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8 (일)

상흔 이은 ‘4·3길’ 터벅터벅…가슴 시린 역사를 마주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제주 4·3사건 76년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안덕 동광·아라 등 8곳 조성
유족·주민들이 직접 ‘해설’

‘4·3길’은 76년 전 마을에 새겨진 4·3의 상흔을 연결한 길이다. 아픈 역사의 현장을 걸으며 인권과 평화를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조성됐다. 제주도는 공모를 통해 2015년부터 현재까지 8곳의 마을에 4·3길을 조성했다. 도 4·3지원과 또는 마을 4·3길 센터로 요청하면 ‘4·3길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안덕면 동광리 4·3길은 큰넓궤 가는 길(6㎞)과 무등이왓 가는 길(6㎞) 등 2개 코스가 있다. 1948년 11월 중순 토벌대가 들이닥치자 주민 120여명은 동굴인 큰넓궤에 숨어 생활했다. 50여일간의 피난생활 끝에 붙잡힌 주민들은 정방폭포로 끌려가 집단총살당했다.

경향신문

제주 4·3사건 당시 안덕 동광마을 주민 120여명이 토벌대를 피해 생활했던 용암동굴 입구(위 사진). 당시 조천읍 북천리에서 학살당한 어린아이 시신이 너븐숭이 일대에 매장돼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애기무덤 유적지. 박미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남원읍 의귀리 4·3길은 신산모루 가는 길(7㎞), 민오름주둔소 가는 길(7㎞) 2개 코스가 있다. 1949년 1월12일 무장대가 의귀초등학교를 습격하자 군인들이 주민 60여명을 보복 살해했다. 시신은 수습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유족들은 엉킨 시신들이 있는 구덩이에 봉분을 쌓고 현의합장묘 비석을 세웠다. 마을 희생자는 250여명이다.

조천읍 북촌리 4·3길은 너븐숭이 4·3기념관을 출발해 학살지 당팟 등을 거치는 8㎞ 코스다. 1949년 1월17일 군인 2명이 무장대의 습격으로 피살되자 군인들이 보복으로 북촌 주민 300여명을 집단학살했다. 4·3 당시 단일사건으로 가장 큰 인명피해가 있었다.

한림읍 금악리 4·3길은 동가름 가는 길(5㎞), 웃동네 가는 길(7㎞) 2개 코스가 있다. 당시 300여호의 가옥이 없어지고 150여명이 희생됐다. 상당수 마을이 복구되지 못했다. 표선면 가시리 4·3길은 가시리사무소에서 출발해 보초를 섰던 고야동산, 잃어버린 마을 새가름 등 7㎞를 연결했다.

제주시 오라동 4·3길은 해산이동네 가는 길(6.5㎞), 선달벵뒤 가는 길(5.5㎞)이 있다. 주민 240여명이 희생됐다. 4·3을 평화적으로 끝낼 수 있었던 김익렬 제9연대장과 무장대 김달삼 간 평화협상을 깨뜨린 오라리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애월읍 소길리 4·3길은 소길리사무소에서 시작해 잃어버린 마을 원동 등 8㎞를 걷는 코스다. 원동마을은 1948년 11월13일 새벽 토벌대에 의해 4세 아이부터 60대 노인까지 무차별 총살당했다. 제주시 아라동 4·3길은 산천단에서 박성내로 연결하는 1코스(8.3㎞)와 관음사에서 영평상동 마을회관까지 잇는 2코스(9㎞)가 있다. 주민 희생자는 200여명에 달한다. 박성내 하천은 진압군이 조천 주민 100여명을 집단총살하고 불태운 장소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는 ‘자기만의 방’, ‘방꾸’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