 화제에 오른 까닭이다. 나는 ‘조국 현상’에 우려를 표했다. 지난 몇년과 같이 다시 22대 국회도 검찰개혁과 특검이라는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을 걱정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도들은 디지털화, 기후변화, 탈세계화, 인구 구조와 가족 역할의 변화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들의 삶은 피폐해져가고 있고, 우리 사회는 지속가능성 위기에 있다. 물론 조국혁신당이 이러한 내용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몇주 그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잘 듣고 있던 친구는 다음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 같다. ‘조국 대표가 화해의 아이콘이 되었으면 좋겠어, 우리 사회 미래의 아이콘이 되면 어떨까.’



친구는 발끈했다. 그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화해’와 ‘미래’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말라고 했다. 그가 지난 5년여 동안 경험했던 ‘멸문지화’에 가까운 깊은 상처들을 생각하면 나의 말이 깃털처럼 가볍게 들렸을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지금 정부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의 위기들을 상기시켜주었다. 지금 다양한 정책 이슈들은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 중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일 나와 내 가족들이 그런 일을 당해도 ‘화해’나 ‘미래’와 같은 말을 쓸 수 있겠느냐고 힐난했다. 조국 대표가 제시하는 검찰과 현 정부에 대한 심판의 말들이 국민들의 기대를 높이기에 그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이라 진단하기도 했다. 말들이 오가는 중 친구는 나와 같은 주장들을 ‘먹물들의 것’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이미 우리 대화의 온도는 선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친구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를 몰락시키기 위한 검찰의 집착은 분명해 보였고, 현 정부하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위기 역시 공감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춤하게 되었다.



조국 대표가 경험한 아픔이 너무 컸을 것이라 인정했다. 다만, 우리가 정치를 잘못하게 되면 매일 40여명의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두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게 된다. 학생들은 오히려 더 심한 경쟁에 노출될 것이며, 더 많은 청년들이 결혼과 아이를 포기하고,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이들이 고립 속으로 빠져들어갈 것이다. 그러니, 정치의 목적이 개인적 복수가 아니라면, 그리고 국가의 명운에 영향력을 가진 국회의원이 되려 한다면,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천착하여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이후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로 옮겨갔다.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 시기를 한탄하는 친구와 그의 ‘실용’을 높게 평가한 나의 의견은 다시 나뉘었다. 근현대사를 한바퀴 훑고 나서야 다행히 또 다른 친구의 중재로 우리는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친구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여하튼, 화해라는 표현은 쓰지 마.’



직업이 직업인지라 선거 때마다 공약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들이 있었다. 국회의원 선거 공약은 대통령 선거 공약과 비교하면 일반적으로 부실하지만,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특히 그러하다. 정책 공약들이 선언적이며, 구체성이 부족하다. 어떤 것들은 선거 때마다 유사한 표현으로 반복되는 것들이다. 이들이 주도하는 22대 국회가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검찰개혁은 중요하다. 하지만 검찰개혁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누가 되었든 칼 쥔 자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과 권력을 지켜보는 힘 있는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으면 개혁은 완성될 수 없다. 지난 시기의 또 다른 교훈은 경제나 복지개혁도 정교한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설계된 정책들 간의 상호보완적 결합 속에서만 개혁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개혁이 가려운 곳을 긁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가려운 곳을 긁으면 시원함을 느끼지만, 상처는 덧난다. 때로는 치유하기 위해 긁는 것이 아닌 참고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 지금 우리는 정치뿐 아니라 우리 사회경제의 고장 난 시스템을 수리하며, 대전환기를 맞이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기에 22대 국회에서 조국 대표는 깊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미래의 아이콘’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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